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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빈 기자의 ‘금연’일기] ‘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것

오피니언

2025. 9. 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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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본 ‘OO일기’는 지난 2020년 배현주 전 편집장이 원내 익명성에 대해 고찰한 ‘꼰대 일기’ 칼럼에 영감을 받은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기적으로 ‘일기’ 칼럼들을 발행하며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디지스트신문 DNA는 사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고 넓은 범위로 기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때로는 가벼운 농담 거리를, 때로는 진지한 토론 거리를 던질 ‘OO일기 시리즈’가 우리 학생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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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사빈 기자의 ‘금연’일기] ‘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것

 

참 지독하게도 피웠다.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다. 시작은 성인이 된 2021년 겨울 눈이 쌓인 어느 날 친구와 산책을 하던 때였다. 레종 프렌치 블랙, 내 생의 첫 담배였다. 왜 피우는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중독은 비슷한 첫인상을 준다. 저런 식의 첫인상이 모두 중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나, 이런 식의 복선을 필자는 많이 보아왔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추가적인 흡연은 없었다. 흡연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어서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 흡연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간접흡연은 수도 없이 경험했다. 직접적인 흡연 경험이 거부감을 부가하지는 않았다. '피우면 피우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술자리가 많아졌다. 자연스레 담배의 접근성도 높아졌다. 술자리를 즐기다 보면, 입에 담배를 정말 쉽게 물 수 있었다. 그렇게 난 흡연자가 되었다. 스트레스라던가, 그런 것이 흡연으로 이끌지는 않았기에 대다수의 흡연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가 담배를 물게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저 흡연자가 있었고, 그에게는 불안함이 이끄는 습관이 흡연이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금연의 방해 요인이지, 흡연의 유도 요인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군인이 되었다. 몸에 담배 냄새가 밸 정도로 피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피웠다. '흡연은 띄어쓰기다'라는 둥의 농담에 웃음 지으며 조금의 소속감도 느꼈다. 금연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의 대답은 보통 금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그냥, 정말 그냥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가 별것이 아녔던 것처럼,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계기도 별거 아니었다. 담배로 나가는 지출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주위 사람이 담배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이유였다. 끊음은 적극적인 행동일까. '하지 않음'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아서 다시 입에 담배를 가져가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반복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기에,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을 때 오는 자괴감이라거나, 패배감 또한 없었던 것 같다. 혹은 니코틴이 주는 안정감이 그런 감정들을 가렸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입에서 담배를 없애는 대신, 금연이라는 말을 입에 붙여버린 사람이 되었다. 입은 담배와 더불어 본인이 책임지는 습관 하나가 더 생겨 기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나는 다시 흡연자가 되는 듯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 계기는 또한 별것 아닌 이유였다. 주변에 흡연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웃기게도 담배를 끊은 사람은 없었다. 졸업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별 이유 없이 잘 만나지 않게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내 곁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비흡연자 마을에 사는 유일한 흡연자'가 되어버린 나는 속상했다. 소속감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로 태어났기에, 또 나는 소속감을 먹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나도 비흡연자가 될래.’

 

 이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뇌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바로 달성군 보건소의 금연 클리닉에 전화를 걸어 운영 중임을 확인하고,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를 몇 가지 넘겨주고 금단현상을 해소해 줄 만한 여러 보조 기구들을 받았다. 물론, 개인정보와 교환을 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껌 한 통, 사탕 두 통, 손 지압기, 니코틴 패치 1주일 치 분량을 받았다. 열심히 씹고, 먹고, 쥐고, 붙였다. 만일 내가 조금 더 멋진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면, 나는 그 시기를 자기 계발의 보너스 타임 정도로 여겼을 것 같다. 금단 해소를 위한 집중은 꽤 밀도 높은 집중력을 가져다 주었다. 물론 나는 그리 멋진 사람은 아니어서, 그냥 열심히 씹고 먹고 쥐고 붙였다.

 

 여러 저차원적 쾌락에 절여졌던 내게 꾸준히 금연 클리닉을 가는 것은 꽤 큰 성취감을 주었다. '하지 않음'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으로 느끼는 성취감, 분명히 모순이 있는 것 같은데, 성취감은 허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음'을 수행하다가, 더 이상 완화되지 않는 증상을 발견했다. 담배가 계속 피우고 싶었다. 다시 보건소로 가서, 니코틴 패치 용량을 늘려주기를 부탁했다. 거절 당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금단현상이 아니라 흡연 욕구라고, 그것은 니코틴이 유발하는 게 아니고, 아마 평생 같은 증상을 느낄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말장난 같았다. 금단 현상과 흡연 욕구를 나눠? 사실은 말장난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여튼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난치병에 걸린 걸까? 일단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금연초라는 것도 있고, 파이프라는 것도 있더라. 샀다. 금연초를 두 갑 샀다. 금연초를 피워보았다. 50일 만에 느끼는 흡연 감이라, 첫입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두 번째 흡입부터는 굉장히 불쾌했다. 꺼버리고 싶어서 꺼버렸다. 속상했다. 남은 한 갑 하고도 열아홉 개비는 어떻게 하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흡연 욕구는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몇 번의 충동이 있었고, 그때마다 금연초를 입에 가져갔고, 비슷한 루틴으로 세 모금 안에 꺼버렸다. 맛이 너무 없어서, 이후에는 진짜 담배조차 입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전히 내 방 책상에는 열 개비 남짓 남은 금연초가 있다. 금연을 고민하는 당신, 당장 클리닉에 가서 공짜 사탕과 공짜 껌을 받아먹고, 공짜 니코틴 패치를 붙이다가, 니코틴 패치를 더 이상 보급해 주지 않을 즈음부터는 금연초를 사서 피우는 방법을 사용해 보길 바란다.

 

나는 이제 금연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비흡연자다. 왜냐하면,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으니까. 부정하고 싶다면 학보사실에 찾아와서 편집장을 찾기를, 그가 나를 대신하여 상대해 줄 것.

 

 비흡연자가 되었다고 심폐 기능이 향상되었다거나, 키가 커진다거나, 피부가 좋아진다거나,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거나, 머리카락이 새로 난다거나, 거북목 증상이 사라지는 등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돈이 남아돌아 백만장자가 된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을 바란다면 금연을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흡연자에 대한 비흡연자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아주 덥거나 추운 날, 일부러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4500원으로 담배 대신 말차 라테를 사먹을 수 있고, 몸에 밴 담배 냄새를 없애려 가글을 하거나 산책을 하고 오지 않아도 된다. 꽁초를 버릴 곳이 여의치 않아 손에 쥐고 있다가 손에서 아주 슬픈 냄새가 나게 되는 일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는 흡연 경험이 있는 비흡연자이기에,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혹한기 훈련 중에 잠시 피우는 담배의 맛을 알고 있고, 상쾌한 어느 곳에서 코로 스미는 담배 냄새의 불쾌함도 나는 알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당신, 담배를 끊어보는 것은 어떤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등의 포장은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지도 않다. 흡연도, 금연도 별것이 아니니까. 금연이 너무나 좋다고 홍보하는 글도 아니고, 이만큼의 노력을 요구할 만큼 담배가 매력적이라는 말을 전하는 글도 아니다. 낮은 집중력으로 소비해 주기를 바란다. 모쪼록 상쾌한 하루들을 보내길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비흡연자전사빈 기자의 글이었다.

 

전사빈 기자 jsb4058@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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