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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지 기자의 ‘채집’일기] 학교에서 자란 석류, 직접 먹어보겠습니다

오피니언

2025. 10. 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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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본 ‘OO일기’는 지난 2020년 배현주 전 편집장이 원내 익명성에 대해 고찰한 ‘꼰대 일기’ 칼럼에 영감을 받은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기적으로 ‘일기’ 칼럼들을 발행하며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디지스트신문 DNA는 사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고 넓은 범위로 기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때로는 가벼운 농담 거리를, 때로는 진지한 토론 거리를 던질 ‘OO일기 시리즈’가 우리 학생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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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습기자 일기] 편집장님 방 털기 (DGIST 학생생활관, 과연 안전한가?)
3. [군대일기] 깨달음이 없는 나라도 깨달은 이의 태도를 훔칠 순 있으니까
4. [편집장 일기]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 (전학대회, 선거시행세칙 개정 뒷이야기)
5. [부편집장 일기]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다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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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노경민 기자의 ‘애주’ 일기] 소주는 죄가 없다
12. [박재영 기자의 ‘교열’일기] 고쳐 쓰기의 중요성 – 4년차 교열팀장의 일기
13. [김신지 기자의 '조교'일기] 수강생 수와 책임감의 선형 비례: 학부생 조교의 관점에서
14. [박재윤 기자의 ‘채식’ 일기] 먹지 않기 보다는 ‘덜 먹기’: 불완전한 나를 위한 채식
15. [권대현 부편집장의 ‘사과’ 일기] ‘만능 유감 주의’ 유감, 바른 사과하는 어른 되자
16. [전사빈 기자의 ‘금연’일기] ‘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것
17. [황인제 기자의 ‘공허’일기] 사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 편엔 공허함이 있다
18. [김신지 기자의 ‘채집’일기] 학교에서 자란 석류, 직접 먹어보겠습니다

기자들은 매주 한 번씩 편집회의에 모여 새로운 기사거리를 궁리한다. 어떤 기자는 누구보다 빠르게 교내 특종을 찾아내는 한편, 다른 기자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기상천외한 소재를 제안한다. 지난 편집회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대체 누가 E1 앞 정원의 뉴턴 사과 나무에 열린 사과부터, 캠퍼스 구석구석 숨어있는 석류, 복숭아, 버찌 등 열매를 직접 먹은 후기를 기사로 쓰자고 할까?

제안한 기자는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나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기사를 써보겠다는 결심이 든 날, 여유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석류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취재 허가를 위해 보낸 메일을 재구성한 화면 <그래픽 = 김신지 기자>

 

미리 일러두자면, 캠퍼스 내에서 과일을 채집해 먹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DGIST 시설운영팀은 과실수는 캠퍼스 미관 유지와 안전을 위해 채취를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본 기사는 채집 허가를 받고 작성되었다. 메일을 통해 캠퍼스에 열린 과일 먹어도 되나요?’라고 문의하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름에 볼 수 있는 석류 꽃 <사진 = 국립생물자원관>

 

캠퍼스에 석류나무가 있다고 하니, 편집장이 "우리나라에서도 석류가 나는 거냐?"라고 물었다. 물론이다. 과일가게에서 파는 석류는 이란이나 미국에서 온 수입산이 대부분이지만, 석류나무는 한국 전역에서 자생한다. 혹시 길을 가다가 주황색 원기둥 끝에 뾰족한 톱니가 달린 꽃을 본 적이 있는가? 마치 문어 모양 소시지 볶음과 닮은 비주얼이다.

 

석류의 꽃받침은 문어 소시지와 닮았다. <그래픽 = 김신지 기자>

 

이것의 정체는 석류나무의 꽃받침이다. 문어 소시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꽃받침통과 씨방이 동그랗게 부풀어 우리가 아는 석류 열매가 되고, 문어 소시지의 다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석류 꼭대기에 달린 왕관 모양의 구조가 된다.

 

DGIST 캠퍼스에 있는 석류나무와 열매 <사진 = 김신지 기자>

 

DGIST 정문에서 S1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석류나무가 있다. 석류가 제철인 9월 말인 지금, 학교의 석류도 탐스럽게 익어 있었다. 땅에 떨어진 중 멀쩡한 것을 하나 주워왔다. 먹어도 되는 걸까? 과일칼을 꺼내들고 해부하듯 관찰해보자.

 

열매 안쪽에 있는 수상한 물질 <사진 = 김신지 기자>

 

석류의 왕관 모양 구조물 안쪽에는 검은 깨알 같은 입자와 털들이 얽혀 있다. 곰팡이로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은 꽃을 이루던 수술이 마른 것이다. 이 부위는 외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곤충 등이 자리 잡거나 이물질로 인해 오염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부분과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위생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열매를 가른 모습 <사진 = 김신지 기자>

 

열매를 가르니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한 알을 맛본다. 단맛보다 신맛이 두드러지지만, 분명 내가 알던 석류의 맛이다. 알이 반은 붉고 반은 흰 걸 보니, 아직 덜 익었나 보다.

 

패션후르츠 씨앗을 둘러싼 노란 과육은 가종피이다. <사진 = GettyImages>

 

석류 안쪽에 있는 하얀 막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이것은 '태좌(胎座)'라고 불리는, 씨앗이 붙어 자라는 부위이다. 태좌는 열매가 가지는 일반적인 구조여서, 다른 식물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고추 속에서 씨앗이 붙어 있는 희고 말랑한 가운데 부분 역시 태좌다.

우리가 단물을 빨아먹는 과육은 씨앗을 둘러싼 조직인 '가종피(假種皮)'라고 불린다. 한자를 해석하면 가짜 씨앗 껍질이라는 뜻이다. 가종피를 위주로 먹는 다른 과일로는 패션후르츠가 있다. 그러고 보니 두 과일의 구조가 닮아 있다.

 

과육으로 청을 담근 모습 <사진 = 김신지 기자>

 

분리한 과육을 설탕에 무쳐 보관해 두었다. 적당히 시고 달콤한 석류청을 며칠 뒤면 맛볼 수 있겠다. 탄산수를 부어 마시면 원산지 DGIST 석류 에이드가 완성될 것이다.

 

내가 자연에서 직접 얻은 것이 내 입으로 들어가다니, 왜 이렇게 새삼스러운 걸까? 수렵채집 시대, 농경 사회일 때만 해도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음식은 자연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대신해주는 생산과 유통 과정을 거쳐 식당과 마트에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일 뿐이다.

캠퍼스 한복판 나무에서 직접 딴 석류를 씹으며 문득 든 생각이다. 어쩌면 자연과 완전히 단절된 채 포장된 음식만 먹고 사는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인류사에서 보면 훨씬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신지 기자 sjneuroneurony@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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