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입니다”는 사과가 아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 이야기하며 사과 대신 사용한 ‘유감’,
그 모습 보며 답답함 느껴온 만큼, 우리는 ‘바른 사과’하는 어른 되자
“이 일은 제 책임입니다.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유감’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할 때 쓰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유감(遺憾)은 “섭섭함(憾)을 남긴다(遺)”라는 의미를 가진다. “나 섭섭해요. 나 기분 나빠요.”라는 뜻이다. ‘유감’은 ‘사과’가 아니다. 사과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가져야 하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참 유감스럽다. “죄송합니다.”라는 사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유감’만 있다.
‘사과’의 자리를 ‘유감’이 뺏은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유감’을 사과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첫 사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흔히 한일국교정상화라고 부른다.) 즈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보도[i]에 따르면 일본의 시나 에쓰사브로 외상대신은 “양국 간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시간이 있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고 밝히며 외교 무대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들여왔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이때 외교적 수사로서 나온 표현이 ‘사과’로서 ‘유감’의 첫 사례라고 보도한 바 있으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국민은 광복 이후 일본 정부가 대-한국 외교 석상에서 ‘사과’ 속에서도 종종 섞어 사용해 온 ‘유감’이라는 표현에 깊은 답답함을 느껴왔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여준 진심 어린(적어도 그렇게 보였던) 사과와 다르기에 참 속상하다. 그 답답함을 지닌 우리 국민은 ‘사과’와 ‘유감’이 다른 어휘임을 안다.
어른이고 아이고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언제나 실수하고 잘못한다. 어른이 아이와 다른 점은 잘못에 사과하고 책임질 줄 안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글에서 어른과 아이의 기준점은 그깟 나이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도 100여 년 전 일본 제국주의자들처럼 큰 잘못을 할 수 있다. 아니, 우리가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지 이미 크고 작은 잘못들을 해왔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말할 용기를 가졌을 때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유감을 표하는’ 아이로 남을지, ‘진심으로 사과하는’ 어른으로 올라설지.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는 우리 DGIST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필자도 학보사 기자로서 취재를 몇 년간 이어오며 잘못한 적 있고 학교 당국의 실수도 많이 봐왔다. 그럴 때 우리 동료 구성원은 ‘만능 유감 주의’로 일관하지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성숙함을 보이기를 바란다.
권대현 기자 seromdh@dgist.ac.kr
[i] 동아일보. (2015년 9월 12일). [한국 외교사 명장면]<5>1965년 한일협정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50912/73580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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