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DGIST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했다. 휴학생에게 총학생회장단 선거권을 부여하고 중앙운영위원회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 구성원의 해임 권한을 박탈하는 등 다양한 개정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총학생회 산하 선거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세칙 개정과 전학대회의 뒷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뒤 돌아봐야 하는 점을 학보사의 편집장으로서 독자 여러분께 전한다.
필자는 이번 개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2025학년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개정안 초안을 작성했으며, 동시에 디지스트신문 DNA의 편집장으로서 전학대회에도 참여해 개정안을 의결했다.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한 사람이 개정안 작성을 주도하고 그 의결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우연히도’ 중선관위원장과 학보사 편집장을 겸임하며 중선관위원장으로서는 개정안 작성을 이끌고, 학보사 편집장으로서는 의결에 참여했다.
전학대회 ⊂ 중선관위?
그런데 이상하다. 총학생회와 중선관위가 공표한 문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올해 중선관위에 필자와 같은 경우가 많다. 전학대회 대의원 자격을 가진 인원은 8명인데, 그중 6명이 필자와 같이 중선관위원 직책을 겸임하며 개정안 작성과 의결 과정에 모두 함께하였다.
이번 전학대회에 참여한 인원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이질감은 커진다. 전학대회에 참여한 인원은 ▲김민성 총학생회장(`22) ▲박상혁 부총학생회장(`22) ▲권대현 디지스트신문 DNA 편집장(`23) ▲박미연 디지스트 응원단 D.ONE 단장(`23) ▲이윤호 생활관자치위원회장(`23) ▲서대양 방송국 FICS 국장(`23) 총 6명인데, 이들은 모두 중선관위원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중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선거시행세칙 개정안을 작성한 후, 중선관위원 일부가 이를 스스로 의결해 결정한 것이다.
여기까지의 상황만 보면 이런 카르텔이 또 있나 싶다. DGIST의 모든 학부생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선거 제도를, 대부분 선출직 출신도 아닌 몇 명의 학생이 스스로 개정하고 확정해 버렸다. 그러나 이는 모두 총학생회칙 상의 적법한 절차를 따른 것이다. 적법하기만 할까, 합리적이다. 각종 오류와 독소조항이 숨어있는 선거시행세칙을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중선관위와 전학대회가 이토록 독재적이기 그지없는 절차를 이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유명무실해진 학번대표, 전학대회 무산으로 이어져…
모든 학생의 권익을 두루 대변하기 위해, 총학생회칙은 각 학번에서 선출한 학번대표가 전학대회에 대의원으로서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연서 당선(특정 인원 이상 유권자의 서명을 받아 투표 없이 당선됨)된 이무근 학번대표(`19)가 임기를 마친 이후, 지금껏 단 한 명의 학번대표 출마자도 등장하지 않으며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저학번 학생 중 대부분은 제도의 운용을 목격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번대표가 전무한 현실 속에서도 각 학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중앙운영위원회(총학생회의 최고집행기구, 보통 ‘총학생회’라고 불리며 관련 업무를 맡는 학생들이 중앙운영위원에 해당한다. 이하 중운위)가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곪아온 학번대표 부재의 문제는 이번 전학대회에서 크게 다가왔다. 현행 총학생회칙 제40조에 따라 전학대회는 대의원의 자격을 가지는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학번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학번대표가 모든 학번에서 부재한 상황으로 전학대회 대의원 자격을 가진 학생은 총학생회장단 2명뿐이게 되었다. 이런 경우 동일 조항 제3항에 따라 전학대회는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무산된다.
총학생회칙과 세칙 등을 제·개정할 수 있는 마지막 민주적 장치인 전학대회까지 작동불능 상태가 된, 비유하자면 국회의원 출마자가 단 한 명도 없어 국회가 무산되고 입법부가 사라진 충격적인 상황이다.
최소한의 운영을 위해 예외조항을 발동한 총학생회장단
이런 상황에서 전학대회를 개회하는 방법은 총학생회칙 제40조 제2항에 명시된 예외 조항을 발동하는 것뿐이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전학대회 대의원이 다른 인원에게 대의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경우, 회칙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기준은 ▲대의원으로서 결격 사유가 없는 자 ▲총학생회 기구 및 단체 장 중 직접선거 또는 선거시행세칙에서 정한 방법으로 선발된 자 ▲선거에 의한 자격이 미흡하더라도 그 기구의 대표성·대의성·정당성을 충분히 갖는 자이다.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하려던 필자가 발견해 총학생회장단에게 전달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잊고 있던 이 작은 예외 조항을 통해 총학생회 산하 자치기구 대표에게 대의원 자격이 부여된 후에야, 전학대회를 개회할 수 있었다. 대표자에게 대의원 자격이 부여된 총학생회 산하 자치기구는 ▲동아리연합회 ▲디지스트신문 DNA ▲방송국 FICS ▲생활관학생자치회 ▲DGIST 학생 홍보대사 D’light ▲디지스트 응원단 D.ONE이었다. 총학생회장단 2명과 산하 자치기구장 6명으로 구성된 8명의 ‘미니’ 전학대회였다. 본질적으로 전학대회란 학생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로 구성되어 학생들이 간접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들의 대표임을 천명하기도 민망한 비선출직 출신들이 전학대회의 75%를 구성했다.
이번 전학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모두 중선관위원이었다
이쯤에서 중선관위와 실무단의 구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선관위는 대체로 산하 자치기구에서 1명 이상의 인원을 파견해 구성한다. 2025학년도 중선관위의 경우 각 단체에서 3명 내외의 인원을 파견해 총 20인으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기구의 대표성을 가지는 자가 함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6개 산하 자치기구 중 4곳의 대표자가 중선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이 자치기구장 출신 중선관위원들은 대의원 자격까지 부여받으며 전학대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전학대회 대의원의 75%(대의원 8명 중 ▲산하 자치기구장 4명 ▲총학생회장단 2명이 중선관위 소속)는 중선관위 소속이었고, 공교롭게도 중선관위 외부 대의원 2명이 일신상의 이유로 이번 전학대회에 참여하지 못하며, 중선관위원으로만 구성된 전학대회가 개회하게 되었다. 스스로 작성한 개정안을 스스로 표결하는 웃지 못할 상황은 모두 이렇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과연 민주적인 절차일까?
모두 절차대로 행동한 결과였다. 전학대회를 개회하고 문제 많은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하기 위해, 필자를 비롯한 중선관위원과 총학생회장단이 머리를 맞대 찾아낸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을 실행한 것이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참 많이 따른다. 앞서 설명한 내용들을 전학대회에 참여한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본인들이 작성한 선거시행세칙 개정안을 본인들이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상황 속에서 전학대회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였다. 깊은 역사와 학생 문화를 지닌 종합대학에서는 커다란 강당에서 각종 대표성을 가진 학생 대표자들이 격식을 차리고 만나 열띤 토론을 나누는 장인 전학대회가, 우리 DGIST에서는 예외 조항을 통해 겨우 개회해 한밤중 학생생활관 1층의 골방 같은 회의실에서 5분 만에 진행한 거수투표일 뿐이었다. 효과적인 내용 전달을 위해 이 오피니언에서는 학생총회와 학생대의원 등 여타 제도적 과정을 생략하고 설명했으나, 학생들의 무관심이 이렇게 독재적인 의사결정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명확하다.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
- 도산 안창호 -
지금 우리는 DGIST 학생 사회의 주인일까, 손님일까? 학생 사회에서 국회의원, 즉 입법의 책임자 역할을 하는 전학대회 대의원이 지난 4년간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럿씩 출마해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학번대표와 학생 대의원이 모든 학번에서 단 한 명도 출마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지난 4번의 선거에서 연이어 발생하며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거에 출마만 안 할 뿐인가, 우리는 학생 사회와 자치 활동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총학생회장단 선거에 후보자가 생길 때면 그들은 상대 후보에게 패배하는 상황이 아니라 개표를 위한 최소 투표율에 미달해 선거가 무효 처리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우리는 총학생회의 회원으로서 학생 사회에 참여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한 그 ‘주인’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중운위원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모두가 학번대표나 총학생회장단 선거에 출마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념상 모두가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우리 모두가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풍부한 학생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 평소 불편했던 점을 총학생회 산하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찬찬히 살피고 건의해 볼 수도 있으며, 동기들의 대표자로서 펼치고 싶은 뜻이 있다면 학번대표를 해볼 수도 있다. 학생 자치보다 다른 게 즐겁다면,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채로 학생으로서 생활을 즐겁고 알차게 보내는 것도 좋다. 학생 창업을 통해 꿈을 키워보는 것도 좋고 노래 내지는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끼를 뽐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창업 활동을 하다가 불합리한 점이 보일 때 중운위를 찾아가 상황을 알리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축제에 대한 건의 사항이 생길 때 동아리연합회와 상황을 개선시키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학생 사회에 열심히 참여하면 만사 좋은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행복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이 멋진 국가를 구성하는 것처럼, 우리가 총학생회에 관심가지며 스스로 알차고 재미있게 살아간다면 멋진 학생 사회가 될 것이다.
모두가 관심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총학생회와 학생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필자의 글이 그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며칠 동안 머리 싸매며 쓴 이 글을 끝까지 읽는 학생이 백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안다. 혹자가 필자를 향해 ‘관심 가져달라는 불평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보라’ 항의하면, 필자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 숙일 것이다. 편집장 직함이 박힌 학보사의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도 그럴듯한 대안 하나 내지 못하는 모습이 부끄럽지만, 그렇기에 필자는 DGIST와 학생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 가지며 노력하고자 한다. 기자로서 학생들이 관심 가지는 곳이라면 발 벗고 뛰어가고, 중선관위원장으로서 돌아오는 선거의 공정함을 위해 땀 흘리겠다. 각자의 위치에서 알차게 살며 자치 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가 이 사회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믿음, 우리가 이어받아 볼 때이다.
권대현 기자 seromdh@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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