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본 ‘OO일기’는 지난 2020년 배현주 전 편집장이 원내 익명성에 대해 고찰한 ‘꼰대 일기’ 칼럼에 영감을 받은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기적으로 ‘일기’ 칼럼들을 발행하며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디지스트신문 DNA는 사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고 넓은 범위로 기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때로는 가벼운 농담 거리를, 때로는 진지한 토론 거리를 던질 ‘OO일기 시리즈’가 우리 학생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일기 시리즈 돌아보기
2. [수습기자 일기] 편집장님 방 털기 (DGIST 학생생활관, 과연 안전한가?)
3. [군대일기] 깨달음이 없는 나라도 깨달은 이의 태도를 훔칠 순 있으니까
4. [편집장 일기]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 (전학대회, 선거시행세칙 개정 뒷이야기)
5. [부편집장 일기]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다녀오고
6. [권대현 편집장의 ‘자유’일기] 샤프펜슬과 전열기구를 금지하는 사회,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중학생 시절 학교의 독특한 규칙에 답답했던 적이 있다. 필자의 모교는(적어도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샤프펜슬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질풍노도를 달리는 일부 사춘기 학생이 샤프펜슬의 뾰족한 부분으로 학우를 찌를 수도 있다는 것. 비슷한 이유로 급식실에서는 스테이크를 배식하는 날에도 나이프를 받을 수 없어 젓가락으로 고기를 찢어먹어야 했고, 미술실이 아니면 학내에서 가위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다. 샤프펜슬이 없다고 나쁘게 마음먹은 사람이 폭력을 못 쓰는 것이 아니며, 흉기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유용한 도구 하나를 금지한다고 천하가 강구연월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재미있는 군대 농담도 하나 소개하겠다. “군대에서는 누군가 화장실에서 폭력을 당하면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 화장실 출입을 금지한다.” 군 내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비꼬는 농담이다. 필자의 모교가 학생 안전을 위해 내놓았던 그 ‘샤프펜슬 금지 제도’와 다른 점이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련된 요소를 모두 금지해버린 당시 필자의 모교와 이 농담 속 군대의 태도가 참 비슷하게 어리석다.
대학교 기숙사들에도 이런 제도가 있다. 우리 DGIST 학생생활관을 비롯한 몇 대학들의 기숙사는 규정을 통해 거주 학생이 전기장판 등 전열기구를 방 안에 들이는 것을 금지한다. DGIST 학생생활관은 사용하는 것을 적발하면 벌점을 부여하는 등 처벌 조항까지 마련하고, 학생들이 전열기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학생생활관은 화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그들의 마음을 존중한다. 존중만 할 뿐인가, 이해한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학생생활관 관리 직원들과 주위 행정원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들이 학생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해주었다는 점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정책과 그 골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정책을 도입한 철학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그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한 마음에는 공감하나,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전기장판을 비롯한 전열기구는 학생들이 편리하고 쾌적하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다. 발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물건을 제도로 금지해야 하나?
아니다. 적어도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전기장판을 비롯한 전열기구가 안전성 면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어 국민이 안전하게 생활하는데 손해를 끼친다면, 이는 전면 금지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마약과 도박, 성매매를 금지한다. 이 행위들은 상해나 폭행 등 상황과 달리 피해자가 없는 행위이지만, 국가는 이러한 행위가 사회와 국민 행복에 중대한 문제를 끼친다고 판단해 범죄로 규정한다. (이에 대한 자유주의적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이 논의를 생략하겠다.)
그러나, 전기장판은 다르다. 국가는 마약, 도박 등 행위와 달리 전기장판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풀뿌리 자치의 관점에서 보아도, 전기장판 사용을 금지하는 공동주택이나 아파트는 전혀 본 적 없다. 전열기구가 가진 발화 가능성, 즉 부정적 영향에 대한 확률을 외면하거나 일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기장판을 비롯한 시중 전열기구가 사람들에게 주는 이익이 잠재적인 위험 요소보다 훨씬 더 크다고 사회 구성원들이 판단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으로 굳어진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순히 ‘안전상 이유’라는 모호한 단어로 학생생활관 내 전열기구를 금지하고, 이 유용한 도구를 통해 효용을 얻을 구성원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까? 전열기구에 안전상 중대한 결함이 있어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확실한 연구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앞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요”이다.
장황하게 설명한 학생생활관 속 전열기구나 필자 모교의 샤프펜슬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핵심은 전열기구 사용 금지라는 사소해 보이는 정책을 넘어, 그 정책 속 철학들이 우리 사회에 내비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근거가 있다고 해도 모든 규제와 제한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근거’만이 규제와 제한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가?”, “그 근거는 어떤 철학적 배경 위에 만들어져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단순히 학생생활관의 규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담론, 즉 자유와 규제의 범위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하 밀)은 본인의 저서 ‘자유론’을 통해 이에 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밀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그 행위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뿐이라고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다. “학생생활관 내 전열기구 금지 조치는 과연 타인의 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인가?”
전열기구를 학생생활관에서 사용하며 생기는 잠재적인 화재 위협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반문할 여지가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전열기구의 효용이 잠재적인 위협보다 크다고 판단해 전반적으로 사용하는 이상, 이 반론은 그렇게 설득력 있지 않다. 밀의 기준에 따르면 막연한 위험 가능성을 이유로 구성원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는 것은 정당한 규제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규제와 제한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그 시작과 끝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 국가는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모든 정책은 ‘오로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라는 철학 위에 세워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들’로 사소한 자유를 억압받아 온 모든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160여 년 전 ‘자유론’을 집필하던 밀을 상상하며 조심스레 말해본다. ‘합리적인 판단’하에 개인이 최대한으로 자유를 누리는, ‘자유지상주의’스러운 사회를 꿈꾼다.
권대현 기자 seromdh@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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