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스트 신문 DNA에 수습기자로 들어온 지 어언 4개월, 내 이름을 달고 쓴 기사는 17개가 됐다. 나름 재미있게 기자 생활을 즐기고 있는 수습기자이지만, 내게도 큰 고충이 있다. 바로 DNA의 편집장님 서휘 형! 학기 초, 편안한 조언과 진심을 담은 응원으로 우리 수습기자들의 적응을 도우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편집회의와 여러 기사들에 시간을 쏟으며 우리에게 주시는 관심이 줄어들었다. 편집장님의 관심이 필요한 나 수습기자 권대현은 나쁜 마음을 먹었다. 편집장님의 학생생활관 방에 침입할 것이다. 편집장님의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나의 불만을 보여드릴 것이다.
편집장님의 방에 침입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학생생활관 보안센터로 향했다. 분명 나는 나쁜 마음을 먹은 범죄자지만 이 순간만큼은 선량한 학생이라는 듯 보안센터 직원분께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학생생활관에 거주하는 서휘라고 합니다. 제가 방 키를 방 안에 두고 나와버렸어요. 지금 방에 들어갈 방법이 없네요. 혹시 여분 키를 빌려주실 수 있나요?” 직원분께서 친절히 맞아주셨다. “아 그럼요~ 가능하죠. 여기 명부에 학생 이름, 전화번호, 방 동•호수 적어주세요.” 작전 성공이다. 나는 뻔뻔하게 편집장님의 성함과 전화번호, 동•호수를 적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 DGIST의 하나뿐인 학생생활관인데 방 키를 빌리는 과정에서 신분 확인 절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고 방 키를 빌려주겠어? 신분증 대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을 대조해 보시는 것 아니야?’ 전혀 아니었다. 편집장님의 방에 침입하려다가 발각당하고 체포되는 상상까지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안센터 직원분께서는 명부에 쓰인 편집장님의 성함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내게 방 동호수를 물은 후 키를 꺼내 건네주셨다.
곧장 편집장님의 방으로 향했다. 승강기에서 평소 누르던 내 방이 아닌 다른 방의 층을 누르자니 매우 떨렸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범죄 맞다.) 기분이었다. 편집장님의 방에 도착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편집장님의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편집장님의 방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아무 제재가 없었다. 보안센터에서 방 키를 빌릴 때 개인정보를 확인, 대조하지도 않았고, 내 신분을 확인하려는 절차도 없었다. 친절한 직원분께서 내가 말하는 동•호수의 방 키를 건네주실 뿐이었다. 편집장님 방의 문까지 열었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 마음을 고쳐먹고 방을 망쳐두지는 않았다.
만약 진심으로 모든 것을 다해 편집장님을 해코지하려던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악심을 품고 편집장님의 소중한 물건을 훔쳐 가려던 사람이 있었다면, 몰래 기다렸다가 편집장님이 들어오는 순간 폭력을 행사하려던 사람이 있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아무런 제재 과정 없이 편하게 방으로 들어와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을 것이다.
DGIST 학생생활관 비슬빌리지는 2012년 준공 이래 많은 학생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왔다. 큰 보안 사고 없이 운영되어 왔다고 알려진 학생생활관이지만, 최근 들어 학생들 사이에서 보안 문제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현재 학생생활관은 마음만 먹으면 타 학생의 방으로 들어가기 쉬운 구조이다. 학생생활관 1층 보안센터에서 방 키를 방에 두고 나온 학생들을 위해 여분 키를 대여해 주고 있다. 자신의 방 키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학생들에게는 편리한 정책이지만, 동시에 보안 문제도 지니고 있다. 앞서 진행한 ‘수습기자의 편집장님 방 털기’ 실험에서도 보이듯, 방 키를 대여하는 과정에서 보안센터는 딱히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원하는 방의 동, 호수만 명부에 적으면 아무런 절차 없이 방 키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학생부터 외부인까지 그 누구라도 모든 방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형호 생활관 관리자와 생활지원센터 이주한 과장의 이야기도 학생들의 불안함을 쉽게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지만 딱히 해결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바로 반납하도록 규칙을 제정해 문제가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안전센터 상주 직원분들께 주의를 부탁드릴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대한 보안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방지 대책이 생겨야 한다. 신분증을 통한 신원 증명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힘들다면, 적어도 사진과의 얼굴 대조 정도는 해야 한다. 명부에 남의 개인정보와 동•호수를 썼을 때 이를 잡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선은 있어야 한다. 물론 모두가 이웃이라는 생각과 함께 정겹게 생활하는 DGIST지만, 보안 문제는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안전한 DGIST 학생생활관 비슬빌리지가 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편집장님께 원한을 품은 그 어떤 수습기자도 편하게 방에 침입할 수 없기를 바란다.
* 본 기사에서 진행된 ‘수습기자의 편집장님 방 털기’는 DNA 편집장의 허락 아래 진행된 단순 실험임을 밝힙니다.
권대현 기자 seromdh@dgist.ac.kr
16.7%의 파격 예산 삭감, 과학계는 왜 분노하는가 (0) | 2023.11.23 |
---|---|
DGIST 첫 학생회비 모금, 그 평가와 뒷이야기 (0) | 2023.11.22 |
화낼 수 있으니 젊음이다. 싸울 수 있으니 청춘이다. – 대한축구협회 1인 시위 (2) | 2023.05.01 |
2022년 올해의 과학 단어: 활성인자(Activator) (0) | 2022.12.31 |
[오피니언] 몇 걸음 옆의 쓰레기통 대신 바닥을 선택한 기숙사 내 흡연자들 (0) | 2022.06.0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