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어느 날이었다. 어떠한 일이 방아쇠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대를 신청했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이랬다. 과학기술원에는 전문연구요원이란 대체복무 제도가 있다. 당시 학교에는 정원을 한참 넘는 인원이 해당 제도를 신청해서 내가 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때문에 어떤 계획을 세우든 염두에 둬야 하는 병역의무를 전문연구요원이라는 처리기에 안심하고 넣어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언제나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는 나지만, 앞으로 갈 길이 어디든 그곳에 장애물이 없길 원했다. 그렇게, 육군 현역 입대를 결심했다.
8월 23일, 신청할 수 있는 입대일은 그날뿐이었다. 입대가 정해진 후, 고요한 한 학기를 보냈다. 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기에, 남들이 하는 거창한 입대 전 작별 인사 같은 것들은 호들갑처럼 보였다. ‘잘 다녀올게’ 한마디를 남긴 후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어떤 각자만의 이유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그저 이유 없는 불친절일 뿐이었던 그들의 태도가 먼저 내 관자놀이를 눌렀다. 나의 처연함에 이보다 큰 흔들림은 없길 바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에 무너져버렸다. 첫날 밤을 보내고 입대 2일 차 아침, 귀에 때려 박히는 기상나팔 소리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지만 반사적으로 일어나 미친 듯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때를 기준으로 나의 처연함은 무너졌다. 분 단위로 시간을 세고, 쉬는 시간조차 누워있지 못하고, 딱딱한 철제 관물대에 기대어 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악을 질러 다 쉬어 버린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는 나만 남아있었다. 학생 전사빈은 그렇게 군인 전사빈이 되었다.
10월 31일 아침이었다. 훈련소에서 받은 모든 짐을 의류대에 넣고, 자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와 같은 자대에 배치된 훈련병 동기는 없었다. 그 크고 무거운 의류대를 매고 자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본청 막사까지 몇십 개의 계단을 올라 차오르는 숨을 누르고 인사과로 들어갔다. 그렇게 진짜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분노로 가득했다. 날마다 부조리하다고 느꼈고, 모든 것이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끌려왔음에 호소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끌려오지 않았으니까. 선택한 자는 떳떳할 때가 멋지니까. 앞으로도 복종보단 그 앞에 선택이 있다고 생각하며 떳떳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누군가에겐 정신 승리, 자기합리화 정도로 보이겠으나, 모든 일들에 ‘끌려왔음’을 호소하며 ‘굳이’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내뱉는 그들과 나는 같아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21세기에 태어났으니까. 내게 깨달음은 없어도, 깨달은 자들의 행동과 태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분노를 꾹꾹 누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잘한 군 생활이란, 빠질 수 있는 일들은 빠지며 개인 시간을 최대한 만들어 자기개발 열심히 하고 몸 건강히 나오는 것이라지만, 그것이 오답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나의 열정적인 군 생활도 많은 것을 남기리라 생각했다. 힘들어서 중대장 앞에서 눈물을 흘린 날도, 화가 나서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군필자는 공감하겠지만, 그리 거창하지 않아서 거창한 마음에 기댈 수도 없이, 그저 정확한 의미조차 모를 하루들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보이더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눈은 다르더라, 의지의 역치가 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숙사 2층에 내려가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돌리는 것이 귀찮아 그 딱딱한 밥을 생으로 씹던 내가 아침 뜀걸음에 상쾌함을 느꼈다. 나의 군 생활 목표 중 하나였던, 중대의 대체 불가 인력이 되어 인정받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믿음직한 선임이, 누군가에겐 든든한 후임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 직업은 군인이 아닌 학생이니, 내 본질은 병장이 아닌 공학도이니, 무엇이 사실 아닌 들 중요할까, 그저 나를 좋아하는 내가 되어 나왔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전역도 입대와 같이 무심하게 찾아왔다. 날 보내며 우는 후임도 둘쯤 있었고,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 후임도 한 명쯤 있었고, 선물을 주는 간부도 셋쯤 있었다. 고마움에 무심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전역에 별 감흥이 없었다. 입대와 달리 민간인이 된 지 2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냥 지난 학기를 마치고 개강하여 학교에 온 기분이다. 짧은 머리와 입에 붙은 말투, 군대식 사고방식이 나를 여전히 군인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그 1년 6개월이 일주일쯤으로 느껴진다. 물론 길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길었지만, 여운은 일주일쯤 지속된 일만큼 남는다.
입대 전의 삶은 회피의 연속이었다. 나의 판단은 나의 무능을 상정하지 않으니, 정상적인 발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외면을 택했다. 중요한 것은 판단이 아닌 태도인 것을 몰랐다. 군인 전사빈은 그래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엄청난 판단을 내린 사람, 엄청난 행동을 한 사람들의 태도를 훔쳤다. 직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나의 키는 내가 쥐고 있더란 것을 알았다. 나의 군 생활은 그런 것들을 남겼다. 그게 나의 20대 초반이었다.
전사빈 기자 jsb4058@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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