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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다양성 특집] 누군가는 다양성의 대가를 치른다

오피니언

2025. 7. 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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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과학자·공학자는 자폐증의 언저리에 있다? 체계화 유전자와 자폐증 사이 연관성 발견’ 이어집니다.

 

질병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생물적 특성이고, 어디부터가 질병인가?

왜 우리는 모두 다른 신체적 특성을 가져야 했을까?

이 모든 질문은 생물학적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과학, 윤리, 사회 문제와 맞물려 끊임없는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자폐인 인권 운동도 그중 하나다.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사이먼 배런-코언의 연구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폐인 인권 운동의 근거를 덧붙였다. 하지만 모든 논의에는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충돌하여 생긴 파편에서, 더 예리하고 현실에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오피니언은 배런-코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신경 다양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자폐인은 장애인이 아니라 패턴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자폐 연구 센터 소장 사이먼 배런-코언(이하 배런-코언)은 저서 『패턴 시커』에서 자폐인을 장애인이 아니라 패턴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재해석했다. 자폐인은 일반인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패턴을 발견한다는 관점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폐 유전자가 일으키는 체계화 능력 덕분에 인류가 물리 법칙을 발견하고, 도구를 만들고, 논리적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배런-코언의 주장은 신경 다양성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경 다양성 운동은 모든 인간이 다양한 신경계를 가져 인식, 사고, 운동의 양식이 다르고, 정신을 운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관점이다. 신경 다양성 운동에 따르면 자폐는 질병이 아니라, 그저 보통과 다른 정신 운영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은 분명 의미가 깊다. 자폐를 질병이 아닌 '다름'이자, '인류에게 필수적인 특성'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자폐를 결함으로 간주하는 오래된 시선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신경 다양성이 만드는 또 다른 배제 - 찬사와 낙인 사이 균형을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관점 사이 균형에 서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자폐인의 능력에 주목하는 관점은 기존의 낙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필요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또 다른 왜곡이 일어난다. 배런-코언의 의도와 다르게, 대중은 한정된 정보로 인해 편향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신경 다양성의 의미가 '체계화 능력이 뛰어나서 생산성 있는 자폐인만 인정하자'라는 논리로 왜곡된다면, 이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취지를 흐릴 것이다.

자폐인을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로 규정하는 방식은, 그 틀에 맞지 않는 이들을 주변화시킬 수 있다. 모든 자폐인이 탁월한 패턴 인식 능력이나 혁신적 사고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자폐인들, 특별한 재능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 역시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통계가 말하는 우리 주변의 자폐인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자폐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폐인의 다수는 일상생활 및 사회적 관계, 경제적 자립 등 전반에서 구조적인 지원 없이는 독립된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폐성 장애인의 56.6%는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대부분의 도움 제공자는 가족 구성원(82.1%)으로 나타났다. 또한 72.6%가 집 밖 활동이 불편하다고 답했으며, 이의 원인으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가장 컸다. 경제적 독립 또한 쉽지 않다.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원함에도 불구하고장애 정도가 심해 취업이 어렵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51.6%에 달했다.

우리는 자폐를 질병으로 단순화하거나, 반대로 무작정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적절한 지원과 치료, 교육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신경 다양성 다시 보기 - 개체에게는 잔인한 생물의 다양성

한편으로, ‘신경 다양성이라는 용어의 의미 또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 가지 형태와 색으로 핀 아름다운 꽃밭이 떠오른다. 다양성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그리고 종 전체에게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개체의 특성이 다양할수록, 다양한 환경에서 누구라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꽃밭과 같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사진 = Erda Estremera>

하지만 다양성은 종을 이루는 개체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다양성 위에 분포한 각 개체는 저마다 다른 유전적 출발점에 서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만큼이나 생존 가능성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환경에 적합하여 쉽게 살아남지만, 누군가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다양성은 종 전체에 유익할 수 있지만, 그 내부에 존재하는 개체에게는 고통과 불균형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것이 다양성의 역설이다.

꼭 자폐증과 같은 질병이 아니어도, 우리는 사소한 신체적 다양성에 불만을 품는다. 그렇기에 누구나 다양성의 역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키가 다양한 세상에서 왜 하필 나는작은 키를 가졌나? 다들 다양한 기질을 가졌는데 왜 하필 나는허약한 기질을 가졌는가? 모두가 같은 키를 가졌더라면, 모두가 같은 체질을 가졌더라면, 상대적으로 키가 작거나 허약할 확률도 없었을 테고, 나는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는 왜 치명적인 질병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래픽 = 김신지 기자>

 

이렇듯 다양성의 역설은 신경 다양성뿐 아니라 다른 유전적 특성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낫 모양 적혈구증이다. 이 질병은 왜 치명적인 질병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는 적혈구의 모양을 변형시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만약 부모로부터 이 유전자를 두 개 모두 물려받으면 심각한 빈혈과 순환계 질환으로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런데도 이 '나쁜' 유전자는 말라리아 유행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상 유전자 하나와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 하나를 함께 가진 사람은 빈혈로 심하게 고생하지 않으면서도 말라리아 감염에 저항력을 갖는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는 말라리아로 죽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의 보호를 받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한 것이다.

결국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는 정상 유전자와 짝을 이뤄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적혈구 유전자의 다양성이 늘어났다. 하지만, '다양성의 혜택' 뒤에는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있다. 정상 유전자와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를 모두 가진 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25%의 확률로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 두 개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심한 빈혈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종족 전체의 생존 전략을 위해 개인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다양성은 전체를 살리지만, 개체에게는 때로 불공정한 짐이 되기도 한다.

 

자폐 스펙트럼의 골디락스 존

다시 자폐증의 사례로 돌아가 생물학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배런-코언의 주장을 다시 조명해 보자. 그의 연구에 따르면, 체계화 능력이 뛰어난 과학자·공학자 부모 사이에서 자폐인 자녀가 태어날 확률이 높고, 체계화 성향과 자폐 성향 사이에는 공통 유전자가 존재한다. 낫 모양 적혈구증의 사례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자폐는 낫 모양 적혈구증과는 다른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가 적혈구 기능을 망가뜨리는 것과 달리, 자폐 관련 유전자는 뇌를 완전히 손상하지 않는다. 단지 뇌의 작동 방식을 '다르게' 만들 뿐이다. 또한 자폐는 단일 유전자가 아닌 수백에서 수천 가지 유전자가 관여하는 복합적 현상이다. 이 때문에 자폐는 '있다/없다'의 이분법이 아닌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배런-코언이 말하듯, 실제로 자폐 유전자가 체계화 능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다면, 고도의 체계화 능력을 지닌 과학자나 공학자들은 자폐 유전자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 자폐 증상은 없지만 체계화 능력은 강화된 상태, 이른바 자폐 스펙트럼의 골디락스 존에 해당하는 지점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유전적 다양성이 만들어낸 최적점 인근에 존재하며, 그 덕분에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관점을 바꿔보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뛰어난 체계화 능력은 그 개인만의 성취가 아니라, 누군가는 자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신경 다양성이라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우리는 보통 능력이나 고통을 개인에게 속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들은 다양성이라는 전체 구조에서 비롯되어 확률적으로 각 개인에게 배분된 결과이기도 하다.

 

다양성의 혜택이 모두의 것이라면, 부담 또한 모두의 것

체계화 능력이 낮은 사람, 평균인 사람,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폐인, 그리고 생활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자폐인까지, 모두가 이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며, 각기 다른 조건과 과제를 부여받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다름이 곧 장애와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다양성의 역설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종 전체의 생존 전략인 동시에, 개체에게는 감당해야 할 불균형한 운명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다양성이 만들어낸 불균형에 그저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타인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자폐에 관한 신경 다양성은 체계화 능력이라는 인간의 공동 자산이 바로 다양성에서 기원했음을 일깨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모두는 다양성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자로서, 그 비용을 떠안은 이들의 짐을 함께 나눌 윤리적 책임을 갖게 된다.

신경 다양성 운동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아닌 '구조적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체계화 지능이 뛰어난 과학자들이 자폐 스펙트럼의 골디락스 존에 있다면, 그들의 능력은 개인적 성취이면서 전체 다양성의 산물이다. 이런 인식만이 생산성과 무관하게 모든 자폐인, 나아가 모든 인간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진정한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신지 기자 sjneuroneurony@dgist.ac.kr 

박재윤 기자 dgist100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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