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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기자의 ‘애주’ 일기] 소주는 죄가 없다

오피니언

2025. 6.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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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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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소주를 시키면 어디에서 인가 꼭 한 번씩은 들리는 말이 있다.

“공업용 알코올에 첨가제를 잔뜩 탄 저질 술을 왜 먹어?”

위스키, 와인, 하이볼과 같은 양주 열풍 이후 부쩍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갓 성인이 된 후 양주 몇 병을 먹어본 당시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맛없는 술을 왜 먹는 거지?’

 

우리가 주로 먹는 초록 병 소주는 정확히 말하자면희석식소주이다. 타피오카 등에서 유래한 녹말로 만든 주정(95% 순수 알코올)에 알코올 함량을 낮추기 위한 물과 주정의 역한 향을 가리고 복합적인 맛을 내기 위한 감미료를 넣어 만든 술이다. 소주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공업적으로 만들어진 알코올을 물과 섞어 만든 15~20%짜리 알코올 용액이라는 의미다.

희석식 소주의 대표주자, 참이슬 <사진 = 하이트진로 제공>

과거에는 회식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고 소주 이외의 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소주가 주류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코로나 대유행 이후 회식 문화가 많이 줄어들면서 이른바혼술족이 많아졌고 양주와 칵테일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반대급부로국민 술소주의 위상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주 판매량은 날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2019 91kL였던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2023 84kL로 약 8% 감소했다. 소주의 매출 또한 내리막을 타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 따르면, 23년 소주 매출은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12.53% 늘어난 것 외에는 하이트진로 '참이슬' 무학 '좋은데이' 대선주조 '대선' 등 대부분의 희석식 소주 매출이 10% 안팎의 매출 하락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점 희석식 소주를 찾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주가 원래부터 이렇게 맛없는 술은 아니었다. 고려시대 몽골군에게서 유래한 소주(燒酒)는 곡물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양조한 청주를 증류하여 얻는증류식 소주를 뜻했다. 우리 조상들의 입맛에 딱 맞았던 새로운 술은 금방 우리 술상을 비집고 들어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증류를 통해 만드는 소주의 특성상, 막대한 양의 쌀이 소비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왕과 사대부가 즐겨 마시는 술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쌀 생산량의 증대와 양조업의 성장으로 서민 계층까지 즐겨 마시는국민 술의 지위에 올랐다. 또한 소주는 대량생산이 아닌 집집이 빚어 먹는가양주(家釀酒)’였기 때문에 지역별로 다양한 소주가 존재했고, 그 수는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것만 해도 400 여종에 달했다고 한다.

 

단원 김홍도(1745∼)의 후원유연(後苑遊宴) 일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소주와 함께 풍류를 즐기고 있다. <사진 = 프랑스 기메박물관 제공>

그러나 세계적 격변기에 소주는 우리 민족과 함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점차 쇠퇴해 갔다. 일제강점기 초반 총독부는 세수 확보와 일본 술의 조선 진출을 위해 주류세와 양조 자격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세법을 발표하였다. 양조에 대한 제한 면허제를 시행하고 가양주의 판매를 불법화하여 전통적인 소주 생산 업주들은 순식간에 밀주업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한 세수 관리의 용이함을 이유로 모든 주류를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시켜 1000여 종이 넘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소주의 문화를 억압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코올 주정을 물에 타는 방식의 소주가 세금이 저렴하다는 법의 빈틈을 노린 주류업자들이 희석식 소주를 대량생산 하게 되었고, 원래 우리 소주이던 증류식 소주는 저렴한 가격의 희석식 소주로 점차 대체되어 갔다.

 

희석식 소주의 공세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증류식 소주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가양주의 특성상 한국 전쟁을 거치며 많이 실전되었으나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5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도 근근이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소주를 보전해야 할 문화가 아닌 그저 곡식 소비량이라는 숫자로만 본 군사독재정권의 양곡관리법이 1965년 시행되면서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가 담긴 대부분의 증류식 소주는 영원히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현재는 과거 문헌 속 이름과 맛, 효능을 토대로 소주 제작법을 추정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류식 소주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희석식 소주가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네 소주는 압축 고도성장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진짜우리 술을 잃어버린 데 더해, 그 잃어버린 기억조차소주의 자리를 꿰찬 희석식 소주에 의해 빼앗겼다. 그렇게 소주라는 단어는 초록색 병에 담긴희석식 소주를 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소주라는 이름을 빼앗아 간 희석식 소주를 욕하지 말라.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증류식 소주 대신 옆을 든든히 지켜주었던 술이 바로 희석식 소주이기 때문에.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묵인되었던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 속 민초들의 버팀목은 고달픈 노동 후 마셨던 값싼 소주 한 잔이었다. 소주 한 잔에는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독립과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민초(民草)’의 정신이 녹아 있다. 그래서 소주가 더 쓰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1980 년대 포장마차의 모습 <사진 = KBS Archive 제공>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는소주라는 단어의 정의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주는 증류식이니 희석식이니 하는 단순한 술의 분류 기준이 아닌, 민족의 한과 얼이 담긴, 우리가 사랑하는한국인의 술이다. 갖가지 시련에도 우리 민족처럼소주라는 단어는 꿋꿋이 우리네 술상에서 살아남았고, 그 풍파에 형태가 변했을지라도소주는 항상 우리 옆을 지켜왔다.

 

소주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단지 우리 곁에서 삶의 고단함을 단돈 몇천 원으로 달래주기 위한 것뿐이다.

 

 

노경민 기자 nomin@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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