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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빈 기자의 ‘밴드’일기] 넬 - 처절함이 묘사하는 생명력

오피니언

2025. 4. 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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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OO일기는 지난 2020년 배현주 전 편집장이 원내 익명성에 대해 고찰한 ‘꼰대 일기’ 칼럼에 영감을 받은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기적으로 ‘일기’ 칼럼들을 발행하며 출발했습니다앞으로 디지스트신문 DNA는 사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고 넓은 범위로 기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겠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때로는 가벼운 농담 거리를때로는 진지한 토론 거리를 던질 ‘OO일기 시리즈가 우리 학생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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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사빈 기자의 ‘밴드’일기] 넬 - 처절함이 묘사하는 생명력

 

종종, 혹은 가끔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본인만의 공간은 그저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나만의 공간은 보통 머릿속에 마련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감상을 늘어놓는 공간, 그런 공간에서 많은 감정들을 소비하며 이성으로 살아간다.

언제나 좋은 글이 질 좋은 감상과 여운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보기 편하고, 그럼에도 노래가 듣기 편하고, 편하기에 그런 것들에게서 감상, 여운, 뭐 그런 것들을 더 자주 느낀다.

눈을 감아도 화려함을 느낄 수 있기에, 그렇기에 노래를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들의 넘치는 감정을 사랑한다. 그들은 곡을 쓰고,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NELL).

김종완(보컬, 기타, 키보드) 이재경(기타, 키보드) 이정훈(베이스, 키보드, 코러스)로 구성된 밴드로, 1999년부터 음악 활동을 이어 온 한국의 나름 '근본' 밴드 중 하나이다.

대중들에게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밴드이지만, '기억을 걷는 시간'이 보여주는 넬의 색이 그들이 가진 전부는 아니다.

필자는 밴드의 매력을 과도함, 넘침 등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색안경이 너무나 짙어져서 이제는 조용함, 늘어짐, 심지어는 담담함에서조차 과도함과 넘침을 느낀다.

넬은 어떤 화려함을, 어떤 넘침을 가지고 있기에 내 음향기기를 이렇게도 많이 방문하는 건지, 전적으로 필자인 나의 입장에서 큐레이팅이라면 큐레이팅을, 그저 감상문이라면 감상문을, 나의 생각들을 담아 써 내려고 한다.

그들을 깊게 이해할 생각도 없고 그들을 만났을 때 던질 질문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이 글은 그들을 어떤 시선에서 묘사한 글일 것이고 이것이 누군가에게 얕은 공감을 준다면, 그렇다면 조금 의미를 가질 글이 될 것 같다.

 

'백색왜성' ( Walking Through Me, 2004)

 

'초록비가 내리고

파란 달이 빛나던

온통 보라빛으로

물든 나의 시간에

입을 밎추던 그곳'

 

넬의 정규 2집 《Walking Through Me》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의 매력은 서사, 가사, 목소리 등에서 온다. 필자는 직관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많은 해석이 가능한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고정된 시선을 의미하는 것인지, 초점이 없는 시선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곡의 가사에는 은유가 많지만 그럼에도 던지는 감정이 직관적이기에, 그렇기에 필자가 사랑하는 곡 중 하나이다.

백색왜성은 공허함을 던지는 곡이다. 공허해서 절규로 채워보려는 그런 시도들이 담긴 곡이다.

초록색 비와 파란색 달,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세상. 이공계의 사람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세상에 오히려 공감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어떤 설명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는 세상을 사랑하는 과학도와 공학도가 적어도 필자의 주변에는 적지 않게 있다. 광원이 무엇인들 산란이 무엇인들 하늘에서 내린다는 저 비의 정체가 무엇인들 그저 생각 없이 머리에 그릴 때가 가장 즐겁고 선명하다.

세 번째 후렴구가 끝나고 노래는 이 가사를 반복한다.

 

'잘못돼 버렸어

부서져 버렸어

돌아가고 싶어

초록 비가 내리던 그 곳'

 

넬의 보컬 김종완은 읊조리듯 이 말을 반복한다. 필자는 쉽게 공감하지 못할 상황을 담은 감정이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그런 상황을 떠올리지 못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몇 번 이 노랫말이 반복되다가 그 이후에는 절규 같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어쩌면 비도 많이 내리는 곳에서 지칠 때까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그린다.

그를 묘사한 내가 그린 것인지 그가 그린 본인을 내게 전달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선명한 이미지가 머리를 감싼다.

이 곡은 라이브 버전으로 들을 때 압도될 정도의 화려함과 무거움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습기가 짙은 김종완의 보컬은 무겁고 축축하지만 그것이 불쾌함보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전달한다. 녹음실이 아닌 공연장에서 울리는 목소리이기에 조금은 거친 목소리가 몸을 투박하게 잡아 끄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중가요 치고는 긴 8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노래다. 하지만 그 8분 남짓한 시간이 분명 8분보다는 훨씬 긴 체감 시간을 전달한다.

악기를 다루는 것에 조예가 깊지 않기에 보컬 이외의 세션에 대한 감상은 남길 자신이 없다.

감상이 없는 것이 아닌 표현할 자신이 없는 것이라 세션에 주목할 곡은 아니라는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meaningless' (Healing Process, 2006)

 

'그래도 너 걱정은 마

기억이라는 것 말야

꽤나 편리하게 작용해

도대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지워버린 채

정말 너무 이기적이게

혹은 너무 잔인하게

"이번에야말로 진짜일거라고 생각해, 사랑해"'

 

너무나 직관적인 가사이지만 필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을 그린 가사이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지쳐버린 사람 정도로 확장한다면, 그러니까 이번에도 무리한다면 충분히 이입이 가능하다.

시작은 키보드 소리가 귀를 채운다. 공간감을 지원하는 음향기기로 듣는다면 양 귀를 번갈아 가며 음이 하나씩 강조된다. 그 소리가, 보컬도, 기타도, 베이스도, 드럼도 없이 시작하는 그 키보드 소리가, 귀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 시작부터 큰 만족감을 준다.

뒤이어 다른 세션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우중충한 템포의 드럼이, 사실 초반에는 별 집중이 되지 않는 기타가, 언제나 존재감이 짙지는 않은 베이스가 등장하고 마치 전화를 하는 듯, 무전을 치는 듯 노이즈가 잔뜩 껴있는 보컬이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게 그래

영원 할 것만 같은데

어느 순간 모두 끝나버려

이별이란 것도 그래

알고 싶지가 않은데

어느 순간 다 알게 되버려'

 

술에 잔뜩 취한 그리 젊지는 않은 젊은이가, 하지만 젊은이기에 그리 큰 깨달음 같은 것은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가진 그런 젊은이가 사랑에 대해 말을 툭 던지는 듯한 그런 보컬이 등장한다. 노이즈가 껴있기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술에 취해있음은 확실하다.

이 노래에 공감할 수 있음은 이런 가사에서 오는 것 같다. 깨달음이 큰 것 같지는 않은 말, 상처가 많은 것 같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 본인의 상처를 들이미는 말들이 젊음의 불안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런 것들이 적지 않은 공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꼭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실연당해 술을 잔뜩 마신 친구에게 새벽에 전화가 온 것 같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너무나 귀찮아서 하품을 했을 테지만, 5분 정도의 노래이기에 몰입도가 낮아지기 전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나의 참을성이 문제인지, 노래가 길었더라도 몰입도가 낮아지지 않았을 지는 알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진짜일거라고 생각해, 사랑해"'

매 후렴 마지막이 이 말로 끝난다. 1절에서는 나름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지만 2절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적당히 뭉개지는 발음이 사실감을 더해주는 것 같기도, 그래서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 같기도, 그래서 감정이 더 잘 전달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에 상처 받은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정말 아주 추한 모습이 된다. 이 노래가 그 추한 모습을 전혀 숨기지 않아서, 하지만 감동적으로 다가와서, 종종 들리면 쓰러질 정도의 감동을 주는 노래 중 하나다.

잘 읽어보면 다음 사랑의 시작을 말하는 가사인데 도대체 왜 슬픔과 처절함이 전달되는지, 왜 사랑을 체념으로 시작하는지 아직 공감할 수 없다.

 

'' (Healing Process, 2006)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단 생각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제발 내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하고
역시 만나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런 생각해

 

위의 ‘meaningless’가 수록된 《Healing Process》의 또 다른 수록곡이다.

또한 사랑을 말하는 곡, 혹은 평생을 잊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곡이다. 화려함에 쉽게 압도되는 필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만한 가사가 많다.

압도되는 화려함은 언제 다가올까. 압도되는 화려함은 예상치 못한 순간 화려함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눈물을 주며 다가온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현실감이 없는 순간이기에 갖는 시간의 멈춤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이 아름답고, 내일이 만드는 불안을 이 순간에는 느끼지 않고 싶다는 바람이 축축하다. 넬은 아름다운 순간에도, 평화로운 순간에도, 슬픈 순간에도 언제나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뿐, 모든 것을 놓고 순간을 즐기는 가사를 적지 못한다.

 

꽤나 조그마한 어쩜
한심할 정도로 볼품없는
그저 그런 누추한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조용한 웃음과 시선
슬픔을 건네주며

 

극적인 효과를 주려 순간을 초라하게 묘사하는 것인지, 그런 순간이기에 작은 행복들이 소중하다는 것인지, 정말 그 순간의 행복은 작은 것이 맞는지도 알 수 없다. 많은 것들에 예민해져야지, 작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아야지,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기억해 두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작은 것들부터 천천히 객관적인 공간에 주관적인 형용을 더해 순간을 묘사하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을 느끼고 저장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본인을 너무 사랑하여 동정하는 것일지도. 혹은 많은 호르몬들이 또 그를 새벽 같은 공간으로 가져가는 것일지도.

 

 

 

 

Oh, and I wish you feel the same
Are you feeling the same?
'Cause I wish you feel the same about this moment

 

결국은 또 사랑을 말하고 있다. 언제쯤 넬의 노래들을 넬의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을 상대도 똑같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공감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눈치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고, 그와 더욱 같아지고 싶은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넬의 저 가사가 더 큰 행복을 위한 말인지, 행복에 확신을 갖고 싶은 불안인지도 필자는 잘 알 수가 없다.

 

세 곡을 소개했다. 밴드 -> 앨범 -> 곡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기에 너무 작고 구체적인 것들로 크고 피상적인 것들을 소개하려 했나 싶지만, 어차피 넬에게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나의 글로 관심을 갖게 될 리 없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공감, 필자는 공감을 원한다.

공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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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 너무 짙어 거부감이 드는 글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감성 없이 노래 들으려면 그냥 듣지 말고 나가면 된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가진 넬은 행복을 말하는 곡에서도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단점, 혹은 장점이라고 말 할 수는 없으나, 매력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너무 우울을 짜내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그들의 가사가 매끄럽지 않더라도, 그들이 내는 소리가 편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그것들이 전혀 거부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많은 것들을 밀도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넬은 그런 밴드이다.

 

전사빈 기자 jsb4058@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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