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한국시간 20시경,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부커상, 프랑스의 공쿠르 상에 이은 세계의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문학계에서 부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이라며 상을 수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한강의 수상은 감히 예측하기 어려운 수상이었다. 우선 노벨문학상 평균 수상자 나이인 65세에 비해 한강은 53세에 불과하다는 점이 그 첫 번째 근거이다. 보통 노벨문학상의 경우 하나의 작품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노년까지의 모든 작품을 포함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평가하여 상을 수여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례적이다. 또한 스웨덴 아카데미는 관행상 매년 짝수 해에는 여성에게, 홀수 해에는 남성에게 번갈아 수여해왔다. 이에 2024년인 짝수 해에는 여성에게 수여해야 하는데, 아시아권에는 그동안 여성 수상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파격적이었다. 적중률이 높아 다양한 전문가들이 관행처럼 참고하는 자료인 도박사이트 ‘레드브룩스’에서도 한강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을 정도다.
한강의 문학작품을 세계로 전한 번역가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사에 남을 쾌거로 평가되지만, 그 배경에는 작가의 탁월한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번역가들의 헌신적 노력이 큰 역할을 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노벨 문학상의 초석이 된 한강의 2016년 부커상 수상 또한 <채식주의자>가 ▲이탈리아어 ▲독일어 ▲폴란드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내 문학작품의 우수성은 이미 검증된 바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제적 쾌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번역으로 국내 문학작품을 세계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번 노벨상으로 인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처음 한강의 작품이 단독 번역된 것은 2011년으로,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기반으로 번역가 김훈아가 일본어로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 같은 년도에 번역가 황하이번이 베트남어로 해당 작품을 번역하였으며, 이후 윤선미 번역가가 스페인어로 번역하며 서구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2015년 영문으로 해당 작품을 번역했다. 2009년부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여, 2010년부터 5년간 런던대학 SOAS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한 그녀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첫 20페이지를 번역해 영국의 출판사 ‘그란타 포르토벨로’에 보냈다. 이후 한강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오랜 고민 끝에 번역을 완료했다. 영문 번역본 출간 이후 ‘채식주의자’가 1년 만에 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을 보면, 한국 문학작품이 가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게 해준 번역가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번역인들 처우 개선이 우선되어야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이러한 번역가의 작업과 더불어, 도서 출판, 편집, 디자인, 교열, 유통을 담당하는 출판사와 번역가를 양성하고 번역 산업을 후원하는 번역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2009년 영문번역의 권위자 윤혜준 교수가 지적했듯이, '문학 번역 작업이 창작 작업에 비해 현저히 차별받는 현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우선 번역가의 상황을 살펴보자.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 어느 젊은 번역가의 생존 습관’를 쓴 김고명 번역가는 꼬박 10년 일해서야 원고 장당 4,000원대 임금으로 진입했다고 한다. 이는 한 달에 꼬박 20일을 꾸준히 번역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다고 할 때, 실수령액 331만 원을 받는 금액이다. 이조차 오랜 경력과 꾸준한 일감이 있는 이상적인 상황에서의 계산이고, 실제 번역가가 받는 임금 수준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번역원의 경우는 어떨까? 한강 문학작품 번역 85건 중 76건을 지원한 한국문학번역원의 연봉은 4천7백9십만 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 평균 연봉인 6천1백7만 원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31곳 중 최하위 수준이다. 신입 초봉은 실수령액 2300만원 선으로, 최저임금과 비교할 때 508원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이러한 저임금에 근 3년간 입사자 대비 퇴사자 비율은 평균 73%에 달한다.
기획재정부의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번역 인력 양성에 할당된 예산은 ▲2022년 41억 6천 6백만 원▲2023년 38억8천6백만 원 ▲2024년 26억9천1백만 원으로 매년 감소해왔으며, 2025년에는 이보다 더 줄어 21억8천8백만 원 수준이다. 물론 이번 한강의 수상의 영향으로, 2025년 번역·해외 출판 지원 예산이 23억에서 31억으로 34.5% 증액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정책일 뿐이다. 이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번역 작업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한강의 수상을 바라보며, 보다 많은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문학만이 가진 고유성과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이 번역되어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는 번역인들에게 꾸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생태계에 기반한다. 그 생태계가 지속될 때, 한국 문학은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상아 기자 sa053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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