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글로 된 기사를 잘 안 읽는다. 기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디지스트신문 DNA의 단골 면접 질문이다. 정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사 같은 긴 글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지나 영상 같은 매체를 더 선호한다. 왜 여러분들은 긴 글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까? 단지 글이 재미없고, 귀찮아서일까?
이런 의문을 품는 나조차도, 읽기 습관의 변화를 체감한다. 책을 예전처럼 읽지 않는다. 많이 읽지 않는 게 아니라, 글을 순서대로 읽는 인내심이 없어졌다. 끊김 없이 5페이지 이상을 읽지 못하고, 읽고 있는 챕터가 언제 끝나는지 페이지를 확인하고, 문단을 다 읽기도 전에 결론부터 알려고 한다. 심지어 소설을 읽을 때조차도 그렇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사회적 다수가 겪는 현상이라면, 문제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환경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독자가 긴 기사를 읽기 힘들어 하는 원인은, 다름 아닌 기사가 공개되는 곳인 인터넷에 있었다. 디지털 매체와 온라인 환경은 원래부터 긴 글을 읽기에 좋지 않은 곳이다. 인터넷은 사용자의 읽기 습관을 어떻게 바꾸는 걸까? 그리고 짧은 글만 읽는 습관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정보의 밀림에서 사냥하듯이 읽기
전통적인 읽기 매체인 책과 인터넷의 제일 큰 차이점은 읽을 글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다.
책은 어느 정도 검증된 글이다. 출판사를 거쳤고, 편집자의 손을 탔고, 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것들이다. 작가 이름만 봐도, 목차만 훑어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이 작가 소설은 좋지”, “저명한 과학자가 쓴 책이야.”, “책의 6장에 내가 원하는 자료가 있겠네.” 독자는 책을 고르기 위해 서가를 누빈다. 능동적이며,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래서 일단 책을 펼치면 인내심을 발휘한다. 직접 고른 책이니까.
인터넷은 정반대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치면 글이 쏟아진다. 그중 상당수는 쓰레기다. 조회수를 올리려는 낚시 제목, 광고를 숨긴 협찬 글, 복사-붙여넣기로 만든 짜깁기 정보, 사실 검토가 되지 않은 AI생성 글 등, 질 좋은 글을 찾기까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이 환경에서 독자는 사냥꾼이 된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게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는 일이라면, 인터넷에서 글을 찾는 건 밀림에서 사냥감을 찾는 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제목을 본다. 첫 문단을 훑는다. 스크롤을 내린다. 이미지를 확인한다. 판단한다. 문단을 건너뛰며 읽는다. 이 글을 읽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인터넷이 본격 보급된 지 1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 연구자들은 이미 이 변화를 포착했다. 온라인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글을 읽는지 산호세 주립 대학교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70% 이상이 ▲훑어 읽기 ▲핵심어만 골라 읽기 ▲선택적으로 읽기 ▲띄엄띄엄 읽기 전략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는 사람은 소수였다.
훑어 읽기 자체는 죄가 없다. 쓰레기 더미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빠르게 골라내려면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글을 찾았다면, 그 다음엔 달라져야 한다. 속도를 늦추고, 집중하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읽기 방식의 전환을 막는 것이 있었으니…
스크롤을 내릴까? 알림을 확인할까? 너무 많은 샛길들
인터넷에서 글을 읽는 건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은 집중을 방해할뿐더러, 인지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글이 얼마나 긴지 스크롤 내려서 확인해 볼까?", "추천 기사에 더 흥미로운 제목이 있는데?", "카톡 왔네, 잠깐만 확인하고 다시 볼까?" 매 순간 우리는 지금 읽고 있는 글에서 떠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선택지, 읽지 않은 글들이 클릭 한 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새로운 화면, 새로운 정보는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 샘솟는다. 지긋이 글을 따라가는 선형적 읽기에 착수하려 해도, 금세 다시 훑어보고 탐색하는 모드로 돌아간다. 원래 목적은 '좋은 글을 찾아서 제대로 읽기'였는데, 어느새 탐색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나중엔 목적 자체가 사라진다. 심심하면 습관적으로 뉴스 피드를 열고, 인스타 릴스를 스크롤하고, 위키피디아에서 끝없이 하이퍼링크를 타고 헤맨다.
책은 다르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지금 펼쳐진 페이지를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지 말지, 그것만 결정하면 된다.
스크롤과 책장 넘김은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이지만, 읽기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스크롤은 연속적이다. 미끄러지듯 무의식적으로 흘러간다. 반면 책장 넘김은 불연속적이다. 종이를 넘기기 전 짧은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장을 잘 읽었나? 다음으로 넘어가도 괜찮은가?'
물론 책을 읽을 때도 앞뒤 몇 장 건너뛰어 읽고, 다른 책을 찾아보고, 잠시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훨씬 능동적이다. '뒷부분에서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뭐지?' 목적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긴다. ‘방금 본 것보다 더 쉽게 설명하는 책이 있을까?' 기대를 품고 서가로 간다.
인터넷에서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매체가 우리를 선택한다. 추천 알고리즘이, 알림이, 하이퍼링크가, 자동 재생이 우리를 이끈다. 밀림의 정보 사냥꾼에서 홍수 속 표류자로 신분이 바뀐다. 그리고 그 표류 속에서, 우리는 끝까지 읽는 법을 잊어간다.
내용에는 어울리는 그릇이 필요하다
끝까지 읽기가 사라질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고의 단순화, 흑백논리다.
온라인 독자가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지표다. 글뿐 아니라 영상도 마찬가지다. 공들여 만든 긴 영상보다 짧은 쇼츠 여러 개가 조회수도 높고, 수익도 좋다. 그래서 글쓴이는 짧은 길이 안에 내용을 욱여 넣어야 한다. 독자가 중간에 이탈하기 전에, 단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축약은 없다. 세상만사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견, 사건의 인과, 체계의 구조, 모두 얼마든지 복잡해질 수 있다. 정말로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요약으로는 담기지 않는, 복잡성 사이에 끼어 있을 수 있다. 심하면 과도한 요약이 세상을 왜곡할 수 있다. 독자는 복잡한 배경을 무시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데 급급해진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기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목과 요약본만 읽으면 '누가 잘못했는지' 찾는 데만 급급해진다. 범죄자 개인에게만 집중하거나, 막연한 집단을 문제의 근원으로 삼게 한다. 둘 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누군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는 자연스럽게 범죄자 신원에 집중된다. "(지역) (연령대) (성별) 범죄자 ○모 씨." 그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제목만 보고 본문을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범죄 사건의 배후에는 가담 단체, 법의 허점, 뿌리 깊은 사회 인식의 문제가 얽혀 있을 수 있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결해야 할 핵심은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개인에게만 분노를 쏟고, 구조는 그대로 둔다. 다수가 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해결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반대 방식의 단순화도 있다. 개인이 아니라 막연한 집단을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구직도 안 하고 '그냥 쉼' 청년 증가…" 헤드라인만 본 일부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 애들이 문제야"라고 속단한다. 하지만 기사 본문에는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 비율, 주거비 상승, 정신건강 악화와 관련된 통계가 실려 있다. 개인의 나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요약된 제목만 보면 "청년"이라는 집단을 문제로 규정하기 쉽다.
성별, 세대, 계층, 지역, 국가. 실제로는 그 집단을 둘러싼 복잡한 사회 구조와 제도, 역사적 맥락이 문제일 텐데, 집단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는 순간 그 안에 속한 모든 개인이 문제자로 보인다. 실제로는 아무 문제도 없을 대다수의 사람까지 포함된 가상의 집단을 혐오하게 된다.
내용에는 어울리는 그릇이 필요하다. 세상은 복잡하고, 복잡한 내용은 긴 설명을 요구한다. 그 길이를 견디지 못하고 억지로 짧게 만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는다. 조건을, 맥락을, 뉘앙스를. 그리고 그 손실은 흑백논리를 낳고, 오해를 낳고, 혐오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점은, 짧은 글 훑어보기 습관이 번져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막론하고 긴 글을 읽는 인내심이 말라버리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독서율 추이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율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특히 충격적인 건 2021년과 2023년도 통계이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 독서율이 오를 법했으나, 실제 통계는 그칠 줄 모르고 하락했다.
물론, 독서율 하락의 원인은 읽기 습관의 변화뿐만이 아닐 수 있다. 적어도 명확한 점은 종이를 통해 글을 읽는 경험이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디지털을 통해서만 글을 읽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칼럼의 제목은 "왜 여러분은 긴 글을 읽지 않을까?"였다. ‘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제목으로 전달되지 않는 핵심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여러분만의 잘못은 아니다. 알아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 모든 경위 파악할 정도로 기사를 전부 꼼꼼하게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은 자각하고 있자. 요약만 원하다가 사고가 단순해질 위험을, 대충 쓰인 글의 홍수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휩쓸릴 때는 휩쓸리다가, 언제든 뭍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만났을 때, 속도를 늦출 수 있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기를. 복잡성을 견딜 수 있는 원래의 독자로 돌아올 수 있기를.
김신지 기자 sjneuroneurony@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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