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어 프리(barrier-free)”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1974년 유엔 장애자 생활 환경 전문가 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건축학 분야에서 물리적인 장벽을 없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물리적 장벽뿐만 아니라 제도적, 법률적, 문화정보 전달 장벽, 나아가 고령자와 장애인 차별과 편견, 심리적 벽까지 허물자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DGIST는 모든 사람이 생활하기 편하고 안전한 환경일까?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상황에서 DGIST 캠퍼스를 떠올려보자. 기숙사를 나선 순간 가파른 언덕을 마주하게 되고, E7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좁은 인도와 중간중간 사라지는 인도로 인해 차도로 내몰리기도 하고, 보도블록 사이 작은 턱들과 횡단보도의 턱들에 걸려 넘어지거나 앞으로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사히 E7에 도착하더라도 자동문은 제외한 나머지 무거운 출입문을 스스로 당겨 건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강의실 입구에는 책상과 의자가 촘촘하게 붙어있어 이동하거나 휠체어에 앉은 채 책상을 이용하기 어렵고, 계단식으로 구성된 대다수의 강의실은 들어가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DGIST를 포함하여 많은 건물에서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건물 입구 경사로 설치, 출입구와 연결된 도로 및 건물 내 점자블록 설치 등 편의 시설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설치 예외 대상인 건물이 많고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이 제한적이라 아직은 장애인, 노약자가 살아가기에 매우 불편한 환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능하긴 한 걸까? FGLP(Freshmen Global Leadership Program)를 통해 미국에서 6주간 생활하며 몸소 느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다뤄보려 한다.
FGLP는 학부 1-2학년을 대상으로 해외 유수 대학의 여름학기를 수강할 수 있는 DGIST의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UCLA에서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주변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동에 약간의 제약이 있는 필자는 미국에서 때로는 UCLA 셔틀버스, 휠체어, 전동스쿠터 등을 이용하며 몸소 느낀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베리어 프리(barrier-free) 환경이었다.
미국에서의 첫 발걸음부터 다름을 느끼다
미국에 첫발은 내린 순간부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공항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많이 보이던 휠체어 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셔틀버스였다. LAX에 들어온 호텔 셔틀버스, 단체버스 할 것 없이 대부분 휠체어 리프트와 휠체어용 자리가 마련된 버스였다. 한국에서도 교통약자 이동권을 위해 저상버스의 도입을 늘리고 있다. 저상버스란 계단이 없고 차체가 낮은 버스로, 경사판(슬로프)이 설치되어 있어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버스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저상버스 도입 현황은 22년 기준 전국 34%, 대구 지역은 41.1%이다. 하지만, 잦은 슬로프 고장, 출퇴근 시간 등 붐비는 시간대에는 탑승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DGIST에서 대구 시내로 나가기 위해 이용해야만 하는 급행 8, 급행 8-1중 저상버스는 2024년 2월 기준 0대이다. 고속버스의 경우에도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버스는 2024년 2월 기준 전국에 0대이다. 경사판이나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관광버스도 흔히 보기 어렵다.
호텔 방을 예약할 때도 한국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다양한 special assistant room, 즉 장애 편이 방 선택지가 존재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적 초인종이 설치된 방,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객실 자동문, 넓은 화장실과 낮은 위치에 문손잡이와 콘센트가 설치된 방 등 다양한 장애 유형에 맞춰 디자인된 방이 있었다. 실제 체크인 할 때도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낮은 카운터가 존재하여 휠체어에 탄 채로 직접 체크인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UCLA에는 큰 규모의 장애 학생 전담팀이 존재한다
UCLA에는 영구적, 일시적인 신체 및 정신적 장애 또는 학습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 운용을 전담하는 CAE(center for accessibility education)라는 부서가 있었다. 부서 구성원 또한 24년 1월 기준 31명으로 많았으며, 첫 신청 시에 담당자가 배정되어, 담당자와 지속적해서 상호작용하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다양한 장애 유형에 맞춰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었으며, 개개인의 상태에 맞춰 필요한 서비스나 도움을 선택, 요청하여 받을 수 있었다.
학습, 교내 생활과 관련해서는 ▲교내와 주변 주요 지역 간 이동을 위한 셔틀버스인 bruin access ▲출입문 자동화 시스템 ▲학습 보조기구 ▲과제와 시험 시간 연장 ▲강의 자막 시스템 ▲속기 또는 수어 통역 ▲시험 방법 등의 변경 등이 있었다. 생활환경 측면에서는 ▲기숙사 구조 ▲시각적 초인종 ▲욕실 내 손잡이 등의 다양한 별도 장치가 설치된 기숙사와 주기적인 면담을 통해 교내에서 원활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 존재했다.
필자의 경우 먼 거리를 걷는 것이 힘들었기에 UCLA에서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bruin access라는 셔틀버스 시스템을 이용하여 등, 하교하였다. 상담 및 자체 심사를 통해 이용 권한을 받은 구성원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교내 여러 정류장 사이 이동을 위한 셔틀을 신청하여 이용할 수 있다. 캠퍼스가 넓고 급경사도 포함되어 있기에 셔틀을 이용하면서 다리 부상, 시각장애, 휠체어 이용자 등 다양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학생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도로 위를 활보하는 다양한 사람들
학교뿐 아니라 여러 관광지, 미술관, 박물관 심지어 마트 등 사회 전반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여러 시스템이 존재했다. 거의 모든 장소에 휠체어, 유아차 등의 접근이 가능했다. 턱이나 계단이 없거나, 경사로, 엘리베이터, 혹은 휠체어용 엘리베이터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거의 모든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당장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휠체어, 유아차, 보행 보조기 등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도 수동문에 휠체어용 열림 버튼이 설치되어 있어서 필요시 자동문처럼 사용할 수 있어 무거운 문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단지 여러 선택지 중 하나
미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편의 시설과 시스템 중 일부는 한국에서도 이미 잘 시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게 된 것은 대부분 편의 제도들이 한국처럼 미리 문의, 요청, 예약, 신청 등을 하고 특정 시간대에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일상에 이미 설치, 시행되고 있고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즉 특별히 요청해야만 하는, 특수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느낌이 아닌 당연히 존재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이었다. 사회 문화적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신기하듯, 힐끗힐끗, 때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더라도 신기하듯 쳐다보거나 힐끔힐끔 보는 시선 없이, 그냥 옆을 지나가는 또 다른 한 명의 사람인 듯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동문이나 턱 같은 장애물이 있을 때는 살짝 도움을 주며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마저 가는 자연스러운 시선이었다. 한국이라면 느껴졌을 나를 향한 시선과 수군거림 없이 ‘행인1’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편안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다양한 장애 혹은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과연 한국의 길거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얼마나 될까? 감히 예상해 보자면, 장애가 있는 사람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과, 길거리에 나와 당당하게 돌아다니더라도 수군거림, 욕설은 물론 따가운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에서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도 완벽한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자 또한 일부 불가능한 것이 있더라도, 한국에서 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하고 도전을 할 수 있었으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적어도 집 밖을 나서는 것부터 도전의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이동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베리어 프리, 일상 속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만큼 비장애인에게도 편안한 환경이 된다. 건물 입구의 한 칸의 계단을 없애는 것, 비장애인에게는 약간의 편리함 일 테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접근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뀐다. 부상 또는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이 생긴 사람이 매 순간 한계를 느끼고 여러 도움이 필요한 환경 대신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베리어 프리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선민 기자 sunmin.kim@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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