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후반 서울 메트로폴리탄. 은퇴한 도우미 로봇 ‘헬퍼봇’들의 아파트에 사는 올리버는 자신을 데리러 오기로 약속한 옛 주인 제임스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의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러 오면서 그의 일상에 균열이 인다. 클레어가 성가시면서도 신경 쓰였던 올리버는 매일 같은 시각 문을 두드리면 충전기를 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클레어가 올리버의 새로운 일상이 된다.
생각보다 꽤 괜찮아, 함께 있다는 게
올리버는 클레어가 1분이라도 늦는 걸 못마땅해할 정도로 꼼꼼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로봇이다. 매일 아침 화분에게 “안녕, 화분! 오늘도 좋은 아침.”이라 인사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화분을 햇볕 아래로 옮기고, 재즈 잡지를 받아보고, 책을 읽는 일상은 수십 년째 변함이 없었다. 그의 완벽했던 일상은 자유분방하고 장난기 많은 클레어에 의해 깨어진다. 어느새 올리버는 클레어가 오는 오후 1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은 나만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내어 그 안에 상대를 집어넣는 일이다. 완벽함은 깨지고, 평화로웠던 삶은 변화에 휩쓸린다. 그리고 이 과정은 대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작되어 본인의 의지로 완성된다. 클레어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 순간부터 올리버는 이미 클레어를 사랑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좀 우습지
혼자인 게 익숙한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인 게
생각보다 꽤 괜찮아
생각만큼 나쁘진 않아
함께, 함께 있다는 게
- 「생각보다, 생각만큼」
어느 날 클레어는 올리버의 집을 둘러보던 중 그가 제임스가 있는 제주도로 가기 위해 병을 팔아 돈을 모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자기 친구에게 차를 빌릴 테니 당장 함께 제주도로 가자고 제안한다. 제주도에만 남아있다는 반딧불이를 보는 것이 클레어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하지만, 결국 클레어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둘은 제주도로 향하는 차에 오른다.
이게 사랑인 건가 봐
제주도에 도착한 그들은 마침내 제임스의 집을 찾아내지만, 올리버는 제임스가 이미 1년 전에 죽었으며 남은 가족들은 올리버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낙담한 채 차로 돌아온다. 그러나 클레어는 제임스가 죽기 전 올리버에게 남겼다는 레코드판을 보고 제임스는 끝까지 너를 사랑했던 거라며 놀라워한다. 클레어의 위로로 제임스와의 이별을 받아들인 올리버는 함께 반딧불이 사는 숲에 도착한다. 늦은 밤 하나둘 피어오르는 반딧불을 보며 감탄하던 둘은 유리병에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간직한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온 둘은 아름다웠던 풍경을 추억으로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불쑥불쑥 상대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미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둘은 동시에 뛰쳐나오다가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쳐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연인이 된 둘은 사랑을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각을 느끼며 기뻐한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
그러나 그들은 행복한 시간이 오래 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미 은퇴한 로봇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올리버보다 내구성이 약한 모델인 클레어는 하루하루 고장을 겪고, 올리버는 매번 클레어를 고쳐주지만 그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함을 안다. 어느 날 클레어의 고장 난 발목을 고치려는 올리버에게 클레어가 말한다. “올리버, 이것만 고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야. 알잖아.”
대부분의 로맨스 작품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지지부진한 고난의 과정을 겪어왔으니 결말 정도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속 편한 서술로 끝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삶은 계속된다. 사랑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로봇이나 사람이나, 자연적인 수명에 의해서든 그보다 더 이르게든 모든 사랑은 엔딩을 맞이해야 한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그때까지만
혹시라도 너 원할 땐 모두 멈출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가져 가는 서로를 보며 아파하기에 지친 클레어는 결국 올리버에게 이별을 고하고, 더 이상 괴롭지 않도록 둘이 함께한 추억이 담긴 메모리를 지우기로 한다. 마지막이 될 만남에서 둘은 애정을 담아 서로가 알려주었던 것들은 남겨도 되지만,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건 지워야만 해”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둘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기억을 돌이킨다. 그 배경으로 깔리는 것이 <우린 왜 사랑했을까 Rep>라는 제목의 넘버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그냥 스쳐 가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을까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이 작품의 구조는 수미상관이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프롤로그 격으로 불리는 <우린 왜 사랑했을까>는 그들이 기억을 지울 때 리프라이즈로 다시 언급된다. 그러나 둘은 사랑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사랑했던 기억은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린 왜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을 후회가 아닌 기억의 맥락에서 돌이켜본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리는 왜 이런 결말을 알면서도 서로 사랑하기를 택했을까.
어쩌면 해피엔딩
다시 평범한 어느 날, 이전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올리버에게 옆집의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러 온다. 올리버는 클레어를 집으로 들여보내며 화분에게 “쉿! 말하면 안 돼.”라고 속삭인다. 올리버는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전보다 더 삐걱거리는 클레어를 보며 남몰래 슬픔을 삭혀야 함을 알면서도 올리버는 기억을 간직하기로 한 것이다. 충전기를 빌리며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클레어에게 올리버는 답한다. “어쩌면요.”
대본에 ‘어색하게 연기하는 투로’ 말하라는 지문이 있어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것이 명확한 올리버와 달리, 클레어는 지문에 정해진 지시가 없어 기억을 지웠는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본 작품의 제작자 박천휴와 윌 애런슨은 “클레어는 올리버보다 발전된 모델이라서, 만약 연기를 하더라도 올리버보다 덜 부자연스러울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클레어의 열린 결말은 관객을 위한 상상의 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클레어라면 어떻게 했을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극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든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준다. 둘 중 누구도 사랑했던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사랑이 주는 아린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끝이 뻔한 길을 함께 걷기로 한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초연 이래 다섯 번의 시즌을 거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최근에는 영어판으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에 진출, 올해 10월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DGIST 연극동아리 ‘점아비’에서 공연했던 작품이기에 관람 경험이 있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공연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혹은 이 기사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 나는 과연 사랑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누군가를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지.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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