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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이 지킨 국보, 대한콜렉숀 전시회를 가다

문화

2019. 2. 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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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반도에서는,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본의 내정간섭과 군사적 압박으로 인해 많은 정치경제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특히 일본은 식민 사관을 퍼뜨려 민족의 정체성까지 흔들었다. 이에 학자들은 바른 역사관의 정립을 위한 민족 사학을 설립했다. 특히 1906년, 보성학교는 ‘널리 사람됨을 이루다’는 뜻의 ‘보성’이라는 교명을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설립되었다. 이후 보성은 학교를 세워 나라를 떠받친다는 뜻의 ‘흥학교이부국가’라는 건학정신을 지켜나갔다. 1910년 나라를 빼앗겼지만, 이후 광복까지 보성은 주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19년 3.1운동은 일제를 향한 통합적, 자주적, 평화적 항거였다. 또한,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대한민국의 근간이 된 중요한 정신을 내포한다. 전 세계에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비폭력 저항 운동인 3.1운동을 주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사학 ‘보성학원’ 출신이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다수가 보성학원 출신이며 보성학원 내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독립선언서를 전량 인쇄해 배포했다. 3.1운동의 중심정신을 담았던 독립 선언서는 ▲ 평화적이고 온건하여 감정에 흐르지 말 것 ▲ 동양의 평화를 위해 조선의 독립이 절대 필요함을 절대 강조할 것 ▲ 민족 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이 전통 정신에 입각한 정의와 인도의 운동임을 강조할 것이라는 3가지 원칙으로 작성되었다.


1919년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도쿄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유학생 중 상당수가 보성 졸업생이었다. 더불어 2.8 독립 선언문을 한반도로 가지고 와 당시 보성학교를 운영하던 천도교에 전달한 사람도 보성 졸업생인 송계백이었다. 이듬해 졸업생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을 정도로 학생들의 3.1운동 참가도 활발했다.



<사진 = 류태승 기자>

전시관에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이끌었던 교사들,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 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보성이 배출한 민족 문학가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사진 = 류태승 기자>


3.1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수많은 사람들을 배출한 보성학교는 조선총독부의 직간접적인 괴롭힘으로 재정난에 처해 폐교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때 간송 전형필은 자신의 땅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보성학교를 일으켜 세웠다. 간송은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 말기동안 문화로 나라를 지킴을 실천함에 더해 교육으로 나라를 구함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전시관에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이끌었던 교사들,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 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보성이 배출한 민족 문학가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한 정신을 행동으로 펼쳐냈다. 이들의 행동은 단지 그 당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보성이 배출한 문필가들이 발표한 작품은 지금의 우리가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당시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간송 전형필은 혼란하고 격변하는 일제강점기에도 문화 보국과 구국 교육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항일에 동참했다.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갈 뻔했던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단숨에 사 온 이야기, 세계적인 골동품상 야마나카 상회에 맞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낙찰받은 이야기, 영국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로에게 많은 돈을 주고 수집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도자기 컬렉션을 인수한 이야기 등은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사진 = 류태승 기자>

검은색과 흰색으로 상감된 이중 원 안에는 하늘로 향한 학이, 원 밖에는 지상으로 향한 학이 배치되었다. <사진 = 류태승 기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이 매병은 짧고 좁은 목과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굽까지 내려오는 유려한 곡선을 지니고 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상감된 이중 원 안에는 하늘로 향한 학이, 원 밖에는 지상으로 향한 학이 배치되었다. 학은 크기와 형태가 유사하고 여백에는 구름이 배치되었다. 구름과 학은 장수를 상징한다. 매병 입구 아래에는 연꽃이 흰색으로 상감되었고 매병의 아랫부분에는 펼쳐 놓은 연꽃무늬인 연판무늬가 검은색과 흰색으로 상감되어있다. 수려한 형태와 정제된 유색, 정교한 상감기법까지 완벽에 가까울 만큼 탁월해 고려청자의 백미로 꼽힌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사진 = 류태승 기자>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이 병은 1936년 간송 선생이 일본인 수장가를 제치고 지켜낸 것으로 미술계 최고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당당한 기형과 설백의 색상, 격조 있는 문양장식으로 조선 최고의 백자라고 명성이 자자하다. 시원하게 내려간 긴 목과 보름달 같은 몸체는 직선미와 곡선미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문병은 몸체의 넓은 여백을 배경으로 난초와 국화, 나비를 장식되었다. 마치 겸재 정선의 초충도처럼 생동감이 넘치고 절제된 화려함이 느껴진다. 매병에 그려진 문양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봐도 훌륭하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제작 방식이다. 매병에 그려진 그림의 청색을 내는 산화코발트, 갈색을 내는 산화철, 홍색을 내는 산화구리, 이 세 안료는 각각 성질이 달라 온도와 가마에 따라 발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도 절묘하게 적절한 색깔이 어우러져 이러한 색이 모두 표현된 신기한 작품이다. 거기에 정교한 양각과 잎 하나하나를 별도로 만들어 붙이는 기법을 적절히 사용해 입체감까지 살렸다. 이렇게 조선백자에서 사용되는 모든 안료와 다양한 조각 기법이 완벽히 구현된 백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청자모자원형연적 <사진 = 류태승 기자><사진 = 류태승 기자>


청자모자원형연적

어미 원숭이는 쪼그리고 앉아 새끼는 두 팔로 어미를 밀고 있다. 보는 사람이 모자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원숭이의 몸체는 간략하게 표현하였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칼로 조각해 도드라지게 하였으며 어미 원숭이의 얼굴은 비교적 섬세하게 이목구비를 모두 조각했다. 어미 원숭이의 머리에는 지름 1cm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 원숭이의 머리에는 지름 0.3cm의 물을 넣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 이 용도가 연적임을 알 수 있다. 문인 귀족들의 책상에 놓여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숭이를 뜻한 한자인 후와 제후의 후가 발음이 같아 높은 벼슬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추정된다.

 

청자오리형연적 <사진 = 류태승 기자>


청자오리형연적

이 연적은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드는 상형 청자 기술이 절정이었던 고려 시대(12세기)에 제작된 오리 모양의 연적이다. 꼬인 연꽃 줄기를 오리가 입에 물고 있다. 오리는 통통한 몸매이며 두 발은 몸통 밑으로 감추어져 있고 깃털같이 세부적인 모습이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오리의 등에는 연잎과 연봉우리가 얹혀있는데, 연잎 부분에 물을 넣는 구멍을 만들고 연봉우리로 뚜껑을 만들었다. 연꽃은 고귀함과 군자를 상징하고 오리는 가정의 평안함과 부부 화합을 상징한다. 이 연적을 썼던 사람은 집안이 두루 평안한 가운데 고귀한 군자의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한편, 이번 대한콜렉숀 전시는 3월 3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층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다.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에 정기해설이 열리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오후 7시에 추가로 정기해설이 열린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이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오후 8시 반까지 입장 가능하다.

 

이번 전시인 ‘대한콜랙숀’은 간송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일제에 대항해 모으고 지킨 우리의 국보와 보물 그리고 유물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을 위해 보성학교를 인수한 것 또한 포함한다. 단지 모으고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유산과 그 속에 깃든 정신이 대한민국의 미래로 전해지기를 바랐던 간송의 마음을 전시회를 통해 느껴 보길 바란다.

 

류태승 기자 nafrog@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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