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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커피의 문화와 역사, 커피사회

문화

2019. 1. 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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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이 아닌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에 도입되어 100여 년간 대한민국에 녹아 든 커피는 어떻게 변화해왔고 어떤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을까? 문화역 서울(옛 서울역)에서 열리고 있는커피 사회전시는 커피의 시작과 변천사를 담고 있다. 커피와 함께했던 장소와 문화적 의미를 포착하여 전달해주는 이 전시를 들여다보자.

 

 

커피사회 전시회 로고 <사진 = 류태승 기자>



[커피의 시대, 커피의 문화사를 들여다보다]

다방, 지금 20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7,80년대 청년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그곳. ‘커피의 시대전시는 제비다방, 낙랑팔러, 돌체다방 등 근대의 다방들에서 시작해 70년대 다방까지 훑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커피의 시대사를 둘러볼 수 있는 입구 앞 구조물 <사진 = 류태승 기자>


 

문화역 서울에 들어서면 5단 원형 케이크와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각 단마다 놓인 커피와 관련된 물품들은 커피의 시대사를 돌아보게 이끌어준다.

 

 

전시물 '신청곡' <사진 = 류태승 기자>


 

케이크 뒤에는 순백의 벽으로 둘러싸인신청곡이라는 전시물이 있다. 이 전시물 안에는 카메라가 있어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다. 7,80년대 다방에서는 DJ에게 신청곡 포스트잇을 건넸다고 한다. 실제로 DJ들이 받은 신청곡 포스트잇이 전시되어 있고 당대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작가는 이 공간을 모던한 하이트 풍 7,80년대 음악다방을 모티브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공간을 방문한 50대 관람객은 DJ에게 신청곡을 줬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봄이 오지 않았던 그때의 재미 다방과 예술]

제비다방은 단편소설날개를 쓴 소설가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이다. 이 다방은 이상과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하루)’를 쓴 박태원 작가가 문예활동을 이어 나갔던 공간이기도 하다. 제비다방은 소설가, 작가, 신문기자, 영화감독들이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다.


전시관에 걸려있었던 이상의 얼굴 <사진 = 류태승 기자>



전시관에는 이상과 박태원의 얼굴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이상과 박태원은 서로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또한 이 둘이 제비다방을 일구면서 박태원은 소설을 쓰고 이상은 삽화를 그렸다. 이상은 커피도 즐기고 서로를 보고 배우는 과정이 좋아서 다방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방 장사는 잘 안되었다. 주 고객층이 가난한 예술가나 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상은 또 다방을 계속 차렸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류와 작품 활동을 위한 공간을 끊임없이 창출했다.

 

신문에 실렸었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사진 = 류태승 기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하루)에서도 문예인들이 다방에 모이곤 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소설에는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레코드를 들었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봄은 아직 오지 않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다방은 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직접 커피의 향과 촉감을 느껴보자, 커피방]


전시실 바닥에 가득 쌓여있었던 커피 원두 <사진 = 류태승 기자>


이 공간을 꾸민 작가는 백현진 작가다. 백 작가는 미술 전공자로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처럼 밴드를 만들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전시실은 예전 서울역의 귀빈실이었다. 고풍 있는 벽지와 은은한 조명이 있던 이 공간에 작가는 1톤의 커피와 소파를 들여놓았다. 이 전시실에 들어가면 1톤의 커피에서 나오는 향긋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걸음을 내디딜수록 커피 속에 파묻히는 느낌이 든다. ‘둥둥둥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 소리는 작가가 커피방을 위해 녹음한 소리로 소리도 작품의 일부다.

사실 이 전시실에서 들리는 음악은 처음에는 난해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음악이나 예술의 장르마다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관람객이 그대로 전시물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전시물을 기획했다고 한다. 아마 이곳이야 말로 커피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커피의 향과 소리 그리고 질감은 이 전시실에 놓인 소파에 앉으면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고종,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인]


고종의 7번째 아들인 영친왕과 그 부인 사진 <사진 = 류태승 기자>


근대에 준공된 서울역에는 전시관 입구로 사용되는 정문뿐만 아니라 아치형 뒷문이 하나 더 있다. 이 아치형 뒷문은 1925년에 완공된 서울역에 들어올 때 황실 가족이 이용하던 문이다. 이 문 바로 옆이 커피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귀빈실이고, 문 바로 앞에 있는 사진은 고종의 7번째 아들인 영친왕과 그 부인 사진이다.


고종의 사진과 고종이 좋아했던 컬러 사진기 <사진 = 류태승 기자>


커피는 처음부터 커피라고 불리지 않았다. 가베 또는 가비라고 불렸다. 서양에서 온 까만 액체였기에 양탕국이라고도 불렸다. 실제로 덕수궁 매점에 가면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써 놓고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에서는 고종황제가 맨 처음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명성황후 시해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도피했을 때 커피를 처음 마셨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커피와 더불어 고종이 좋아했던 신문물은 사진기였다. 특히나 흑백이 아닌 컬러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좋아했다. 전시관 안쪽에는 고종황제가 사진을 찍던 모습과 사진들을 그대로 재연해 두었다. 또한 1920년대 사용되었던 카메라도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커피의 역사]

고종황제가 처음 커피를 마신 날로부터 약 20년 후 문인들이 모여 문일 다방을 만들었다. 6.25 전쟁 때 미국 보호 물자로 인스턴트커피가 도입되면서 다방이 생겨났다. ‘커피의 역사전시관에서는 45개 영화에서 다방 장면만 모아 놓은 모니터가 있다. 화면에는 야자나무와 어항도 줄곧 보인다. 이는 다방이 보통 지하에 있어 살아있고 밝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초기 다방에서는 믹스커피에 달걀노른자와 참기름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선로 모양 거치대에 놓여있는 엽서, 커피의 세계사를 담고 있다. <사진 = 류태승 기자>



전시관 2층 안쪽에는 선로를 따라 늘어진 전 세계의 커피 역사를 사진과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이 공간은 근대 서울역에 있는 레스토랑 그릴의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1925년에 완공된 옛 서울역 2층에 있었던 그릴은 경성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정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방문이 잦았고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등장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전시관에는 실제로 재료를 수송하기 위해 사용했던 승강기도 보존되어 있다.

커피는 아랍의 한 양치기가 양들이 커피 열매를 먹고 밤에 밤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최초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밤새 고민하고 공부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 이 커피 열매를 주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커피가 아랍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상인들이 유럽인들에게 커피를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인식시켰다. 커피를 그냥 먹으면 써서 먹기 쉽지 않았고, 아편 같은 마약처럼 한번 먹고 취하거나 중독되는 음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커피가 정신을 멀쩡하게 해주고, 지식인들만 가질 수 있는 작물로 인식이 되면서 유럽으로 퍼질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도 근대 우리나라의 다방처럼 커피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차를 마시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뉴턴이나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들이 지식들을 채우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왕이나 지배층이 눈엣가시로 여겨 커피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주재환 작가의 작품 <사진 = 류태승 기자>



전시관을 거닐다 보면 환한 조명이 비추어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주재환 작가의 작품으로 인스턴트커피 믹스 봉지나 커피와 관련된 물품들을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주재환 작가는 천 원의 예술이라고도 부르는 작품을 주로 만드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주재환 작가는 신과 함께를 그린 주호민 웹툰 작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전시회 정문으로 들어오면 받을 수 있는 테이크 아웃 잔, 입장권과 같은 개념으로 활용되며 전시관 곳곳에서 커피를 받을 수 있다. <사진 = 류태승 기자>



전시회의 입장권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다. 전시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커피를 직접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들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핫한 카페를 선정해 실제로 그 카페에서 파는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여러 부스를 전시관 내에 만들어놓았다. 여기에 참여한 카페는 대충 유원지 메뉴 택트 보난자 커피 브라운 핸즈 콜마인, 펠트 프릳츠커피 헬 카페이다. 또한 다방 커피의 맛을 재해석하여 새로 만든 커피도 서빙하고 있다. 노른자와 참기름을 넣은 커스터드 커피를 서빙하는 업체도 있다.

 

전시는 2 17일까지 진행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고 매주 월요일에 휴관하며 130일 수요일에만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추운 겨울, 서울역에 들러 따뜻한 커피와 함께 커피가 스며든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건 어떨까?

 

류태승 기자 nafrog@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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