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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결핍, 자존의 관계 – 뮤지컬 <헤드윅>

문화

2022. 7. 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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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바로 베를린 장벽, 어디 한번 해 볼까!”
“여러분, 헤드윅이 바로 그 장벽입니다. 헤드윅은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습니다.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 당신들이 원한다면 저 장벽도 부숴버려!”

- 뮤지컬 <헤드윅> 중

 

뮤지컬 <헤드윅> 포스터. 삽화는 헤드윅의 금색 가발을 나타내는 동시에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의 옆모습으로도 보인다. <사진 = 쇼노트 제공>

 

  헤드윅은 첫 곡 「Tear Me Down」의 강렬한 록 선율과 함께 등장한다. 나비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옷은 화려한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다. 이 옷은 헤드윅의 고향인 동독을 가로질렀던 베를린 장벽을 상징한다. 이츠학의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이 좋아하든지 말든지 소개합니다. 헤드윅!”이라는 대사와 함께 헤드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헤드윅은 본래 한셀이라는 이름의 동독 출신 소년이었다. 그는 어릴 적 군인 아버지와 그 동료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를 알게 된 어머니와 둘이서 살게 되었다. 자유를 억압당한 동독에서의 어린 시절 그를 위로했던 것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국 음악이었다. 집이 좁아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잠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 시끄럽다며 어머니에게 토마토를 맞는 삶을 살면서도 한셀은 그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진 미국을 동경하면서 자란다.

  그런 한셀의 삶이 전환점을 겪게 되는 건루터라는 미군을 만나면서부터다. 루터는 아름다운 한셀에 반해 그를 사탕으로 유혹하며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한셀은 루터가 주는 사탕의 단맛, 그리고 자유와 권력의 단맛에 취해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Sugar Daddy). 한셀은 루터와 결혼하여 동독을 탈출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름헤드윅과 여권을 받고 불법 성전환 수술을 감행한다. 그러나 수술은 실패하고, 헤드윅의 이름으로 살게 된 한셀의 성기는 완전히 제거되는 대신 정체불명의 1인치짜리 살덩이를 남긴다(The Angry Inch).

  간신히 미국으로 떠나는 데 성공했으나 헤드윅은 오래 지나지 않아 루터에게 버림받는다. 홀로 남은 헤드윅은 캔자스 정션 시티에서 보모 일과 매춘, 록밴드로 삶을 연명한다. 그의 화려한 캐릭터와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록스타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그렇게 유명해진 헤드윅이 개막 하루 만에 망해버린 연극 세트장에 대타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공연이 바로 뮤지컬 <헤드윅>이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Wig in A Box

  헤드윅의 상징은 얼굴 양쪽으로 부풀린 거대한 금색 가발과 화려한 화장이다. 루터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수수한 갈색 가발 차림이었던 헤드윅이 어떻게 록스타 헤드윅이 되었는지, 그 사이의 이야기가 「Wig in A Box」다.

  루터에게 버림받고 트레일러 하우스로 돌아온 헤드윅의 앞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방영된다. 만약 헤드윅, 아니 한셀이 루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머니와 헤어질 필요도, 불법 성전환 수술을 받거나 불법 체류자가 될 필요도 없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헤드윅은 자신의 모든 희생이 헛수고가 된 것을 보며나 있을 때 좀 무너지지 그랬냐며 한탄한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헤드윅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쓴다. 그의 치장은심야 상점 계산대의 여왕’, ‘1963년도의 벌집 머리 아가씨’, ‘TV 쇼의 미스 파라 파셋을 거쳐 마침내 록스타 헤드윅의 거대한 금색 가발과 화장에 이른다. 헤드윅에게 가발은 정체성을 감추는 수단이다. 작중 헤드윅은 여러 차례 다양한 가발을 쓰고 나오지만, 마지막 무대 직전까지 결코 가발을 벗지 않는다. 가발을 벗는 순간 그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헤드윅으로서의 삶이 고통스럽기에,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치장한다. 그래서 「Wig in a Box」는 희망적인 동시에 절망적인 곡이다. 이 넘버를 통해 헤드윅은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지만, 그 대가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는 작품의 후반부인 「Exquisite Corpse」에 이르러 감정이 북받친 끝에 가발을 벗어 집어던진다. 반짝이는 드레스도, 풍성한 금색 가발도 벗어버린 그곳에는 속옷 차림에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른 헤드윅 본연의 모습이 있다.

 

사랑의 기원

  루터에게 배신당한 헤드윅은 보모로 일하던 집에서 토미라는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토미는 많은 사연을 품은 듯한 헤드윅의 노래에 이끌리고, 헤드윅은 그런 토미에게 자신이 가진 음악의 모든 것을 전수한다. 그러나 둘의 감정이 격정에 치달았던 밤, 헤드윅의 성전환 사실과 그의 1인치짜리 살덩이의 존재를 알게 된 토미는 겁에 질려 그를 떠나버린다. 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사랑을 배신당한 헤드윅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이것도 사랑해달라며 울부짖고, 그때부터 토미를 향한 헤드윅의 집착이 시작된다.

  헤드윅이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사랑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사랑의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작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넘버 「The Origin of Love」는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어린 한셀의 뇌리에 깊게 박혀 이후의 인생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태초에 사람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또는 남자와 여자의 몸 두 개가 하나로 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과 오만함이 신의 노여움을 사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벌을 받았고, 이후 본래 한 몸이었던 상대를 평생토록 찾아 헤매게 되었다. 이것이 사랑의 기원이다.

- 플라톤의 <향연> 중

 

  「The Origin of Love」는 퇴폐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이 다수 등장하는 <헤드윅>에서 드물게 부드러운 성격의 곡이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기 전 인간이 가졌던 세 개의 성, 해님의 아이, 땅님의 아이, 그리고 달님의 아이라는 표현이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곡은 <향연>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헤드윅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널 마지막으로 본 건 우리 몸이 둘로 갈라진 직후의 일이었지라는 가사에서 처음 만난 상대를 잃어버린 반쪽이라 확신하는 그의 믿음이 느껴진다.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서로를 끌어안고 갈라진 몸을 다시 하나로 붙이려 애썼지. 사랑을 만들며, 사랑을 만들며.”라 묘사한다. 원문 “Tried to shove ourselves back together. We were making love, making love”에서 ‘shove’거칠게 집어넣다, 쑤셔박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헤드윅의 갈망을 넘어선 처절함이 느껴진다.

  <헤드윅>의 사랑은 달콤하고 행복한 감정이 아닌, 외롭고 결핍된 인간이 잃어버린 반쪽을 갈구하는 괴로운 절박함에 가깝다. 그 때문에 헤드윅은 사랑을영혼의 상처, 심장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고통이라 표현한다. 헤드윅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짙은 화장과 가발로 본모습을 감추고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상대를 찾아 헤맨다.

 

음악에서 드러나는 헤드윅의 심리

  <헤드윅>의 넘버들은 분위기의 변동이 매우 심하다. Wicked Little Town」처럼 잔잔한 곡이 있는가 하면 「Sugar Daddy」처럼 발랄한 컨트리풍도 있고, Tear Me Down」이나 「The Angry Inch」처럼 강렬한 록 음악도 있다. The Origin of Love」와 「Wig in A Box」의 경우 잔잔한 분위기와 울부짖는 듯한 록을 넘나드는 독특한 장르의 곡이다. 이렇게 곡의 분위기가 크게 변동하는 것은 헤드윅의 심리와 관련이 깊다.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이라는 인물의 일인극 같은 형식을 취하기에, 그의 심리가 음악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헤드윅은 그가 부르는 곡만큼이나 변덕스럽고 까다로우며 불안정한 인물이다. 관객들에게자기들, 나 오늘 분위기 너무 마음에 든다.”며 능청을 떨다가도 이츠학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거나,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도 갑작스레 폭발하여 난동을 피우기도 한다. 이츠학을 포함한 앵그리 인치 밴드의 멤버들은 그런 헤드윅에게 질리다 못해 이미 체념한 태도를 보인다. 헤드윅이 이토록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가 겪어온 과거로부터 기인한다.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실패한 성전환 수술, 타지에 홀로 남겨진 삶,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한 두 차례의 배신. 버거운 경험을 연이어 겪으며 헤드윅은 점차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그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그 사나운 성격에 당황보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세상으로부터 입은 상처에 괴로워하며 방어 기제를 펼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사랑에 집착하는 헤드윅에게, Wicked Little Town Reprise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던 헤드윅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격해지는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감정이 한계에 이르러 폭발하기 직전의 순간, 그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 찾아온다. 오랫동안 헤드윅의 존재를 외면했던 토미가 마침내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렇게 「Wicked Little Town Reprise」가 시작된다.

  이 넘버는 토미가 헤드윅에게 건네는 사과의 노래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이었고, 당신은 어떤 신의 설계보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보다 더 큰 존재였다는 고백으로 시작해 이제야 내가 당신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깨달았다며 용서를 구한다. 세상에게 자신을 무너뜨려 보라(Tear Me Down)고 소리를 지르던 헤드윅에게 토미는 세상이 당신을 무너뜨릴 때 당신은 그 조각을 주워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준다고 답한다.

  이 넘버는 토미의 사과인 동시에 헤드윅의 사랑에 대한 그의 거절이기도 하다. 헤드윅의 사연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토미에게 헤드윅의 사랑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대신 그는 헤드윅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를 건넨다. 당신이 찾던 운명의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라고. 당신은 그 자체로 완전하기에, 결핍을 채워줄 사랑에 더는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있으면 좋은 게 아닌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상대를 제외하고도 자신만의 삶이 있다. 자신의 결핍을 온전히 내맡기기에 타인은 너무 약하고 변덕스럽다.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의 끝은 대부분 두 가지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완벽한 사이가 되거나, 처참하게 부서지거나.

 

<헤드윅> 중 「Wicked Little Town Reprise」 <사진 = 창작컴퍼니다 제공>

  헤드윅이 지금껏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모두 과거의 일이지만, Wicked Little Town Reprise」는 토미가 부르고 헤드윅이 듣는 현재의 이야기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을 받으며 헤드윅은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토미의 노래를 듣는다. 관객들은 청중에서 목격자가 되어 헤드윅의 결말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헤드윅>의 매력, 관객과의 소통

  앞서 언급했듯 <헤드윅>은 주인공 헤드윅의 일인극 같은 구성이다. 막이 오르는 순간 뮤지컬 <헤드윅>의 관객은 헤드윅의 관객이 된다. 4의 벽은 허물어지고 헤드윅은 관객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노래가 끝나면 뭐해? 박수 안 치고.”라며 재촉하고, 관객 한 명을 일으켜 세워 얘가 오늘 토미야. 인사해, 토미.”라 말하기도 하고, 이츠학의 노래에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면 그만! 얘한테 나보다 박수 많이 쳐주지 마.”라고 일갈한다. 마지막 넘버 「Midnight Radio」에서 이츠학이 손을 들어라고 노래하면 관객들이 다 함께 손을 든다. 본 기자가 관람했던 시기에는 코로나19 탓에 불가능했지만(“알아요, 지금 우리가 어떤 마법에 걸려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 이전에는 「Wig in A Box」 넘버에서 헤드윅이 신호를 주면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러한 소통을 통해 헤드윅은 단순한 극중 인물을 넘어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관객들과 교감한다.

 

헤드윅과 젠더

  <헤드윅>의 이츠학은 여장을 하고 공연하는 드랙 퀸(drag queen)으로, 인물 자체는 남성이지만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 드랙 퀸을 연기하는 드랙 킹(drag king)인 셈이다. 반면 헤드윅은 남성으로 태어나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인물이며 일반적으로 남성 배우가 연기한다. 유일한 예외는 2016년 미국 공연에서 헤드윅 역을 맡았던 레나 홀이다. 작중에서 헤드윅은 자신과 이츠학을 번갈아 가리키며 여자, 남자. 남자, 여자. 이게 무슨 개판이야.”라 언급한다.

  헤드윅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셀이던 시절 그는 남성이었으나 성전환 수술의 실패로 그의 성기는 1인치 살덩이만을 남긴 채 잘려 나갔다. 헤드윅은 잃어버린 성기에 집착하면서도 여성용 가발을 쓰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어머니의 여권을 위조하여 살아가지만, 합법적인 신분은 없는 불법 체류자다. 이츠학을 자기 남편이라 소개하지만, 남편의 짝이 꼭 여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의 성 정체성은 모호하다. 이는 관객들 사이에도 해석이 갈리는 부분이지만, 헤드윅은 극의 결말에서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헤드윅에게 성별의 구분은 중요치 않다. 헤드윅은 그저 헤드윅일 뿐이다.

 

  <헤드윅>은 여타 뮤지컬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외형, 성에 대한 수위 높은 표현 등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헤드윅>은 성에 구애받지 않는 본질적인 사랑과 결핍, 자존의 관계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헤드윅이 사랑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 자존감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우리는 사랑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지, 사랑을 좇다 스스로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영화 <헤드윅>(2001) 포스터 <사진 = 네이버 영화 제공>

  뮤지컬을 직접 관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2001년 개봉된 영화 <헤드윅>으로 대신해보자.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뮤지컬과는 연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른다. 특히 어린아이의 그림일기처럼 연출된 「The Origin of Love」의 장면이 매력적이니 관심이 있다면 감상해보자.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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