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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존재감이 산 사람을 압도할 때 – 뮤지컬 <레베카>

문화

2022. 9. 2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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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작품의 줄거리 및 반전 요소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 뮤지컬 <레베카> 「레베카」

 

뮤지컬  < 레베카 >  포스터  < 사진  = EMK  제공 >

 

고아 출신으로 가난하게 살아온는 경박한 부자 반 호퍼 부인의 동반자 역할을 하며 돈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는 부인의 휴가 차 찾은 몬테카를로에서 1년 전 보트 침몰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는 영국의 귀족 막심 드 윈터를 만나 청혼을 받는다. 갑작스럽게 귀부인이 된는 행복에 부풀어 드 윈터 가문의 저택 맨덜리로 들어오지만, 맨덜리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상상과 달리 어색하고 삭막하다. 하인들은 서투른의 몸가짐을 비웃고, 남편 막심은 저택을 자주 비우는 데다 죽은 전 부인 레베카 드 윈터의 이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더군다나 저택의 하우스키퍼 댄버스 부인이 드 윈터 부인의 자리를 차지한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는 저택에 남은 레베카의 흔적을 느끼고, 자신과 달리 높은 신분에 아름답고 재능이 많았다는 그녀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위축된다. 레베카에 대한 열등감과 댄버스 부인의 괴롭힘에 지쳐가던 어느 날, 저택 앞 해안에서 구멍이 난 채 가라앉은 레베카의 보트와 함께 막심이 1년 전 수습하여 무덤에 묻었던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레베카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사교계를 휩쓸고 마침내 레베카의 삶과 죽음에 관한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죽은 사람의 존재감이 산 사람을 압도할 때

주인공인는 소심한 성격에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가득하다. 이런 성격은 갓 성인이 된 어린 나이와 부모 없이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온 삶,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당해온 무시로 형성된 것이다. 반 호퍼 부인의 넘버 「절대 귀부인은 못 돼」, 하인들의 넘버 「새 주인 미세스 드 윈터」 및 「뒷담화」에서 업신여김을 당할 때도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레베카와 비교하며 움츠러든다.

이런와 달리 레베카는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재능과 안목, 사교술을 갖춘 완벽한 귀족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영향력은 죽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저택을 장악하여 맨덜리의 모든 것이 그녀가 만든 체계 아래 돌아간다. 또한 레베카는 자신감 넘치고 자기애가 강한 성격으로 저택에 자신의 흔적을 수없이 남겨놓았기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그녀의 존재감이 살아있는의 존재감을 압도한다. ‘레베카의 이름은 저택의 물건에 수놓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언급되는 반면 주인공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는 저택 안팎에서 레베카의 이름과 흔적을 보고 들으며 그녀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각하고, 자신을 레베카의 저택에 무단으로 들어온 침입자 같다고 여긴다.

 

내게 드 윈터 부인은 이 세상 하나뿐

가 위축되었던 원인이 레베카에 대한 열등감이라면, ‘를 보다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바로 댄버스 부인이다. 레베카를 어릴 적부터 모셔왔던 댄버스 부인은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영혼이 여전히 맨덜리를 거닐고 있다고 믿는다. 1년 전 사망한 레베카의 흔적이 여전히 저택에 가득한 것은 모두 댄버스 부인의 공이다. 레베카의 방을 생전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그 방을 발견한에게 레베카의 향수 냄새가 남은 침대, 잠옷, 가운 등을 보여주며 기뻐하는 모습에서는 광기 어린 집착이 느껴진다.

레베카를 향한 댄버스 부인의 감정은, 뮤지컬에서는 배우에 따라 모성애부터 연인으로서의 사랑까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레베카를 숭배했다(adored)”고 묘사된다. 그 때문에 댄버스 부인은 새로운 드 윈터 부인이 된’, 그리고 레베카가 죽은 지 1년 만에 재혼한 막심에게 강한 적의를 품는다. 맨덜리의 가장무도회 날, 댄버스 부인은 가 레베카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도록 유도하여 망신을 주고 막심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분노하며 왜 나를 그렇게 미워하느냐고 묻는에게 댄버스 부인은감히 너 따위가 드 윈터 부인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니까!”라 답하며 넘버 「레베카」를 부른다. 이 넘버에서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심장은 결코 멈추지 않으며, 이 저택의 주인은 영원히 레베카뿐임을 노래한다.

 

칼날 같은 그 미소

무도회 다음 날, 레베카의 보트와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막심에게당신이 여전히 레베카를 사랑한다고 해도 괜찮으니, 나를 당신 곁에만 있게 해달라며 호소한다. 막심은 그 말에 경악하며 에게 진실을 밝힌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반전, 막심은 레베카를 증오했다는 사실이다.

막심의 넘버 「칼날 같은 그 미소」에서 레베카의 실체가 드러난다. 레베카는 아름다운 미소로 막심을 속여 결혼한 다음 그에게 완벽한 아내 노릇을 해줄 테니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거래를 제안했다. 막심은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 그것을 받아들였고, 레베카는 겉으로는 완벽한 안주인 역할을 하면서 남몰래 수많은 애인을 맨덜리로 끌어들여 문란한 생활을 즐겨왔던 것이다. 그러나 레베카의 행각이 갈수록 대담해지면서 막심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추문이 생겨났다. 분노하여 찾아온 막심에게 레베카는 자신이 아이를 가졌음을 밝히며 세상 사람들이 내 아이를 당신 아이라고 믿을 테니, 내가 완벽한 어머니가 되는 동안 당신은 멍청한 아버지를 연기하라고 비웃었다. 격노한 막심은 레베카를 밀쳤고, 레베카는 막심을 비웃는 미소를 띤 채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당황한 막심은 레베카의 시신을 보트에 태우고 바닥에 구멍을 내 수장시켰다. 막심이 레베카의 이름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악몽 같았던 삶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막심은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미소. 죽는 순간까지 짓고 있었던, 나를 조롱하는 칼날 같은 그 미소로 레베카를 기억한다.

는 극 후반부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막심이에게 청혼한 것은 레베카와 달리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에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막심은 와의 첫 만남에서 부르는 독백 「놀라운 평범함」에서자연스럽고 해맑은 모습,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사람으로를 묘사한다. 그의 진심을 알게 된는 마침내 용기를 되찾고, 레베카의 죽음은 사고였으니 진실을 숨기고 그녀가 자살한 것으로 하자며 막심을 설득한다.

 

자존감은 스스로에게 달린 것

댄버스 부인과  ‘ 나 ’ < 사진  = EMK  제공 >

 

막심의 고백으로 용기를 되찾은는 하인들에게 레베카의 물건을 모두 버릴 것을 지시하고 자기 취향대로 방을 꾸민다. 이에 분노한 댄버스 부인에게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를 부르며 더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을 것임을, 이제는 자신이 맨덜리의 주인임을 피력한다. ‘가 레베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아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반면 끝까지 자아를 찾지 못하는 인물이 있으니, ‘와 대립하는 댄버스 부인이다. 작중 댄버스 부인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레베카에게 둔 모습을 보인다. 레베카가 문란한 생활을 즐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오히려그분은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남자 따위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분께 사랑은 게임에 불과했다며 옹호한다. 레베카의 자살 의혹이 불거질 때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분이 자살할 리 없다며 강경하게 대응한다. 소심했던와는 대비되는 성격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레베카를 절대적인 우상으로 숭배하며 그녀의 모든 것을 옳다고 여기는 태도는 자아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레베카의 사망 당일 행적을 추적하던 경찰이 막심조차 몰랐던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면서 이러한 신념에 금이 간다. 레베카는 그날 맨덜리로 오기 전, 병원에서 암으로 인한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것이다. 의사는 그녀가 치료할 시기가 지나버린 심각한 암에 더해 임신이 불가능한 기형의 자궁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그제야 막심은 레베카의 마지막 말이 자신이 그녀를 죽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의사의 증언을 들은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 그리고 숭배하던 레베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 절망한다. 결국 레베카의 죽음은 자살로 판결되고, 증언을 듣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던와 막심은 새벽 하늘을 물들이는 태양빛 아래에서 희망을 속삭이며 맨덜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보았던 빛은 태양이 아니라 붉게 타오르는 맨덜리였다. 레베카를 향한 신념을 배반당한 댄버스 부인은 그녀의 가운을 입고 불타는 저택 한가운데서 실성하여 웃다가, 결국 저택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드 윈터 가문의 저택 맨덜리는 본래는 평범한 저택이었으나 레베카의 손에 새롭게 탈바꿈한 곳으로, 그녀의 취향으로 가득한 레베카의 분신과도 같은 곳이었다. 막심이 저택을 자주 비웠던 것 또한 맨덜리가 레베카의 악몽을 불러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맨덜리가 불타 사라진 것은 막심과가 레베카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둘만의 삶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막심이 가문의 명예와 그 상징인 맨덜리를 사랑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 사람이 레베카에게 끝내 패배해 삶의 터전을 잃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레베카>의 한계 - 남편의 사랑에 의존하는 의 자존감

<레베카>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가 자존감을 되찾는 계기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구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한 남편의 사랑을 깨달았던 것이라는 점이다. 막심이 레베카를 죽이고 그것을 은폐한 범인임을 알게 되었을 때도의 반응은그가 사랑하는 건 레베카가 아닌 나야!”뿐이었다. 작중 레베카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강한 자존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기에, 남편의 사랑에 자존감을 의존하는의 태도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뮤지컬에서는 막심에게 밀쳐진 레베카가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각색되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분노한 막심이 총을 쏘아 레베카를 살해한다. 레베카가 막심을 도발해 살인을 유도했다는 것은 그의 주장일 뿐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막심은 죗값을 치르지 않고 레베카의 죽음은 자살로 판결되며, 그 과정에서는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은폐한다. 1940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할 때 이 점이 문제가 되어 레베카의 사망 원인을 살인이 아닌 사고사로 변경했으며, 뮤지컬은 영화의 설정을 차용하였다.

영화  < 레베카 >(1940) < 사진  = BFI  제공 >

 

서스펜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1938년 출판 이후 84년간 절판된 적이 없는 인기작으로, 1940년 영화 및 2006년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으로 각색되었다. 원작 소설이 섬세한 심리 묘사와 치밀한 구성으로, 영화가 20세기 저택의 화려한 미장센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사랑받는다면, 뮤지컬은 보다 압도적인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와 그녀가 부르는 넘버 레베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소설, 영화, 뮤지컬까지 각각의 매력이 돋보이므로, 가능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비교하며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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