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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살롱에 대한 모든 것] DGIST 판 ‘쿨러닝’, 학교 대표로 양궁 대회를 나가다

문화

2025. 11. 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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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과기원 생활 속 칙칙해져만 가는 캠퍼스 라이프. 일상의 무료함에 지친 당신을 위해 DGIST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2022년부터 문화 강좌를 개설하여 다양한 예체능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DGIST만의 특색 있는 문화 강좌 디지살롱의 매력을 파헤쳐보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각 문화 강좌를 수강하고 체험기를 작성했다.

1.    DGIST 쿨러닝’, 학교 대표로 양궁 대회를 나가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혹자는 한민족을 활의 민족이라고 한다. 역시나 피는 못 속인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2025 1학기 문화 강좌 목록을 훑어보던 내게 양궁이라는 두 글자가 보이는 순간, 홀린 듯 양궁 과목의 수강 신청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복학 이후 지난한 공대 생활에 점점 활기를 잃어가던 나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신청서를 제출한 뒤 마음을 졸이다 보면 문자메시지로 문화 강좌 등록 안내가 전송된다. 보증금은 강좌당 10만 원이지만 한 학기 출석률이 75% 이상이면 다시 환급해 준다. 물론 선착순인 만큼 빠르게 신청하지 않으면 문자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선착순 신청에 실패했을 경우 다음 학기를 기약하거나 결원 모집 기간을 노리자. 보증금과 운영 정책과 관련된 세부 사항은 아래 사진과 같이 문자로도 발송되니 숙지하기를 바란다

보증금 납부 안내 문자(좌)와 보증금 반환 정책 관련 안내 문자(우) <사진 = 노경민 기자>

 

 

수강생 서약서 전문 <사진 = DGIST 포털 공지사항 캡처>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양궁 수업

 

고대하던 문화 강좌 개강일, S1 체육관에 들어서자 가슴 높이까지 오는 커다란 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 활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4년마다 열리는 국민 축제의 위상을 가진 하계올림픽 양궁 경기를 떠올린다. 그 덕분에 활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신기하기는 했지만 생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 활을 당기던 그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별건 아니고, 단지 당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올림픽 양궁 중계에서 본 선수들은 활을 잘만 당기던데, 나에겐 왜 이렇게 어려운가. ‘내가 잘못 당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고작 활 당기기 아니야?’라며 양궁을 얕봤던 나를 반성하며 당기기 연습에 매진했다.

 

활 당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본격적으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과녁의 위치가 눈 감고 쏴도 10점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가까운 것이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여러 번 관람한 나에게는 끽해봐야 5m 정도 떨어져 있는 거대한 과녁이 실망스럽기만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활줄에 화살을 끼우고 활을 당겼다가 놓았다. ‘과녁의 8점을 맞았다. ‘어라? 조준을 좀 잘 못했나?’ 그렇게 쏜 두 번째 발은 7. 세 번째 발은 8점이었다. 화살이 과녁에 맞는 소리가 늘어갈수록 활쏘기에 대한 환상 대신 10점을 맞추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조준한 대로 잘 맞지 않으면 강사 선생님께 먼저 여쭤 보기도 하고, 집에 가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나름대로 자세도 연습해 보면서 10점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심심풀이용 강좌였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양궁 수업에 진심이었다.

 

양궁을 즐기기엔 짧았던 한 학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과 도전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학기 말쯤 되니 어느 정도 조준한 대로 맞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활 쏘는 데에 재미가 붙기 시작한 찰나 허무하게도 한 학기 수업이 끝나버렸다. 양궁을 즐기기에 한 학기 주 1시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던 것이다. 종강에 아쉬워하던 그때, 강사 선생님께서 잠시 말을 가다듬으시더니 운을 띄우셨다. ‘다음 학기에 생활체육 양궁 대회가 있는데, 나가볼 사람 있나요?’

 

여름방학을 바쁘게 보내면서도 양궁 대회 출전은 내 머릿속에서 도통 사라질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연속해서 수강할 수 있게 한 문화 강좌 운영 정책 덕분에 2학기에도 양궁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첫 수업에 강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정말로 양궁 대회에 나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나의 대답은 단 1초의 고민 없이 !’였다. 그렇게 DGIST 쿨러닝이야기가 시작됐다.

 

동계스포츠의 불모지 아프리카에서 봅슬레이팀을 결성해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쿨러닝’의 포스터. 나의 이야기와 영화가 왜 인지 겹쳐 보였다.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DGIST 양궁부 창설 멤버가 되다

 

양궁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대한양궁협회에 대학 양궁부 소속 선수로 등록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강사 선생님께서는 ‘DGIST 양궁부를 창설하셨고, 졸지에 나는 창설 멤버가 되었다. 물론 양궁부 인원은 나 한 명이었지만 말이다. 이후 강사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양궁 대회 참가 신청까지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고, 양궁 대회 전 세 번의 수업에서 속성으로 대회 규칙과 점수 계산법, 소소한 팁을 배웠다.

 

DGIST 양궁부 선수 등록 신청서(좌)와 양궁 대회 참가신청 확인증(우) <사진 = 노경민 기자>

 

S1 체육관에서 진행한 대회 전 마지막 연습 <사진 = 노경민 기자>

 

경기에 가지고 갈 화살에 이름 쓰기 <사진 = 노경민 기자>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쳤다. 양궁 경기에 복장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동호회나 동아리 소속으로 출전하기 때문에 규정에 맞는 경기용 단체 티를 보유하고 있지만, 나는 1인 동아리, 그것도 올해 급하게 창설된 동아리 소속이라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DGIST 로고 디자인의 열전사지를 주문해 직접 티셔츠 위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경기복을 만들었다. 다이소 5,000원짜리 면 티셔츠 위에 전사지를 붙인 급조 경기복은 조금 초라해 보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 티셔츠를 입고 당당히 DGIST 양궁부의 이름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다.

열전사지와 다이소 표 티셔츠를 이용한 경기복 제작 <사진 = 노경민 기자>

 

난생 처음 나간 양궁 대회에서 내 편을 찾다

 

경기 당일 아침, 마침 4학년 2학기의 지루한 삶에 싫증이 난 지인 A형을 꼬드겨 함께 강사 선생님의 차를 타고 양궁 대회가 열리는 예천 국제 양궁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장비를 착용하고 연습 삼아 활을 몇 번 쏘며 양궁장을 둘러보았다. 전국 각지에서 활을 쏘러 모인 선수들, 올림픽 중계 방송에서 본 양궁 과녁과 장비, 여기저기서 들리는 화살 소리. 오랜만에 일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과 설렘을 느꼈다.

 

제7회 협회장기 추계 생활체육 양궁 대회 전경 <사진 = 노경민 기자>

그 설렘도 잠시,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방송이 들렸다. 양궁 경기는 먼저 조준점을 조정하는 조준 발사 6발씩 두 번 쏜 후에 점수를 기록하는 본경기를 치른다. 본 경기에서는 과녁의 10점을 겨냥하고 6발씩 12번을 쏴 총 72발에 대한 합산 점수로 최종 등수를 매기게 된다.

 

분명 조준 발사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본 경기에 들어서자 나는 마치 올림픽 양궁 경기에 출전한 것처럼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기 첫 출전, 남들에 비해 초라한 활과 장비, 헐렁거리는 다이소 표 상의, 부족한 연습량, 옆 선수의 10점 슛. 모든 것이 나에게는 긴장 요소였다. 특히 단체로 참가한 선수들의 파이팅 구호에 더욱 주눅 들었다. 경기의 중압감을 다른 선수들은 라인에 같이 선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이겨냈는데, 라인 위 홀로 서 있는 나는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 쏘니, 잘 쏘다가도 꼭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흔들리던 내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기 죽을 필요 없어!’ ‘충분히 잘하고 있어!’ 강사 선생님과 A형의 외침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인에 서 있는 건 홀로 출전한 나 혼자였지만, 적어도 라인 뒤에는 내 편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 덕에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실수가 적어지며 좋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본 경기에서 활을 쏘는 모습(좌), 표적지를 확인하고 점수를 기록하는 모습(우) <사진 = 노경민 기자>

최종 등수는 9. 메달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날 10m 대학일반부에 출전한 선수 30명 가운데 9번째로 높은 종합 점수를 기록했다. 나의 첫 양궁 경기이자 DGIST 양궁부의 첫 공식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영화 쿨러닝에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은 경기 도중 봅슬레이가 뒤집히며 결국 꼴찌로 마무리했지만, DGIST 쿨러닝의 끝은 종합 점수 9등이었다. DGIST 쿨러닝이야기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경기 점수표와 최종 등수 <사진 = 노경민 기자>

DGIST 쿨러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문화 강좌가 없었다면 DGIST 쿨러닝이야기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영화 쿨러닝에서 어빙이 자메이카 대표팀 코치직을 수락해 준 덕분에 주인공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수강 횟수 제한을 두지 않는 DGIST 문화 강좌의 연속성 덕분에, 나에게 양궁이란 단순히 한 번 체험해 본 운동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문화 강좌를 통해 단지 취미를 찾은 것뿐만 아니라, 전공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DGIST 재학 도중 양궁 대회에 도전해 보리라 상상했겠는가.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양궁 강사 선생님과의 인연 또한 문화 강좌가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었다.

 

DGIST 쿨러닝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문화 강좌의 도움을 받으면 언제든 DGIST 쿨러닝의 다음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문화 강좌를 진심으로 추천한다.

 

 

노경민 기자 nomin@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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