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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FGLP 특집기사 – 어린 시절 꿈을 찾아서, 윌슨산 천문대 (1) - 꿈을 찾아 떠난 11.3km 여정

문화

2025. 2. 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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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현재 내가 어떻든 언제나 나를 향해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이 좋았다. 학창 시절 지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었던 일탈은 천체 관측이었고, 고단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끝나고 하교할 때 잠시 올려다보았던 오리온자리는 포기하고 싶었던 고등학교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런 내가 천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바로 천문학도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윌슨산 천문대이다. 윌슨산 천문대는 LA 북동부 패서디너 부근의 가브리엘 산맥을 구성하는 산 중 하나인 윌슨산(Mt. Wilson)에 자리잡고 있다. 마침 FGLP를 통해 UCLA로 파견을 가게 된 나는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윌슨산 천문대의 입간판 < 사진 = 노경민 기자 >

 

그러나 FGLP 도중 윌슨산 천문대 방문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LA에 있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 자가용이 없으면 시간적, 경제적으로 방문 난도가 매우 올라간다. 특히 윌슨산 천문대는 천문대가 위치한 정상까지 연결된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우버나 택시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문하기가 더 어렵다. 어떤 택시 기사가 1700m가 넘는 산 정상까지 운행하려고 하겠는가.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단 하나, 도보로 방문하는 방법이었다. 말이 도보지 실제로는 등산이다. LA 시내에서 시작해서 윌슨산 정상까지 연결된 등산로는 딱 두 곳밖에 없는데, 그중 더 쉬운 코스는 우버를 타고 산을 조금이라도 올라가서 등산을 시작할 수 있는 챈트리 플랫 파킹 롯 앤드 트레일헤드(Chantry Flat Parking Lot and Trailhead)이다. 그러나 24년 여름에는 산불로 인한 보수 공사로 인해 진입이 불가능했기에(최근 재개장하여 현재는 이용 가능하다는 구글 리뷰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좀 더 길고 힘든 코스인 마운틴 윌슨 트레일헤드(Mt. Wilson Trailhead) 코스를 타게 되었다.

 

윌슨산은 정상 높이가 1740m(설악산 대청봉이 1708m이다)에 시작 고도가 해발 295m로 상당히 낮아 상승 고도가 무려 1445m이지만, 정상까지 편도 길이가 무려 11.3km에 달하기 때문에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다. 다만 내리막이 거의 없어 쉬어갈 틈이 없는 오르막 지옥 코스일뿐이다. 등산로 입구는 UCLA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 이용 시 기숙사부터 편도 2시간 이상 소요된다. 따라서 오전 5시쯤 해가 뜨기 전 출발해서 첫차를 타고 부지런히 환승해야 적어도 8시 이전엔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불행하게도 와야 할 버스가 1시간 동안 오지 않아 들인 노력이 무색하게 9시경에야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LA 대중교통의 악명높은 정시성을 고려하였을 때 무조건 일찍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UCLA 기숙사에서 마운틴 윌슨 트레일헤드 입구까지의 이동 경로 < 그래픽 = 노경민 기자 >

물론 튼튼한 신체만 있으면 산에 오를 수는 있지만, 안전을 위해 등산 시 충분한 물과 선크림, 신용카드, 보조배터리, 간식거리 정도는 꼭 챙기기를 추천한다. 이 중에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충분한 물이다. 당시 물을 4L나 챙기면서 스스로도 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등산할 때 날이 너무 더워 올라가는 동안 다 마셔버렸다. 등산로 중간에는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안일한 마음에 물을 덜 챙겼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또한 등산로엔 그늘이 거의 없어 LA의 작열하는 직사광선을 등산 내내 정면으로 맞아야하고, 10시가 넘어가면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등산을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새벽이나 해가 뜰 무렵에 산행을 시작한다고 한다. 9시에 등산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올라가는 사람보다 하산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정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산과는 다르게 윌슨산은 정상을 제외하고 통신이 가능한 곳이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그리고 중간에 화장실이 없으므로 등산 전 등산로 입구 근처 공원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자. 그나마 다행이게도 정상에는 급수대와 화장실이 있다. 마지막으로 등산로 중간중간에는 다른 등산 코스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길로 새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이정표가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잘 모르겠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마운틴 윌슨 트레일헤드 입구 < 사진 = 노경민 기자 >
마운틴 윌슨 트레일헤드의 시작 위치에는 이렇게 전체 코스에 대한 안내 표지판(좌)이 있다. 옆에는 그늘이 거의 없는 등산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표지판(우)이 있다. 경고문처럼 그늘이 없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지옥길이었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등산을 시작하면 등산로 입구부터 퍼스트 워터(First Water)까지 2.4km의 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게 된다. 이 구간은 내리막이 없는 데다 나무가 말 그대로 한 그루조차 없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조차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퍼스트 워터 분기점을 지나게 된다. 퍼스트 워터는 이름 그대로 등산로에서 첫 번째로 접근이 가능한 물가이다. 분기점에 도착하면 잠시 계곡으로 이어진 샛길로 들어가 시원한 물로 뜨거워진 몸을 식힌 후 출발하자.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제일 덥고 힘들었던 첫 2.4km 등산로의 모습(좌)과 퍼스트 워터의 전경(우). 더운 날씨임에도 물의 온도는 얼음장 같았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퍼스트 워터부터 두 번째 물가인 데커 스프링(Decker Spring, Second Water로도 불린다)을 지나 오차드 캠프(Ochard Camp)까지는 약간의 내리막도 있고 오르막 경사가 심하지 않아 산책하는 느낌으로 오를 수 있다. 정확히 등산로의 1/2 지점에 위치한 오차드 캠프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운영되었던 인기 있는 산장이었다. 1911년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무려 4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1938년 홍수로 시설물이 피해를 보면서 운영이 중단되었고 산장은 곧 버려져 현재는 사진과 비교를 통해 찬란했던 과거의 흔적만을 겨우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오차드 캠프의 현재 모습(좌)과 과거 산장이 운영되던 시절의 사진(우)이다. 돌로 이루어진 기단부만이 이곳이 한때 4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유명 산장이었음을 알려준다. < 사진 (좌) = 노경민 기자, (우) = Charlie Osborn 제공>

 

오차드 캠프를 지나서 라스트 워터(Last Water, Fourth Water으로도 불린다.)까지는 코스에서 중간 정도 난도를 가지고 있다. 오르막이 좀 있지만 나무 그늘이 많아 시원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라스트 워터는 큰비가 내리지 않고서야 돌 무더기 틈에서 물이 겨우 흐르는 모습만을 볼 수 있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라스트 워터를 지나고 나면 더 벤치(The Bench)까지 코스에서 가장 험한 길을 올라야 한다. 가파를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정비가 덜 된 길이 존재해 미끄러지거나 바위 아래로 추락하기 쉬워 등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난코스였던 암석지대. 놀랍게도 등산로가 맞다. 돌을 잘못 밟아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다. <사진 = 노경민 기자 >

 

험지를 돌파하며 끝없이 오르다 보면 탁 트인 평지에 벤치 하나가 놓여있는 지점인 더 벤치에 도달하게 된다. 더 벤치의 위치는 만자니타 리지 트레일 분기점(Manzanita Ridge Trail Junction)인데, 분기점의 갈림길에는 위에서 언급한 챈트리 플랫 등산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따라서 챈트리 플랫 등산로를 이용하면 여기서부터 동일한 등산로를 통해 윌슨산을 오르게 된다. 갈림길에서 오르막길은 하나이기 때문에 올라갈 때 헷갈릴 일은 적지만 내려갈 때는 다른 길로 빠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더 벤치에 오르면 빨리 정상을 올라야 한다는 조급함은 잠시 접어두고 벤치에 앉아 윌슨산의 광활한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를 느껴보자.

더 벤치의 모습. 단출한 의자이지만 지친 등산객에겐 소중한 휴식처이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잠깐의 휴식 후, 벤치를 지나 다시 올라가다 보면 톨 로드(Toll Road)라고 불리는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큰 폭의 비포장도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 가파르지 않고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도로 오른쪽에 펼쳐진 윌슨산의 전경을 감상하면서 걸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천문대가 위치한 윌슨산의 정상부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기가 막힌 절경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린다. 올라가다 보면 주의해야 할 지점이 한 곳 있는데, 톨 로드는 차가 올라가는 길이라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정상까지 빙빙 돌아 가게 된다. 거리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등산 시에는 중간에 위치한 샛길로 빠져 오르는 것이 좋다. 표지판이 따로 없어 언뜻 보면 샛길 입구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아래 사진을 참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톨 로드를 따라 오르게 되면 윌슨산이 위치한 산맥의 전체적인 전경과 광활하게 펼쳐진 LA 시내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어서 구경할 만은 하지만 거리가 거의 두 배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런 지름길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려 뙤약볕에서 한참을 더 걸어야만 했다(이 도로도 그늘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윌슨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등산로를 나오면 주차장과 통신 탑 기지, 그리고 천문대의 부속 시설인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매점인 코스믹 카페를 마주하게 된다. 정상부 풍경을 보며 결국에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었지만 우리나라 산과는 다르게 정상 표지석이 없어 왜인지 정상에 오른 것 같지 않은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톨 로드에서 등산객을 위한 샛길로 빠질 수 있는 분기점. 오른쪽 좁은 길이 샛길의 입구이다. 처음 가게 되면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기 때문에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올라가도록 하자. <사진 = 노경민 기자>

 

정상 부근 톨 로드에서 바라본 LA 시내 전경 < 사진 = 노경민 기자 >
정상에 도착하면 마주하는 코스믹 카페.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와 음료수를 구입하여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어린 시절 꿈을 찾아 11.3km의 여정 끝에 드디어 도착한 윌슨산 정상. 본격적인 윌슨산 천문대 탐방기는 2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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