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연구실 안, 노년의 마리 퀴리에게 딸 이렌 퀴리가 찾아온다.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은 실패했다 말하며 평생 스스로를 몰아붙이듯 살아온 마리. 이렌은 도대체 무엇이 엄마의 삶을 짓눌렀냐고 묻는다. 그 말에 마리는 유언장을 건네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끌어올렸던, 위험한 발견에 얽힌 이야기를.
블랙 미스 폴란드
궁금하니까.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그걸 실험이라고, 과학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안에선 내가 누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합니다, 과학.
1891년,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폴란드 출신의 소르본 대학 신입생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다. 마리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폴란드 이민자 안느에게 자신의 꿈을 말해 준다.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여 주기율표에 이름을 남기는 것.” 이 바람은 훗날 폴로늄(Po)과 라듐(Ra)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어, 마리에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겨준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인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소르본 대학에서 폴란드 출신 여성이었던 마리는 “과학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라며 동급생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마리는 자신을 ‘블랙 미스 폴란드’라 부르는 남학생들에게 도리어 “한 번만 더 저를 미스 폴란드라고 부르신다면, 저도 그쪽들을 미스터 프랑스 1, 2, 3으로 불러드리죠.”라며 맞선다. 마리는 부당한 차별에 오직 실력과 데이터만으로 대항한다. “데이터는 반박할 수 없겠지.”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고된 실험에 착수하는 모습이 이러한 마리의 성정을 잘 보여준다.
마리는 소르본 대학 최초로 수학·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었다. 여성의 과학 참여를 못마땅히 여기던 편견 어린 시각에 자기 힘으로 맞서야 했다는 뜻이다. 마리가 피치블렌드 광석에서 폴로늄과 라듐을 추출하는 연구에 성공했을 때도 일부에서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딸을 버려뒀다”는 비난을 가했다. 공동 연구자였던 남편 피에르 퀴리에게는 그런 비난이 없었던 것이 우습다. 1903년 두 사람이 방사선 연구에 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때도, 작중 마리는 그 자신의 이름이 아닌 “피에르 퀴리와 마담 퀴리”로 불린다. 그마저도 피에르 퀴리가 “나를 노벨상 수상자로 고려하고 있다면, 함께 연구한 마리 퀴리도 마땅히 수상자 목록에 올라야 할 것”이라는 청원을 올려 이뤄낸 결과였다.
마리 퀴리 사후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학계의 성차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013년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언론에서 여성 과학자를 기술할 때 성 편견을 피하기 위한 방침인 ‘핑크바이너 테스트’를 만들었다. 이 테스트에 따르면 여성 과학자에 관한 글을 작성할 시 ▲그가 여성이라는 정보 ▲남편의 직업 ▲자녀 계획과 양육법 ▲자기 분야의 경쟁 속에서 분투한다는 내용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서술 ▲특정 분야 최초의 여성이라는 강조를 배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학계의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여성’을 ‘극복해야 하는 요소’로 다루는 것이 차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남성 과학자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 있어 그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면, 여성 과학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마리의 경우, 성별에 더해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 또한 차별 행위의 표적이 되었다. 과학자의 인종과 출신지에 따른 차별 역시 현재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문제다. 과학계는 예로부터 백인 남성 집단의 지배 아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22년 5월, Science지는 <The Missing Physicists>라는 제목으로 물리학계에서의 인종차별을 다룬 특집호를 발간했다. 이 중 한 기사에서는 많은 백인 남성 과학자들이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도 “명백한 차별 행위가 없으면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물리학 교수의 70%가 백인 남성이며, 이러한 주류 집단의 문화는 무의식적 편향에 의해 주류에 속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가해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을 가하게 된다. 이렇게 시스템화된 차별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고, 차별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의 또 다른 이름, 라듐
누군가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면 그 사람이 정한 대로밖에 부를 수 없거든요.
그게 러시아 치하의 폴란드인이건, 이방인이건 여자건.
작중 마리가 새로운 원소의 발견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는 동기에는 이러한 차별의 영향이 크다. 마리는 “이상한 괴짜, 뻣뻣한 여자, 설쳐대는 폴란드인”이라는 호칭에서 벗어나 주기율표의 빈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남기고 싶어 한다.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것, 비단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만한 영예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이방인으로서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던 마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는 의미는 남다르다. 마침내 영롱한 빛을 띤 새로운 원소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마리는 지금껏 누구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원소에 ‘빛나다(Radius)’라는 뜻을 담아 ‘라듐(Radium)’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마리에게 라듐은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듐의 발견으로 마리는 그토록 바랐던 ‘이름을 남길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라듐이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중략) 저는 인류가 새로운 발견으로부터 해로움보다 이익을 끌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 피에르 퀴리, 노벨물리학상 수상 연설 중
신비로운 빛을 내는 새로운 원소 라듐은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이 된다. 특히 퀴리 부부가 공익을 위해 특허를 포기하고 라듐의 제조법을 일반에 공개하면서 그야말로 ‘라듐 파라다이스’ 시대가 열린다. 라듐이 들어간 초콜릿, 치약, 담배, 화장품, 콘돔, 시계가 등장하고 라듐수를 마시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졌다. 더군다나 라듐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라듐은 ‘기적의 물질’로 취급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은 라듐의 힘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라듐이 뿜어내는 방사선이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파괴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뢴트겐이 최초로 방사선을 발견한 해가 1895년, 마리와 피에르가 라듐을 발견한 해가 1898년이었으므로 인류가 방사선의 존재를 겨우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하물며 라듐이 발견된 시기는 전자의 존재가 확인된 지 겨우 1년이 지난 때였고(1897년) 원자핵의 존재는 밝혀지기도 전이었다(1911년). 사람들은 방사선의 정체도, 그 힘이 가진 위험성도 알지 못했다. 라듐은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물질이었다. 라듐의 위험성에 비해 인류는 너무 무지했고, 위대한 발견은 결국 재앙으로 돌아왔다.
저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검해 주십시오!
라듐의 유해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920년대 발생한 라듐 시계 공장 인부들의 사망 사건, 통칭 ‘라듐 걸즈’ 사건이었다. 당시 시계판에 라듐 페인트를 발라 만든 야광 시계가 인기를 얻으면서 공장은 10대 소녀들을 직공으로 대거 기용해 시계를 만들었다. 공장에서는 페인트를 칠하는 붓끝이 닳으면 핥아서 뾰족하게 만들어 사용하라고 지시했고, 자연히 직공들은 페인트에 함유된 라듐을 지속적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수많은 직공이 암에 걸리고 턱과 치아가 괴사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공장은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의사를 매수하여 사인을 조작했다. 죽음을 공론화하지 못하도록 성병인 매독을 사인으로 지목하는 경우도 많았다. 뮤지컬 속 「죽은 직공들을 위한 볼레로」는 바로 이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라듐의 영향으로 목숨을 잃은 직공들이 억울하게 매도당한 죽음에 울분을 토한다. 그들의 몸에 잔뜩 묻은 라듐의 빛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마리의 친구 안느도 그런 직공들 중 하나였다.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안느는 공장 사장 루벤을 찾아가 라듐의 유해성을 주장하지만, 루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안느는 마리가 라듐의 유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라듐 공장을 멈추라는 말을 남겼을 뿐 그 유해성을 공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에 충격을 받은 안느는 공장 라인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높은 탑에 올라가 외친다. “죽은 동료들의 몸이 무덤 속에서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하루 종일 라듐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일했던 제 몸이 어떤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검해 주십시오!”
과학자의 책임
안느의 시위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리는 탑 위에서 안느와 대치한 끝에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실토한다. 라듐이 위험하다는 것이 밝혀지면 내 자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고. 마리에게 라듐은 단순한 실험 성과를 넘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어렵게 얻은 연구의 기회를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리를 침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과학의 목적은 진리를 찾는 것이지만, 과학자는 종종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과학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에는 막대한 금액의 연구비가 들며, 이러한 연구비를 자력으로 충당할 수 있는 과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연구비를 벌기 위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고, 연구비 시장에서 일종의 ‘장사’를 해야 한다. 장사에는 마케팅이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투자하라고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과학자의 마케팅 수단은 연구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성과다. 자연히 연구 성과의 장점은 부풀리고 싶고, 단점은 감추고 싶어진다.
마리는 라듐의 유해성을 처음 발견한 즉시 라듐 파라다이스를 이끌던 사업가 루벤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루벤은 이를 비밀에 부치라고 지시했다. 마리는 라듐의 유해성이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공장을 중단시키라는 소극적 주장만 한 채 지시를 따른다. 루벤이 마리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는 자신을 대표하는 성과인 라듐이 몰락하면 자신 역시 몰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라듐을 ‘나의 또 다른 이름’으로 여기던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공포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는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제시해야지, 은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그 단점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마리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동안 라듐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 방사선량 허용치, 라듐을 이용한 질병 치료를 연구했다. 자신의 호기심이 끌어올려 버린 위험한 발견을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함이었다. 누구도 그 위험성을 몰랐으므로 미지의 물질을 발견한 마리에게 모든 일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리는 라듐의 발견자로서 그 발견이 가져온 재앙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다. 무지가 변명이 될 수 없도록,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활용할 만큼 성숙해질 수 있도록.
덧붙이지도, 빼지도 말 것
비단 과학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마리 퀴리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뮤지컬 <마리 퀴리>는 위인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넘어 인생의 위기 앞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우리와 다름없는 한 사람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조명한다. 이 작품 속에서 마리는 선한 영웅이기만 한 것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 가해자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모두가 그렇듯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마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딸 이렌에게 유언을 남기며 자신의 삶을 기록할 때 “덧붙이지도, 빼지도 말 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모든 아픔, 치부, 노력까지 있는 그대로 남겨주기를 바라면서.
2018년 제작된 대한민국의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는 2022년 마리 퀴리의 고향 폴란드에서 개최된 제22회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인 황금물뿌리개상을 수상했다. 특히 실제 마리 퀴리의 후손 한나 카레제프스카가 직접 공연 영상을 관람한 후 “아름답고, 놀랍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연”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 일본, 중국으로 수출되는 등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수작이 되었다.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자,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 등 독보적인 업적을 가진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그 업적 아래 가려졌던 그녀의 삶은 우리와 다름없이 예상치 못한 고난, 방황과 고뇌,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의 삶이었다. 그러나 마리는 자신의 발견이 불러온 재앙을 마주하고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다. 그리고 뮤지컬 <마리 퀴리>는 그런 그녀의 삶을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고 보여준다.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DGIST 학생들에게는 특히, 또한 과학자의 길이 아니더라도 각자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행동이 예기치 못하게 불러온 결과를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묻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마리 퀴리의 본명(Marie Skłodowska-Curie)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이나, 본 기사에서는 뮤지컬 내 표기에 따라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로 표기합니다.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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