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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마주한다 – 뮤지컬 <비밀의 화원>

문화

2023. 8. 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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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비밀의 화원> 포스터 <사진 = DIMF 제공>

 

시놉시스

1950년대 영국의 보육원에 살고 있는 에이미, 찰리, 비글 그리고 데보라는 나이가 다 차 퇴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입양을 원하는 어른들이 방문하는 행사 오픈데이의 마지막 개최일 전날, 놀이방을 청소하던 아이들은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해지는 미래를 꿈꾸지만 찰리는아무도 우리 같은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다며 의기소침해 있다. 침울해진 친구들을 바라보던 에이미는 어릴 적 함께 읽던 소설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비밀 연극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물러난 찰리를 제외하고, 다른 세 아이는 각자 한 명씩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자신들만의 비밀 연극을 시작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는 법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을 원작으로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보육원의 네 아이가 진행하는 비밀 연극이라는 극중극의 형태로 나타낸다. 에이미는 소설의 주인공 메리, 데보라는 메리의 하녀 마사, 비글은 마사의 동생 디콘 역을 맡아 소설 속 이야기를 재현한다.

무관심한 부모와 자신을 두려워하는 하인들 사이에서 자라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아이였던 메리는 전염병으로 집안 식구들이 모두 죽고 혼자 남아 친척 크레이븐의 미셸스웨이트 저택에서 살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하녀 마사를 만난다. 마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메리에게 이제는 혼자 노는 법, 혼자서도 외롭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일러준다(「혼자 서는 법). 마사의 말에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놀던 메리는 정원에서 다친 울새를 만나 친구가 되고, 울새의 안내로 10년간 폐쇄되었던 비밀의 화원에 발을 들인다(「울새와의 하루). 버려진 정원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 메리는 남몰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고, 마사의 동생이자 다정한 시골 소년 디콘을 만나며 점차 밝고 명랑한 아이로 변해간다(「미니어넷).

그러던 어느 날, 저택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울음소리를 따라간 메리는 사촌이자 저택의 도련님인 콜린을 만난다. 어머니의 죽음 후 아버지의 방치 속에서 자라 병약해진 콜린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며 저택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내왔다. 메리는 그런 콜린에게 봄이 찾아온 바깥세상과 비밀의 화원 이야기를 들려준다(「상상). 메리의 이야기에 빠져든 콜린은 어른들 몰래 밖으로 나와 메리, 디콘과 함께 비밀의 화원에서 놀며 점차 건강을 회복해 간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때로는 그 영향이 과해 타인의 평가에 얽매인 나머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혼자 서는 법을 배우는 것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에게 심술궂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정말로 그런 아이가 되어가던 메리는 비밀의 화원에 구근을 심으면서난 더 이상 삐딱이가 아니야라고 독백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이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고 다른 사람을 품어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메리는 비밀의 화원을 가꾸며 혼자 서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자신처럼 소외되고 외로워하던 콜린이 혼자 서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메리와 디콘의 도움으로 스스로 설 수 있게 된 콜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수군대던 어른들을 향해 외친다. “다들 나한테 할 수 없다고 수군거리지 않았으면, 나도 처음부터 할 수 있었을 거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이야기

소설 <비밀의 화원>은 소외된 이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는 이야기다.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자란 메리와 콜린, 다리를 다치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죽을 뻔했던 울새, 돌봐주는 사람 없이 방치되었던 비밀의 화원은 모두 소외된 것들이다. 메리가 울새와 비밀의 화원에 마음을 쓰는 것은 그렇게 버려진 것들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는 생략된 내용이지만, 원작을 보면 저택의 주인이자 콜린의 아버지 크레이븐 역시 이들처럼 소외된 인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크레이븐은 사랑하는 아내가 비밀의 화원 속 장미나무에 앉아있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비밀의 화원을 폐쇄하고 아내를 닮았지만 병약한 아들 콜린을 차마 마주하지 못해 저택을 떠나 방황한다. 때문에 소설의 결말부에서, 건강해진 콜린을 본 크레이븐은 감격에 젖어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에는 또 다른 소외된 이들이 있다. 에이미, 찰리, 비글, 데보라다. 네 아이는 기억도 없는 아기 때 버려지거나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보육원에 왔다. 그들은 오픈데이마다 새 가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며 자랐다. 의기소침해 있는 찰리뿐만 아니라 명랑하고 밝아 보이는 에이미와 비글도, 맏언니처럼 어른스러워 보이는 데보라도 저마다 상처를 품고 있다. 네 아이가 소설 <비밀의 화원>을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던 것은, 그들 역시 소설 속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가 자기들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마주한다

연극치료라는 심리치료 기법이 있다. 연극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재현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고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법을 말한다. 연극치료의 참여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가상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기에 한결 쉽게 이야기에 다가가면서도, 극중 인물이 되어 행동하면서 어느새 자신의 진짜 감정과 상처를 드러낸다. 에이미, 찰리, 비글, 데보라가 비밀 연극에 빠지게 된 것 또한 이런 연극치료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들처럼 소외되었던 소설 속 인물들이 상처를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을 연기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

에이미는 비밀 연극에 관심 없다며 밀어내는 찰리를 다소 과할 정도로 연극에 끌어들이려 하는데, 후반부에 밝혀지는 찰리의 과거에서 에이미의 이러한 행동이 설명된다. 찰리 역시 한때는 비밀 연극을 에이미만큼이나 좋아해 「울새와의 하루」에서 사용하는 울새 인형을 직접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오픈데이에서 만난 가족에게 입양되었다가 하루 만에 파양당해 보육원으로 돌아온 날 이후, 찰리는 더 이상 비밀 연극을 하지 않았다(「희망을 갖는다는 건」). 에이미와 아이들은 찰리가 비밀 연극을 사랑했다는 것을, 그랬던 그가 큰 상처를 입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찰리를 그냥 두지 못하고 연극에 참여시키려 한다. 사실 찰리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로는 관심 없다면서 다른 아이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연극에 집중한 아이들을 위해 몰래 책장을 넘겨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위로와 자신과 닮은 소설 속 콜린의 모습에 동한 찰리는 결국 마지막 비밀 연극에 함께 참여하고, 콜린이 되어 자기 힘으로 일어나며 끝내 눈물을 흘린다.

비밀 연극 속 울새를 만난 에이미 <사진 = 국립정동극장 제공>

 

아이들이 소설 속 인물에게 몰입하고 눈물짓는 것은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목마를 조랑말 삼고 새 인형을 울새 삼아 꾸민 소박한 연극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우리가 무대 위 세상이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작품에 빠져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무대는 그저 마루가 깔리고 조명이 설치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약간의 연출과 풍부한 상상력을 덧씌우면 그곳은 아이들이 지내던 보육원의 방도, 세 아이가 뛰노는 넓은 들판도, 장미꽃이 피어나는 비밀의 화원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투영한다. <뮤지컬 익스프레스 슈퍼스타>의 작가 황조교는 이를 우리는 작품을 통해 수면 아래 감춰두었던 우리의 진짜 감정과 마주한다라고 묘사했다. 비록 우리의 경험이 그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느끼고 표현하는 그 감정을 자신 역시 삶의 어느 순간에 느껴본 적이 있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작품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깊이 몰입한다.

 

괜찮아, 우리의 마음 속에 비밀의 화원을 가꾸자

마지막 오픈데이가 실패로 돌아가고 네 아이는 입양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 이별을 눈앞에 둔다. 하지만 이제 혼자 서는 법, 그리고 좌절을 겪고도 다시 희망을 갖는 법을 배운(「희망을 갖는다는 건 Reprise) 아이들은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콜린은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고, 에이미와 콜린은 일자리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데보라는 보육원 원장을 찾아가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혼자 면접을 치러 온 콜린을 대하는 면접관의 태도는 시큰둥하고, 일자리를 찾는 비글도 잡상인은 나가라는 모욕을 듣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세상에 직접 부딪히며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퇴소일, 회색 제복을 벗고 자신만의 색깔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보육원의 문을 열고 스스로 가꾸어 나갈 미래의 비밀의 화원으로 나아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뮤지컬 <비밀의 화원> 무대 <사진 = 국립정동극장 제공>

 

연극·뮤지컬 등 무대극의 매력 중 하나는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 세상에 투영하는 데 있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그것을 도우려는 듯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관객 모두를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연출을 활용했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으로, 무대 뒤편, 비밀의 화원의 문이 열릴 때마다 극장 안에 화사한 꽃향기가 퍼지도록 하여 ‘4D 뮤지컬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기쁨 연출가는 뮤지컬 토크쇼 M.Talk에서 이 작품의 제1배우는 다름 아닌이라며, 꽃향기에 흙냄새·나무 냄새를 섞어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조향해 사용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아이들을 비추는 조명에 꽃 문양을 그려 넣고 꽃과 덩굴이 우거진 영상을 무대에 사용하여 화원을 배경으로 한 동화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연출 덕에 극장에 들어서면 마치 동화 속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는 법을 잊어버릴 것 같을 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기분을 치유하고 싶을 때, 꽃향기 가득한 봄날이 그리워질 때 떠오르는 가슴 따뜻한 작품이다.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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