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해안의 작은 마을, 29살 엔지니어 앨런이 새로 만든 기계를 보여준다며 동갑내기 친구 프레이저와 폴을 한데 불러 모은다. 오랜만에 만난 20년지기 친구들이지만 그들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하고 위태롭다. 10년 전 자살한 친구 ‘고든’의 기억이 여전히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회상을 통해 9살, 19살, 그리고 29살인 현재의 시점을 오가며 <나쁜자석>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웃지 않는 소년, 낄낄이
9살, 평소처럼 바닷가 용바위에 모여 놀던 프레이저, 폴, 앨런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소년 고든을 만난다. 말수가 적고 절대 웃지 않으며 정신 이상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고든. 아이들은 고든을 무리에 끼워주며 ‘낄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친구가 되고 싶다면 타임캡슐에 자기들처럼 소중한 물건을 하나 묻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에 고든은 자신이 쓴 동화를 묻겠다고 답하고,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동화 <하늘정원>을 들려준다.
먼 옛날, 가난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황금나라의 왕이 있었다. 왕은 소녀와 결혼해 그녀에게 온갖 황금을 선물하며 기뻐했지만, 황금으로 둘러싸인 소녀는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도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호숫가에서 꽃을 꺾으려다 황금의 무게 때문에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왕은 왕비의 죽음을 슬퍼하며 황금을 모두 바다에 던지고 죽은 왕비를 기리는 하늘정원을 지었는데,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사람들이 하늘정원에 돌을 던져 무너뜨려 버렸다. 무너진 정원에서 꽃잎이 휘날려 하늘을 가득 채웠고,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에 기뻐했다. 그러나 곧 꽃잎은 모두 가라앉고 사람들은 다시 슬픔에 빠졌다. 하늘정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싹이 날지도, 어쩌면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작은 씨앗 하나만 남긴 채.
고든의 동화에 감명받은 프레이저는 그를 자신만의 비밀 장소인 폐교로 데려온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부모에게 외면받는 자식이라는 공통된 상처를 발견한다. 복화술사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자란 고든, 의사 부모님의 억압에 위축되어 자란 프레이저는 서로의 상처를 인지하고, 헤치고, 보듬으며 점차 깊은 관계를 맺는다.
장면이 전환되어 19살, 네 소년은 유명인이 되는 꿈을 꾸며 밴드를 결성하지만 고든의 우울한 음악적 성향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폴은 고든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프레이저는 수긍하면서도 고든이 밴드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망설인다. 그러던 중 앨런이 먼저 고든에게 밴드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는 것을 밝혀버린다. 고든이 담담히 “폐교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말을 남긴 채 가버렸다고 전해 들은 프레이저는 당황하며 폐교로 향하고, 이내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온다. 이어지는 고든의 장례식에서 충격을 받은 프레이저와 폴, 앨런은 싸움을 벌이다 끝내 밴드를 해체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충동
고든과 프레이저의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장소는 두 사람만의 비밀 장소인 폐교다. 9살, 고든의 동화에 감명받은 프레이저가 그와 단둘이서 폐교를 찾았을 때, 프레이저는 고든이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복화술 인형 ‘휴고’를 들고 고든을 압박하는 모진 말을 내뱉는다. “넌 아무것도 못 해.” “더 분발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될 거야.” 움츠러든 고든이 끝내 눈물을 흘리자, 프레이저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휴고를 내던지고 그를 보듬는다. 흐느낌이 잦아들고 자신을 위로하는 프레이저를 빤히 바라보던 고든은 그대로 그에게 입을 맞춘다. 이 폐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19살, 고든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폐교로 달려온 프레이저는 기름투성이 바닥에 가만히 선 고든을 발견하고 그를 안으며 두 번째 입맞춤을 나눈다. 하지만 프레이저는 이내 혼란스러운 듯 고든을 두고 도망쳐 버리고, 폐교를 벗어난 그의 등 뒤에서 폭발음이 터진다.
고든과 프레이저의 관계, 그리고 폐교에서 두 사람의 행동은 관객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연기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는 주제다. 이는 그들이 서로를 상처입히고 위로하는 태도가 격동적인 동시에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배우들은 입을 모아 그들이 “폐교의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의견을 표한다. 어둡고 적막한 폐교의 분위기가 고든과 프레이저가 감춰왔던 속내를 끌어내 충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때 그들의 내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다름 아닌 ‘관계를 향한 갈망’이다.
앞서 언급했듯 두 사람은 부모의 외면 속에 자란 아이들이다. 유년기의 사람은 부모로 대표되는 보호자에게 가장 큰 애착을 품으며, 이 시기의 애착 형성은 전 생애에 걸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밑바탕이 된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프레이저와 고든은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태도를 보인다. 프레이저가 폐교에서 고든을 압박했던 말은 엄격한 부모가 자식을 다그치는 말과 유사한데, 이는 그가 직접 들어왔던 말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든은 휴고 앞에서 위축되고 두려워하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휴고를 던지고 때린다. “아빠는 나보다 휴고를 더 사랑해”라는 고든의 말에서 그의 본질이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와 같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에게는 사람과의 관계를 갈망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둘만의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 갈망을 표출한다. 어쩌면 프레이저와 고든의 입맞춤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법을 거의 알지 못하는 소년들이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방법으로 관계의 결핍을 채우려 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프레이저 역을 맡았던 한 배우는 19살의 프레이저가 고든에게 키스한 이유에 대해 “그러지 않으면 고든이 죽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러한 충동은 폐교의 분위기에 휩쓸려 있는 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상처를 나누는 그들 사이에는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의 공유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충동과 현실 사이에서 망설이다 혼란을 이기지 못한 채 도망쳐 버렸고, 그 망설임의 대가는 불타는 폐교와 주인 잃은 기타 케이스에 가득한 고든의 동화라는 형태로 돌아온다.
관계의 고통과 ‘나쁜 자석’
29살, 출판사 직원이 된 폴은 고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출판할 기회를 얻어 그 사실을 앨런과 프레이저에게 말하지만, 프레이저는 이를 마뜩잖아하며 폴에게 고든이 남긴 동화나 한 편 더 읽어보라고 답한다. 이때 프레이저가 고르는 이야기가 바로 작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고든의 동화 <나쁜 자석>이다.
사람이 모두 사라져 물건들의 세상이 된 시대였다. 물건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살았지만, 자석들만은 다른 물건들을 너무 끌어당긴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그래서 자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기로 했다. 하지만 곧 자석들끼리는 서로 밀어낸다는 것을, 그래서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특히 한 자석이 그랬는데, 그는 어느 아름다운 자석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자석은 다른 자석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성을 잃어버린 ‘나쁜 자석’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쁜 자석이 되려면 힘이 없어질 때까지 맞아야 했지만, 다른 자석은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에 자석은 절벽에 올라 스스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난 나쁜 자석이야. 이제 너한테 다가갈 수 있어.”
많은 작가가 그렇듯, 고든 역시 동화 <하늘정원>과 <나쁜 자석>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 놓은 흔적이 보인다. 고든이 <하늘정원> 이야기를 들려줄 때 네 소년은 극중극으로 동화 속 인물이 되는데 이때 프레이저는 왕을, 고든은 소녀 역을 맡는다. 왕이 소녀에게 황금을 선물했듯 프레이저는 고든에게 관계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고든은 그 무게에 질식해 죽고 만다. 왕이 소녀를 애도하며 지은 하늘정원이 무너지며 작은 씨앗 하나를 남겼듯 고든은 죽으면서 세 친구의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작은 씨앗을 심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울지, 죽어버릴지는 각자의 선택에 남겨둔 채로.
한편 동화 <나쁜 자석>은 타인과의 관계를 대하는 고든의 태도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동화 속 자석은 다른 자석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면서도 다른 자석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를 절벽 아래로 내던진다. 그의 동화 속에서 드러나듯 고든에게 타인과의 관계란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그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다.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사망한 고든이 극중극에서 ‘나쁜 자석’ 역으로 직접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고든 자신의 이야기라는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고든은 “이 마을에서 기억되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자 리스트에 실리는 것”이라 말하거나 “날 기억해 줄래?”라고 묻는 등 유독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이는 고든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만큼 깊은 관계를 갈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관계가 자신을 좀먹어 사라지게 할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숙은 고통을 동반한다
프레이저와 폴, 앨런이 회상하는 9세, 19세, 29세의 나이는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을 코앞에 둔, 어쩌면 가장 불안정한 나이다. 사람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해지지 않는다. 성숙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한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일부를 잃고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해지는 법을 배우며, 그 과정은 나이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한 살 한 살 더해갈수록 이전의 미성숙함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일까.
이는 폴과 프레이저의 대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작중 등장하는 네 인물 중 어릴 때와 성장했을 때 모습에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폴이다. 19세에는 격정적이고 반항적인 베이시스트였던 폴은 29세에는 양복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회사원이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고든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폴은 어른이 되어서는 그의 동화를 출판하며 세상이 그를 천재로 기억할 거라고 추켜세운다. 고든은 그저 이상하고 뒤틀린 아이, ‘낄낄이’일 뿐이었다고 주장하는 프레이저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폴은 언제까지 죽은 사람을 놓지 않을 것이냐며 프레이저를 다그치고, 프레이저는 고든의 죽음을 부정하며 울부짖는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프레이저에게 슬퍼하며 멈춰 있는 것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폴 역시 프레이저만큼이나 고든의 기억을 놓지 못하고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극중에서는 주로 고든과 프레이저의 관계가 부각되기에 놓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19살 시절 프레이저와 앨런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고든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폴이다. 당시 고든은 마을 범죄자 리스트에 실리기 위해 경찰서에 석유를 뿌리는 등 기행을 벌였고, 그 뒷수습은 폴의 몫으로 돌아갔다. 폴이 고든을 싫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폴은 출판사 직원이 된 이래 단편집을 출판할 때마다 고든의 작품을 하나씩 끼워 넣고, 그 인세를 프레이저와 앨런에게 꾸준히 보내왔다. 일각에서는 고든을 비운의 천재로 만들려는 폴의 행동이, 고든을 배척했던 자신의 태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을 씻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고든의 기억은 폴이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강하게 그를 옭아맨다.
공기는 달콤하고 빨갛고 파랗고 노랗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앨런이다. <나쁜자석> 이야기가 앨런이 프레이저와 폴을 불러 모으면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앨런은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고든의 기억을 두고 갈등하는 프레이저와 폴 사이에서 그저 쩔쩔매며 친구들을 말리려 애쓸 뿐이다. 작중 앨런은 어릴 때나 커서나 눈치 없고 어리바리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심지어는 폴이 자기 약혼녀 티나와 몰래 잤다는 말을 듣고도 장난이라며 넘길 정도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의 바보 같은 모습은 사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앨런의 대사 “꼭꼭 숨겨두자, 지금 이 시간을”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묻어버린 그의 속마음을 가리킨다.
늘 밝고 우스운 사람인 척 연기하는 앨런이지만, 그는 고든이 자살하기 직전 밴드에서 나가라는 말을 전했던 것이 자신임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앨런은 고든의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는 프레이저나 기억을 놓으려 애쓰는 폴과는 또 다른 자신의 방식으로 죽은 고든을 그린다. 극의 끝부분에서 언쟁에 지친 프레이저는 분노하며 앨런이 만들었다는 기계를 걷어찬다. 그 순간, 기계에서 분홍색 꽃비가 터져 나와 공기를 가득 채운다. 흩날리는 꽃잎을 쳐다보던 세 사람이 동시에 떠올린 듯 고든이 <하늘정원>을 읽으며 나타난다. 세 사람은 멍하니 서서 <하늘정원>의 구절을 상기한다. <나쁜자석> 포스터 속 꽃비를 맞으며 우는 남자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고든의 기억을 가진 세 청년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은 친구를 기억하며 서로를 상처입히고 보듬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서로를 지독히도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나쁜 자석들처럼.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나쁜자석>은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극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바가 서사보다도 ‘감정’에 치중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들이 일련의 서사를 보여주며 그 속에서 인물이 느꼈을 감정을 추측하게 한다면, <나쁜자석>은 인물들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관객에게 쏟아낸다. 작품을 보는 내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할 수 없음에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짙은 감정이 전해져 온다. 당신이 느낀 그것이 정답이다. 감정은 때로 언어나 논리보다 훨씬 직관적인 방식으로 전달되기도 하기에.
우리는 살면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숨겨야 하는 순간을 더 흔하게 맞닥뜨린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때로는 우리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한 번쯤은,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격동하는 감정을 마주보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쁜자석>은 결코 친절한 극은 아니다. 온전한 서사를 끊김 없이 이어가는 작품들과는 달리, <나쁜자석>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모래처럼 잘게 부수어 극 전체에 흩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그중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각자가 살아온 삶,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혼자 남는 게 두려웠던 적이 있는지, 소중한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지, 약한 모습을 숨기고 애써 강한 체해야 했던 적은 없는지, 타인의 악의에 모르는 척 웃는 연기를 했던 적이 있는지,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린 적은 없었는지. 관객들은 마치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듯 마음속에 와닿은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가 무엇인지 보인다. 우리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솔직한 감정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고, 그럼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갈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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