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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라,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 뮤지컬 <비더슈탄트>

문화

2023. 7. 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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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비더슈탄트> 포스터 <사진 = 미스틱컬처 제공>

 

시놉시스

1938년 독일, 펜싱을 좋아하는 17살 소년 매그너스는 갑작스러운 체육관의 폐쇄 소식에 펜싱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아이드 스포츠 학교에 친구 아벨과 함께 입학한다. 펜싱을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학교생활, 그런데 그들이 배우는 수업의 내용이 기묘하다. 순종, 적응, 복종. 권력, 계급, 서열. 우생학, 군사 훈련, 인종 청소의 필요성과 전쟁의 정당화. 어떤 질문도 허용되지 않고 의문을 품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가르침에 저항한 아벨과 동기 재스퍼는 함께 지하방에 2주간 감금되는 벌을 받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금지 물품인 라디오와 모스 부호로 적힌 쪽지를 발견한다. 그 쪽지는 2년 전 펜싱부의 수석이었지만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학생 라이너가 남긴 것이었다. 그들은 쪽지를 따라 도서관에서 라이너가 빼돌렸던 비밀 서류를 발견하는데, 서류에는 스포츠 학교로 위장한 히틀러 엘리트 사관학교의 운영 계획이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38, 나치 휘하의 독일이다.

 

독일 위하여

학교의 단장 라인하르트 클레어는 학생들에게 독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케 한다. 독일을 위해 개인을 버리고 감정을 버린 채 국가에 충성하라며 학생들을 압박하고, 이에 반항하는 아벨과 매그너스를 펜싱부장 프레드릭을 이용해 권력으로 찍어 누른다. 무력함에 이를 가는 매그너스를 뒤로 한 채 아벨과 재스퍼는 결국 지하방에 2주간 감금되는 벌을 받는다. 클레어는 그 모든 것이조국을 위한 일이며, 이에 반항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고 규정한다.

지하방에 감금된 아벨과 재스퍼는 서로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레코드 가게를 했던 재스퍼의 가족은 집시들과 어울려 재즈에 맞춰 춤을 추는 나날을 보냈고, 아벨은 도서관에 하루 종일 머물며 책 속의 모험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나치가 집권하면서 레코드 가게는 문을 닫았고, 재즈는 금지 음악이 되었으며, 책은 빼앗겨 불태워졌다. 그들에게 독일은 더 이상 이전의 독일이 아니었다. “마음껏 낭만을 즐기고, 하루 종일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했던 날들을 기억하는 아벨과 재스퍼는 학교의 방침에 일침을 날린다. 우리 역시 독일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라고. 히틀러의 독일이 아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 독일을 위하여.

 

모순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나치와 클레어 단장의 행동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다. 아이드 스포츠 학교는 사관학교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학생들의 편지를 검열하고 외출과 자퇴를 금지해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했다. 스포츠는 미끼에 불과했을 뿐, 체육관이 폐쇄되어 이곳에 들어온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강제로 군대로 보내졌다. 정말 이것이 조국을 위한 일이고 따라서 그들이 당당했다면, 왜 학생들을 속이고 진실을 은폐했겠는가.

그들의 민족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초반부터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중 초반 클레어 단장은 아벨에게자네의 두상은 아리아인의 표본이라며 칭찬하는데, 후반부에서 아벨은 자신이 사실 독일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란 유대인임을 고백한다.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극적 전개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나치는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증명한다는 명목으로 아리아인의 인종적 특성을 기술한 책을 출판하거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혈통 조사를 시행했다. 그 일환으로예쁜 아리아 아기 대회를 열어 우승한 아기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는데, 이 대회에서 우승한 아기는 훗날 유대인으로 밝혀진다.

 

예쁜 아리아 아기 대회의 우승자 헤시 태프트 <사진 = The Telegraph&nbsp; 제공>

 

이 아기 사진은 나치에 반감을 품고 있었던 사진사에 의해 부모 몰래 대회에 출품되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아기의 부모는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외국으로 망명했고, 사진의 주인공 헤시 태프트는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후 진실을 밝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제는 웃을 수 있지만, 당시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됐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더슈탄트

라이너의 비밀 서류를 읽는 아벨, 매그너스, 하겐, 재스퍼 <사진 = 미스틱컬처 제공>

 

동기 하겐의 도움으로 라이너의 비밀 서류를 찾아낸 아벨과 재스퍼, 매그너스는 학교의 진실을 깨닫고 배신감과 나치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향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더 이상 학교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그들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비더슈탄트운동을 시작한다. 독일어로저항이라는 뜻의 비더슈탄트(Widerstand)는 나치 정권 당시 독일 내부에서 벌어진 나치 저항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80만 명의 독일인이 저항 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었고, 그중 1 5천 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아이들은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한 채, 라이너의 비밀 서류를 복사해 학교에 퍼트리고 라디오 방송을 교내에 송출하며 비더슈탄트 운동을 전개한다.

한편 매그너스는 클레어 단장에게 불려 가 개인 지도를 제안받고, 곧 펜싱부장이 되면서 비더슈탄트 운동의 가담자를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존경하던 펜싱선수인 클레어 단장의 인정과 명예욕에 흔들리기 시작한 매그너스는 아벨 앞에서 죽은 사람들이 잘못한 걸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고, 분노한 아벨은 결국 그와 갈라선다. 매그너스는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어라는 말을 하며, 한때 그토록 분노했던 프레드릭처럼 권력에 취한 인물이 되어간다. 많은 이들이 불만을 품은 사회라도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꾸려는 자는 그럴 힘이 없고, 힘을 가진 자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깨고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사람이 가진 신념이다. 아벨의 말처럼 내 삶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마음이다.

 

너를 지키기 위한 검

아벨과 매그너스의 갈등은 미처 해결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끝을 맺는다. 전국 펜싱 대회 전날, 아벨이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충격에 빠진 매그너스는 하겐과 재스퍼를 추궁한 끝에 아벨이 죽기 직전 프레드릭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내 그에게 진상을 말하라며 다그친다. 프레드릭은 그런 매그너스에게 아벨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보여주는데, 매그너스는 아벨이 그 편지를 쓰면서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혼란스러워하는 매그너스에게 프레드릭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년 전, 라이너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그 이야기를.

2년 전 펜싱부의 수석이자 프레드릭의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이였던 라이너는 그와 함께 학교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반란을 꿈꿨다. 서로에게 품은 감정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이 이 학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그들은 학교를 나가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라이너는 프레드릭에게 돌연 이별을 고했고, 얼마 후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프레드릭은 그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눈치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침묵하며 살아왔다.

그런 프레드릭에게 균열을 일으킨 것은 라이너가 죽은 지 2년이 지나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편지였다. 아벨과 재스퍼, 하겐은 라이너의 서류 봉투에서 변형된 모스 부호로 적힌 또 다른 편지를 찾아냈다. 해독 결과 그 편지는 라이너가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도서 대여 목록을 통해 그 수신인이 프레드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의 사물함에 편지를 넣어두었던 것이다. 1219일 새벽 3, 편지에 쓰인 대로 지하방을 찾은 프레드릭은 아벨을 만나 그의 출생과 비더슈탄트 운동에 대해 들었고, 라이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벨에게 라이너가 연락하던 영국 기자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학교를 빠져나가려던 아벨은 그를 감시하던 클레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매그너스, 재스퍼, 하겐, 프레드릭의 이름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클레어에게 아벨은 모든 것이 혼자서 한 일이며, 따라서 혼자서 책임지겠다고 대답했다.

그 날 우리의 맹세, 이 칼 앞에
다시는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서로를 끝까지 목숨 다해 지킨다고

매그너스는 아벨의 유품 상자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그에게 주었던 목검을 발견한다. 어릴 적 매그너스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아벨을 구하려다 같이 얻어맞았지만, 그럼에도 아벨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그너스는 아벨에게 아이들에게 맞서려고 펜싱을 배우고 있음을 밝히며 펜싱의 기원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기사들의 결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날, 두 사람은 목검을 맞댄 채 맹세했다. “죽는 날까지, 서로를 목숨 다해 지킨다고.”

아벨이 프레드릭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끝까지 지켜줘, 매그너스를이었다. 아벨은 매그너스를 지키기 위해 다시금 검을 들었던 것이다. 모든 책임을 품은 채, 스스로를 겨누어.

 

아벨과 라이너

작중 「라이너의 죽음」에 등장하는 라이너는 아벨 역의 배우가 연기한다. 마치 죽은 아벨의 자리를 라이너가 대신 채우는 듯한 연출이다. 프레드릭의 회상 속 라이너의 모습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문득 깨닫게 된다. 아벨의 빈자리를 라이너가 채운 것이 아니라 라이너의 빈자리를 아벨이 채웠었다는 것을. 라이너의 편지를 받고 찾아간 지하실에서, 프레드릭은 2년 전 죽은 친구를 꼭 닮은 한 소년을 만났으리라는 사실을.

라이너와 아벨은 닮은 점이 많은 인물이다. 학교의 가르침에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으며, 사랑하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작중 초반 아벨이 프레드릭에게 했던폭력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라는 말은 2년 전 라이너와 프레드릭이 서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라이너가 프레드릭에게 쓴 편지에서끝까지 살아남아라고 했던 것처럼, 아벨 역시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끝까지 살아내야 해라는 말을 남겼다. 정작 자신들은 친구를 남겨두고 먼저 명을 달리했지만, 그들은 죽었어도 그들이 남긴 기록과 그 신념은 죽지 않은 채 누군가를 각성시키고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아벨의 사망 다음 날 전국 펜싱 대회, 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깨닫고 그 신념을 이어 나가기를 맹세한 매그너스는 경기 직전 마지막으로 선언한다. ‘내가 승리한다. 그리고, 히틀러를 죽인다.’

 

무대 위 보이지 않는 벽

<비더슈탄트>의 무대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비더슈탄트」 넘버에서는 무대 왼편에서 클레어가 독일 위하여, 오른편에서 아벨, 재스퍼, 하겐이 비더슈탄트를 외치고 매그너스는 그 경계에 서서 양쪽의 가사를 번갈아 부르며 갈등하는 모습이 비친다. 한편 「라이너의 편지」에서는 라이너가 프레드릭에게 남긴 편지를 읽는 세 소년의 모습과 그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당황하는 프레드릭의 모습이 한 무대 위에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의 백미는 「라이너의 죽음」과 「우리의 칼 Reprise」에서 회상 속 아벨을 바라보는 매그너스의 모습이다. 매그너스는 아벨을 바라보며 손을 뻗지만 아벨은 그를 돌아보지 않는다. 아벨은 이미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돌이킬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잔인하게 상기시킨다. 비록 같은 무대에 서 있지만 이제 그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것을. 매그너스는 아벨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벽은 인물들이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도 관객이 그들의 심리를 동시에 헤아릴 수 있게 함으로써 고조되는 대립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마침내 벽이 깨지고 그들이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 분리되었던 이야기는 다시 하나로 합쳐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양날의 검」 <사진 = 미스틱컬처 제공>

 

뮤지컬 <비더슈탄트>펜싱나치에 대한 저항 운동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이다. 두 소재는지키다라는 공통점을 통해 하나의 작품 속에 녹아든다. 신념을 지키는 것,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 펜싱의 기원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결투였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라이너가 프레드릭에게 남긴 편지와 비밀 서류를 숨겨둔 장소가 그 결투를 위해 사용되던라피에 검에 관한 책이었다는 점 역시 프레드릭을 지키고자 하는 라이너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뮤지컬 <비더슈탄트> 2022년 초연을 맞은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연출, 다양한 상징으로 그려지는 작품의 주제는 비극에 가까운 이 이야기를 슬프지만 감동적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복선과 상징이 숨어 있어 한 번 보았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보았을 때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6명의 배우가 합을 맞추는 펜싱 장면은 국내 최초 펜싱 뮤지컬이라는 이 작품의 특징을 부족함 없이 드러낸다. 특히 <비더슈탄트>는 초연부터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연된 만큼,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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