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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DGIST의 하청노동자들 ① 오래 일했다고 잘 대해주지 않습니다.

사회

2022. 10. 1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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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르포의 제목과 전개방식은 남궁인 작가의 「응급실의 노동자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난 8 29일부터 31일까지 교내 임대형민자사업(이하 BTL) 하청노동자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노동자의 4대 요구사항은투명한 인사평가제도 확립하청노동자 임금 착복 감사 요구근속수당 및 승진 기회 부여전 직종 노동자에게 교통비 및 복지비 지급이다. 이후 각 부서별 추가 파업이 2~3일간 진행되었고, 공공연대노동조합 DGIST지회(이하 노조) 소속 간부들은 E1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DGIST BTL 사업은 3중 계약 구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차 용역 업체 S&I에 경영을 위탁하고, S&I 2차 용역 업체인 프로에스콤에 용역을 하청해, 교내 노동자들은 프로에스콤 소속에서 3중 하청 구조로 일하고 있다. 노동자와 직접 갈등을 빚고 있는 업체는 프로에스콤이다.

  DGIST 측은 이 파업을 하청노동자와 원청 간의 갈등으로 일축하며, DGIST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학내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소란으로 불쾌감을 표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또한 노조의 총파업 기간은 교내 인권센터가 주관했던 DGIST 인권주간(8/29~9/4)과 겹쳤다. 구성원의 인권 감수성을 돌아보자는 표어가 무색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DGIST에서 근무하지만, DGIST에 소속되지 않은보이지 않는 인간을 직접 만나 존재를 기록하고자 했다.

 

천막농성 25일 차 <사진 = 오서주 기자>

 

  9 22일 저녁 8시 천막농성 25일 차, 대학본부(E1) 앞에서 파업 당직을 서고 있는 노조 간부와 응원 방문한 노조 소속 노동자(이하 조합원)들을 만났다. 천막농성에서 막연히 상상되는 고된 투쟁의 이미지와 달리 천막은 따뜻한 분위기의 미니전구로 장식되어 있었고, 천막 앞 테이블은 음식으로 가득해 루프탑 카페에 온 듯했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매일 저녁 캠프파이어를 하는 느낌이라며 이런 즐거움이 파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임을 강조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다른 교내 구성원이 방문해 조합원들에게 인사와 응원을 남기기도 했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첫 번째 인터뷰이를 만났다.

 

* 괄호 안의 대화는 필자의 질문이다.

 

대학본부 1층 안내데스크 / 정지연 / 입사 9년차 / 37

  총장님 의전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의전이라고 해서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학교의 제일 어른이시니까 들어올 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잡아드리고, 나갈 때 로비에서 인사하고 차 나가시는 거 확인합니다. 총장님이 바쁘시면 저도 바빠요. 행사가 많고 왔다 갔다 할 일도 많고 총장님 찾는 손님도 많다는 뜻이거든요. DGIST는 학교이기도 하지만 연구소이자 공공기관이기도 해서 다양한 손님들이 오세요. 과기부 산하의 사람이 오기도 하고, 총장님 법적 직위가 달성소방서장, 경찰서장보다 높은 지역 유지 같은 분이셔서 이분들이 새로 임명되면 학교로 인사 오기도 하고, 큰 행사 때는 국회의원이나 군의원, 근처 유지인 사장님, 회장님들이 오시니까 VIP 의전을 요청할 때도 있어요. 어쨌든 여기는 일반 사기업이 아닌 학교라서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의전을 하지는 않아요.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거죠. 엘리베이터 안내하고, 행사장 위치 설명하고, 인사하는 정도? 손님에게 DGIST의 얼굴이 되는 셈이죠.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총장님도 저한테 항상 잘해주세요. 구성원들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학생과 관련된 행사는 면접이 있겠네요. 대면 면접 때는 학부모님들이 많이 대기하시는데 학교 구조 안내해드리고, 문의 사항 응대하는 일을 합니다. 또 보안 구역이 있는 연구소다 보니 방문객의 기본적인 통제와 안내도 제 역할이에요. 제 내선번호가 대표번호라서 전화 받는 것도 주요 업무고요. 공사가 있어서 외부 작업자들이 학교로 들어오려면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신고와 통제 역시 안내데스크에서 1차로 진행해요. 서비스, 통제, 의전 등이 주요 업무고, 하나하나 세기는 어려운 자잘한 업무도 많습니다.

  오래전부터 안내데스크에서 일했어요. 신성철 총장님 계실 때, 연구동만 있었을 때부터 안내데스크에 있다가 학사동 완공되고 행정부서 옮기면서 같이 따라왔는데, 여기(학사동) BTL이니까 퇴사하고 재취직을 하게 된 거죠. 연구동에 있을 때는 안내데스크 앞에 매점이나 카페, 식당이 있으니까 대학원생, 연구원, 선생님들이랑 매일 보고 간식도 나눠 먹고 하면서 정을 나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로 오고부터 다른 구성원들과의 거리가 많이 멀어졌어요. 이제는 주로 행정 선생님들만 보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요. 오래 본 사람한테는 마음을 주는 사람이 많아요. 연구원들도 그렇고 학생들, 교수님들도 그렇고. 오래 일한 이유이기도 해요.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점심시간에 교수님들이 산책하다가 들어오면서 항상 인사를 하거든요. 커피 한 잔 건넬 때도 있고. 입학할 때부터 봤던 학생이 어느새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그 학생도 나를 기억하고, 졸업하고 방문하는 학생들도 기억하고 인사해주고요. 어떤 대학원생은 우리 노조 파업 조끼 뒤에 문구 읽으면서 우리도 10년 전하고 월급 똑같다면서 응원해주기도 했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지나가면서 많이 응원해주고요. 학교 사람들은 정말 잘해줘요. 우리한테 갑질이 심한 건 회사(프로에스콤).

  선생님들이 그러더라고요. 여기에서 오래 일하고 있으니까 회사가 되게 잘해주는 줄 알았대. 사정 들으면 다들 깜짝 놀라요. 사실 우리가 즐겁게 파업하고 있는 것도 여기 사람들 응원에 힘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도 있어요. 용역 업체가 정말 나쁜 게 노동자들이 뭉칠 수 없도록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요. 지난번에 3 5일씩 파업하면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충을 알았죠. 우리끼리 사이도 정말 많이 돈독해졌어요.

 

  정지연 씨는 노조 복지부장이기도 하다. 그는 이경숙 노조 지회장과 함께 파업의 간략한 개요를 설명했다. 프로에스콤은 노동자들에게 매월 2  복지비를 약속했으나 노동자들은 이를 받지 못했고, 중간관리자는 이를 착복하거나 특정 노동자에게만 법인카드로 밥을 사는 등 불평등하게 분배했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착복 임금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청했다. 또한 프로에스콤은 일부 직렬에는 5만 원의 교통비를 지급해왔으나 같은 회사 소속의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7 5천 원을 추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다.

  중간관리자의 문제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하청노동자는 인사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승진 기회는 인사평가 점수에 따라 부여되지 않는다. 심지어 승진 2개월 만에 다시 승진하거나 노조를 탈퇴한 사람들만 승진 대상자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일한대로 승진할 수 있는 투명한 인사평가 제도를 요청하였으나 이는 묵살되었다.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총 9차례의 교섭과 3차례의 조정 회의가 열렸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노동자들은 쟁의권을 얻어 합법적으로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요구는 근속 수당 제공 및 근속 연수에 따른 승진 기회 부여이다. 정지연 씨는 9년간 한 자리에서 일했지만, 인사평가 상에 문제가 없음에도 9년간 단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 하청노동자들은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당장 내년이라도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면 언제든 실업자가 된다. 그러므로 근로계약서 작성 시 회사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 노동의 가치는 평가절하된다. 근속 수당 제공과 근속 연수에 따른 승진 기회 부여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최저한의 제도이다.

  DGIST 측은 이 파업이 용역업체와 노동자 간 문제이며 본교와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노조 간부들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논했다. 교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근무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기관이 취해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학교에도 이득이 된다. 근무 환경의 개선은 서비스 질 상승으로 이어진다. 마른걸레는 쥐어짜도 물이 나오지 않듯 인력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양질의 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할 것이다.

 

  농성장에서의 긴 대화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기숙사 경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새벽 2 30, 기숙사 경비는 당연하지만 24시간 근무직이다.

 

기숙사 경비 / 서희석 / 입사 6년 차 / 57

  우리 업무는 시설물 이용 안내, 외부인 출입 통제 및 안내, 마지막으로 불편 접수 및 생활 민원 서비스까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외부인이 더큰도시락이나 편의점 ATM기 이용하는 것, 학생들이 미팅룸이나 헬스장 사용하는 거, 카트 이용하는 것 안내하는 게 첫 번째 업무고요. 통제 업무는 택배 기사나 화장실 이용 원하는 외부인 진입 통제 등입니다. 생활 민원 서비스는 뚫어뻥 같은 거 대여해주는 겁니다.

  또 순찰 업무도 있는데 1 4회마다 1시간씩 돕니다. 순찰 시간은 정해져 있고, 각 동 각 층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확인하고, 그 외 시간에는 CCTV 모니터링, 카드키 대여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근무 형태가 독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24시간 일하고 다음 날 오프가 기본입니다. A B조로 돌아가는 거죠. 하루에 세 명이 근무하는데 한 명은 400동에서 근무하고, 200동에서 근무하면 15시간 일하고 9시간 쉽니다. 이 휴게시간은 저희가 쉬고 싶어서 들어간 게 아니라 회사에서 임금 삭감 명목으로 무급 휴게시간을 정한 거죠. 일방적으로 바뀐 거예요.

경비 근무 일정표 < 사진 = 오서주 기자 >

 

  (휴게 시간이 복잡하게 되어있네요?) 퇴근 못하게 하려고 휴게시간을 쪼개 놓은 겁니다. 차라리 한 명은 저녁 6시부터 근무 시작해서 쭉 일하고 퇴근하고, 다른 한 명은 낮에 출근하고 하면 더 편하지 않겠어요? 지금대로면 제대로 쉬지도 못해요. 지금 새로 오신 분은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휴게시간은 어디서 보내세요? 경비 휴게실은 못 봤던 것 같아서요.) 호실 하나가 경비 휴게실입니다. 저는 집이 가까워서 다녀오기도 하고요.

  직장을 오래 다녀본 입장에서 여기 근무 환경은 너무 열악합니다. 특히 복지며 상여는 챙겨주는 게 하나도 없죠. 공기업 순위는 DGIST가 항상 1위인데 비정규직에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어요. 최저시급 말고는 한 푼도 안 주는데, 그마저도 못 깎아 안달이라 휴게도 그렇게 늘렸죠. 식비 5만 원도 원래는 식권으로 줬어요. 통상 임금에 포함되면 퇴직금, 국민연금, 의료보험까지 다 영향을 미치니까. 1월부터 급여로 포함이 되었는데 회사가 생색을 엄청 냈죠. 임금 상승효과가 있다 뭐다 하면서. 그마저 지급 안 하는 팀도 있고요.

  여기 기숙사 사는 학생들은 다 자식 같아 보입니다. 2년 만에 대면수업 시작했는데 (파업으로 시끌시끌해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사실 여기 기숙사 학생들은 우리가 관리할 것도 많지 않습니다. 다들 부모님 말 잘 들은 학생들이 여기 오니까.

  사실 대학이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져서 학생들은 이런 일에 관심을 덜 갖죠. 학생들 입장에서는 세력화하고 조직화하는 게 좀 거칠어 보일 것 같아요. 저도 원래 회사에 다닐 때는 비정규직, 계약직, 노조 그런 거 잘 몰랐습니다. 다 여기 와서 알게 됐어요. 학생들이 우리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게 정말 당연한, 최소한의 대화할 창구를 마련해달라는 뜻임을 알아주면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시간 30분의 긴 대화는 늦은 시간 탓에 급히 마무리되었다. 짧은 휴식 후, 오후 12시로 예정된 다음 인터뷰를 위해 이동했다.

 

‘DGIST의 하청노동자들좋은 사람들과 오래 일하고 싶어요로 이어집니다.

 

오서주 기자 sjice@dgist.ac.kr

김오민 기자 omin.kim@dgist.ac.kr

박나영 기자 nytraxk@dgist.ac.kr

최유진 기자 dbwls99673@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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