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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책] 당신이 고전,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_김영하의 읽다

문화

2020. 1.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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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위대한 개츠비, 오딧세이아 중 하나의 줄거리를 설명해보시오.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글을 지나가도 좋다. 다만 대답하지 못했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많은 고전을 축약본으로 읽어왔다. 고전소설을 정독해보면 다른 소설인가, 싶다.  사람들은 몇백년이 지난 책을 아직도 재출간, 번역, 연구하고 있다. 고전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고전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김영하의 읽다 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김영하 『읽다』 <제공 = 문학동네>

읽다는 작가 김영하가 독서, 읽기 경험을 이야기한 여섯 개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 작가의 강연을 엮은 책인 만큼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김영하가 앞에서 강연을 해주는 것처럼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그러나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는 강력하다. 그의 경험 속에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과제, 연구, 동아리 등 수많은 할 일이 있다. 다 하고 나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다. 책 한 권을 읽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것이, 특히 고전이나 소설을 읽는 것이 의미 있는 활동인가.

김영하는 이 책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이야기한다. 그 중 한가지 의견을 빌려왔다.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201p)

 

이 책에서 고전,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 날 위험한책 읽기, 둘째 날 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셋째 날 책 속에는 길이 없다, 넷째 날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읽는다. 다섯째 날 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여섯째 날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총 여섯 번의 날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다섯째 날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소설의 주인공을 생각해보자. 흥미롭게도 양들의 침묵, 죄와 벌 같이 가해자, 괴물의 관점에서 섬세하게 쓰여진 소설이 많다. 왜 가해자의 시선에서 쓰인 소설이 많은가.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괴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가 괴물즉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기 위해 소설을 읽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소설이 나를 알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읽다속에서 마담보바리, 오딧세이아, 돈키호테, 위대한 개츠비 등의 많은 고전소설을 만난다. 필자가 이 책을 소개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수많은 고전 중 제대로 알고 있는 건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고전소설에 매료된다. 너무도 흥미로운 내용이고 당장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아진다. 하지만 막상 고전소설을 펼쳐보면 재미없고 어렵다! 작가가 이야기해준 것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볍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럼 책장을 덮어도 좋다. 하지만 수 많은 고전 중 나를 사로잡는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책부터 시작하면 된다.

 

당신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면, 반드시 마담보바리, 돈키호테, 오딧세우스, 개츠비를 만나러 갈 것이 분명하다.

 

디지스트에는 많은 인문학 강의가 있다. 고전소설 혹은 소설을 혼자서 읽기 부담스럽다면 강의를 활용해보자. 소설의 이해, 동서양 문학의 이해 등이 있으며 점심시간 학술정보관에서 진행되는 고전읽기 행사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9p)

 김현아 기자 hyuna0827@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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