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 = 노벨위원회>
노벨위원회는 1일(어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미국 텍사스대 앤더슨암센터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일본 교토대 의대 ‘타스쿠 혼조 교수’이다. 두 교수는 면역계를 활용해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차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의 원리를 규명했다. 특히 면역항암제 치료법 중 한 종류인 ‘T세포의 억제성 단백질을 타겟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앨리슨 교수는 면역 활성화 스위치로 작용하는 단백질인 CTLA-4를, 혼조 교수는 PD-1를 발견하고 기능을 규명했다. 이러한 발견은 기존에 치료하기 어렵고 부작용이 큰 암에 대한 차세대 치료법으로서 항암 면역요법에 있어서 새로운 면역 항암제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면역계, 암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국내 사망 원인 1위 암. 전체 사망자 중 암으로 28%가 죽는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체계를 규명해 차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의 원리를 확립했다. 이제까지의 암 치료는 외과적 수술이나, 방사선, 호르몬 치료법, 화학요법, 골수이식(백혈병) 등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져 왔다. 이러한 방법들은 암세포를 직접 표적하여, 파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점차 암이 기존의 방법에 내성을 가져 치료하기 어려워지고 암 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작용하는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치료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더불어 암 세포는 암을 죽일 수 있는 면역세포(T세포)의 기능을 억누를 수 있어 암에 의해 면역계가 무력화되기에 새로운 접근의 면역항암제가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앨리슨 교수와 혼조 교수가 무엇을 밝혔고, 어떻게 면역항암제 개발에 기여했을까?
앨리슨 교수는 면역체계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연구했다. 다시 말해 면역계의 브레이크를 풀어 백혈구(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고안했다. 더불어 혼조 교수는 백혈구에서 특정 단백질을 발견했고, 이 단백질이 앨리슨 교수가 연구한 단백질처럼 면역계의 브레이크로 작용하지만,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규명했다.
두 과학자가 발견한 단백질들은 새로운 항암 면역 치료의 중심축이다. 면역 항암제는 기존의 항암치료법이 암세포를 직접 표적하여 파괴하는 것과는 다르다.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의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약물이다. 암세포에 의해 무력화되는 면역계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기존 항암제와 차별된다. 다시 말해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면역계의 활성을 조절하여, 우리 몸이 스스로 암세포를 인지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 때와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세포막 표면에 존재하는 세포 고유의 이름표인 ‘항원’에 특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항암치료보다 부작용이 비교적 적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면역계의 가속기(Accelerator)와 브레이크(Brake) – 사고 나지 않도록 강약 면역 밸런스를 유지한다]
인간의 면역계는 나 자신과 외부 물질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외부 물질을 공격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T세포 1는 외부 물질과 특이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특정 외부 물질을 인식하고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T세포 혼자 작용하여 외부 물질을 제거하는 건 아니다. T세포 표면에서 T세포의 면역기능을 가속할 수 있는 단백질도 필요하다. ‘CD27’과 같은 단백질을 통틀어서 T세포 가속 단백질(T cell accelerators)이라 부르며 이러한 단백질이 있어야 완전한 면역 반응이 가능해진다.
가속기가 있으면 속도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브레이크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면역 활성을 억제할 수 있는 단백질도 있다. 이러한 단백질을 규명한 사람들이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이들이 발견하고 기능을 규명한 단백질들은 T세포의 면역기능에 브레이크를 거는 CTLA-4와 PD-1이다. 이러한 단백질들은 면역기능을 일정 시간 동안만 작동하게 해 인체의 방어 기능을 최고로 높이는 한편, 지나친 면역 활성으로 인한 정상 세포의 손상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CTLA-4나 PD-1을 못 만들도록 유전자 조작한 쥐는 T세포의 과한 활동으로 죽거나(CTLA-4),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을 앓는다고 보고되었다(PD-1).
T세포 가속 단백질과 브레이크 단백질 모두 T세포막에 있는 막단백질의 일종이다. 이 두 단백질이 균형을 맞추어 제어되어야 면역체계가 올바르게 작용할 수 있다. 균형이 무너진다면 면역계가 나 자신과 외부물질을 구분하지 못해 나 자신의 건강한 세포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제임스 앨리슨 교수 <제공 = 노벨위원회>타스쿠 혼조 교수 <제공 = 노벨위원회>
[앨리슨 교수와 혼조 교수, 이러한 단백질 어떻게 발견했을까?]
앨리슨 교수는 1990년대 T세포 세포막단백질인 CTLA-4를 연구했던 과학자 중의 한 명이었다. CTLA-4는 활성화된 T 세포 막에 발현하여 T 세포의 비활성화를 유발하는 단백질로서 CTLA-4를 연구했던 다른 과학자들은 이 단백질을 이용하여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고자 했다. 반면, 앨리슨 교수는 CTLA-4에 결합해 CTLA-4의 기능을 차단할 수 있는 항체를 개발하여 CTLA-4에 의한 T세포 억제 작용 조절을 통한 암세포 공격을 연구했다. 1994년 말 진행된 첫 실험에서, 암에 걸린 쥐에게 CTLA-4를 차단하는 항체를 주입하자 암이 치료되었다. 2010년 흑색종 2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임상시험에서 암의 흔적이 사라졌다.
앨리슨 교수보다 이른 1992년, 혼조 교수는 T세포막 단백질인 PD-1을 발견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PD-1도 T세포에 브레이크 작용을 하지만 앨리슨 교수가 발견한 CTLA-4 단백질과는 다른 기작으로 작용한다. 1999년, 혼조 교수는 PD-1이 PD-L1 또는 PD–L2와 같은 세포막 단백질과의 결합에 의해 면역 억제 역할(브레이크)을 한다고 밝혀냈다. 암세포는 PD-L1 또는 PD-L2을 발현하고 있으며, 이들이 T세포막에 있는 PD-1과 결합하면 T세포의 활성을 억제하여 T세포의 공격을 피한다고 밝혀냈다. 따라서 PD-1 단백질 활성의 억제는 PD-1에 의한 T세포 비활성화를 조절할 수 있다. 실제 2012년 연구에서 PD-1의 활성 조절이 거의 치료가 불가능했던 전이성 암을 앓는 환자들에게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왼쪽 위) CTLA- 4(노란색)는 T세포 브레이크로 작용하며 T세포 가속기(청록색)의 작용을 방해해 면역 활성을 억제한다. (왼쪽 아래) CTLA- 4의 기능을 막는 항체(초록색)가 도입되면 항체와 CTLA- 4가 결합한다. 따라서 T세포 가속기가 작동되어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오른쪽 위) PD-1은 T세포 면역 활성을 저해하는 또 다른 T세포 브레이크이다. (오른쪽 아래) PD-1의 기능을 막는 항체(초록색)가 도입되면 항체와 PD-1이 결합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제공 = 노벨위원회>
[면역치료의 새로운 방향성]
이 두 과학자의 발견은 암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다. 면역관문요법(immune checkpoint therapy)이라 불리는 이 치료법은 새로운 암 치료법으로 대두되고 있다. 2015년 흑색종을 앓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 방법으로 치료를 받은 뒤 유명해진 치료법이다. 물론 다른 암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부작용도 있다. 면역계를 과도하게 자극시켜 자가면역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예방 가능하며 T세포 브레이크 단백질은 다루기도 쉽다. 현재 연구는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새로운 단백질 발굴도 진행 중이다. 현재 대부분에 암에 대해 면역관문요법이 적용 가능한지 실험 중이며 PD-1 단백질 활성조절은 폐암, 신장암, 림프종, 흑색종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암 치료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새로이 진행된 임상 연구에서는 CTLA-4와 PD-1를 동시에 조절하는 요법이 흑색종 환자에게 보다 효과적이었다고 보고되었다. 실제로 면역항암제 1개만으로는 보통 20%의 치료 효과만 보인다. 항암제를 맞은 T세포들은 잠깐 급격하게 활성화되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힘이 없어진다. 이는 암세포 때문이다. 암세포는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PD-1이라는 T세포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T세포의 면역 활동을 막는다. 놀랍게도 85% 흑색종 암세포가 면역세포 면역활성 브레이크인 ‘PD-1’를 발현시키는 물질인 ‘PD-L1’을 이미 가지고 있어 CTLA-4와 PD-1을 동시조절하는 요법이 대두되고 있다. 다시 말해 PD-L1을 갖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면역활성에 브레이크를 거는 PD-1을 발현시켜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조절 요법이 각광받고 있다.
T세포가 암세포 항원(세포 고유 이름표)에 달라붙으면 암세포의 PD-L1이 T세포 브레이크(PD-1)와결합해 T세포를 약하게 만든다.(왼쪽) 면역항암제(Anti-PD-1)이 도입되면 PD-L1과 PD-1에 결합해 T세포가 약해지지 않게 만들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한다.(오른쪽) <제공 = 미국 암연구소, 중앙일보>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흑색종 치료제로 면역항암제 ‘여보이(CTLA-4 억제제)’와 ‘옵디보(PD-1 억제제)’의 사용을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허가한 바 있다.
한편,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2일 물리학상, 3일 화학상, 5일 평화상, 8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시상식은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T세포와 암세포(또는 항원제시세포) 간 세포막 단백질 상호작용 도식도, PD-1에 대한 항체와 CTLA-4에 대한 항체, CD28, T세포 수용체 등이 제시되어 있다.
류태승 기자 nafrog@dgist.ac.kr
감수 DGIST 기초학부 조정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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