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직접적 참여 필요해
남창훈 교수 <사진 = 강휘현 기자>
지난 4월, 국민투표법 개정 시한을 넘겨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시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헌 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여야가 개헌 합의에 나선다면 올해 안에 개헌할 가능성은 없지 않다. 31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쟁점 중에서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부분은 DGIST 구성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DGIST의 교수학습센터장인 남창훈 기초학부 교수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이하 ESC) 과학교육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ESC에서 과학기술과 개헌은 물론 기초과학과 성찰의 필요성을 꾸준히 고민했다. 남 교수는 시대 변화에 따른 개헌 필요성을 인식해 2017년부터 헌법을 배우는 자세로 개헌 논의를 지켜보았다.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하면서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1980년대, 90년대에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도구로 생각했던 관점이 아직도 바뀌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이 관점이 과학기술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다. 오로지 경제개발을 위한 도구로써 과학기술을 자리매김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확장된 과학기술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며 이 내용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학은 현대인들의 교양이자 세계관”
[과학기술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과학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공학으로 나뉜다. 자연과학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생명체를 비롯한 유기, 무기물질 순환과 교류를 체계적,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합리적이고 현명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이에 남 교수는 자연과학의 의미를 이해할 때 자연철학의 역사를 자세히 살필 것을 주문했다. 한편 현대적 의미의 공학 역사는 19세기 이후에 시작된다. 공학은 자연과학을 주축으로 효과적인 발전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생겨났다. 그 후 기초과학의 의미나 효용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기술이 보다 주목받아 기초과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남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극단적으로 위축되어왔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에 대해 고민할 계기가 없어 여론과 공감대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을 기초과학과 공학으로 나눈 것에서 시작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돌이켜보고 기초과학 지원을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목적을 살필 때 경제개발은 굉장히 협소한 이해이기에 과학의 목적을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즉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과학기술을 통한 급격한 경제성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이런 이해 방식이 대중 및 과학기술자에게 관성적으로 각인되어 있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고 있다. 이에 남 교수는 대중들의 올바른 과학기술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이 파스퇴르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과학과 과학의 응용이 있을 뿐이다”
[헌법,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 제1항에는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운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 1972년 제7차 개정헌법의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기술은 창달·진흥되어야 한다.’에서 유래한다. 70년대에는 외국기술을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재가공해 새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즉, 지금 헌법은 그 당시 시대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남 교수는 “그 당시에는 필요했던 조항이었으나, 이 조항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된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과학기술 발전 로드맵에 심대한 왜곡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인 기존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시대 부합하는 이념을 포괄한 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개헌안, 크게 나아졌으나 아쉬움 남아]
지난 3월 발표된 대통령 개헌안 제134조 1항에는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기초 학문을 장려하고 과학기술을 혁신하며 정보와 인력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남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을 ‘기존 헌법보다 나아진 점 2가지’와 ‘아쉬운 점 2가지’로 나누어 평가했다.
개헌안에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기초 학문을 장려’라는 표현이 추가된 것이 굉장히 중요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과학기술 목적을 경제발전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정의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공학 간 균형을 맞추었고, 기초과학 육성을 통한 과학 발전 로드맵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충하면서 시민 과학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눈에 띄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가령 대기업의 치료제 개발이라면, 공동체의 요구에 부합하는 과학은 오히려 예방의학에 가깝다는 예를 들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대기업이 국부를 창출한들 일반 대중의 삶을 두루 이롭게 하기는 어렵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자연과학의 발전이 다른 한 축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삶의 질을 두루 향상할 수 있는 과학기술 역시 국가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며, 위 예에서는 질병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역학, 보건학, 예방의학 등의 자연과학이 공동체의 요구에 부합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남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 과학기술이 현대인의 중요한 세계관의 일부를 이룬다는 성찰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추후 개헌이 이루어질 때 위 내용과 관련된 표현이 헌법에 명시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무엇을 하나]
ESC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사회에 퍼뜨리고, 과학기술을 대중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남 교수는 ESC 창립 멤버로 현재 과학기술계의 한계점을 모색하고 미래지향적인 변화를 꿈꾼다. ESC는 ▲ 과학문화위원회 ▲ 열린정책위원회 ▲ 청년과학기술위원회 ▲ 과학교육위원회 등으로 구성된다. 주된 업무로는 ▲ 과학대중화 ▲ 과학기술정책 분석 ▲ 기초과학 장려 ▲ 청년 과학자들의 고민 해결 ▲ 대학(원) 연구와 교육, 생활 등 문제 해결 ▲ 대학원, 학부, 고등교육과정의 과학기술 교육 성찰 ▲ 과학기술사를 담은 과학기술교육, 일반고 과학실험 수행을 위한 지원 등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자들에게]
남 교수는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목적과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성찰이 없는 연구는 변화를 이끌기보다 기존의 관성에 사로잡혀 오히려 변화를 방해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러한 성찰을 하지만, 보다 많은 성찰을 통해 올바르고 선진화된 방향으로 과학기술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NSC 논문 실적보다는 오랜 성찰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과학 발전과 과학대중화에도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시간 제약으로 인해 과학대중화를 모든 과학자가 하기는 힘들다. 다만, 연구 결과를 쉬운 언어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DGIST 기초학부생에게]
변화를 꿈꾸려면 동학(同學)이 중요하다. 남 교수는 학부생을 같이 공부하는 동료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동료들이 변화를 꿈꾸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좋겠다며, ESC나 그 활동에 관심만 갖기보다 ESC에 직접 참여해 같이 고민하고 우리 앞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만을 공부하기 위해 DGIST에 진학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 지식 습득은 고시원에서도 할 수 있다. 지식습득 이외의 부분은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배우는 기술이 무엇인지, 이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영향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성찰을 하지 않는 과학기술자는 과거에 묶인 과학기술자일 뿐, 미래를 열 수 있는 시야와 방향, 리더십이 있을 수 없다. DGIST는 미래 난제를 해결하는 리더를 기른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류태승 기자 nafrog@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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