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주]
‘2017 UGRP 우수 연구’ 시리즈는 학부생과 대중에게 UGRP 연구를 쉽게 풀어 전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UGRP는 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ject의 약자로 3학년, 4학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융복합대학 교과목이다. 기자가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분석해 비전공자도 UGRP 연구과정과 결과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
2017 UGRP 학술기사 시리즈의 두 번째 주제는 『한국 대중의 과학 이해에 대한 연구』이다. 김도연(‘15), 김은총(’15), 배현주(‘15), 신민호(’14) 학생이 팀을 만들어 B형(Bottom-up) 과제로 진행했고, 지도교수는 기초학부 김대륜 교수와 남창훈 교수가 맡았다. 이 연구는 정약용 코스 주제이며, 2017 UGRP 우수 과제상을 수상했다. 우수 과제상에는 총 10개팀이 선정되었으며, 정약용 코스에서는 이 연구팀이 유일하게 포함되었다.
이 연구는 패러데이에 대한 풍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탄생했다. 연구팀은 영국의 걸출한 물리학자인 패러데이를 집중조사했다. 그는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훌륭한 실험 물리학자가 되었고, 영국의 과학 대중화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연구팀은 그의 소통하는 면모가 주목했다. 그들은 패러데이처럼 열린 과학자가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이 대두되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아주 뜻깊은 연구가 탄생한 셈이다.
이 연구는 한국 조사, 영국 조사, 인터뷰로 구성된다. 우선,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 상황을 진단한다. 연구팀은 오늘날의 과학기술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를 보면서 한계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한계점에 기인한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근의 움직임을 조명한다. 이 연구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문제로 ‘과학과 대중의 괴리’를 지적한다. 이 괴리는 과학계의 관료주의적 운영과 과학기술자들의 대중화에 대한 관심 부족 탓에 발생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의견이다.
대한민국의 과학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권의 지휘 아래에서 탄생하고 성장하였다. 정부 주도의 진행이 당시에는 국가의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용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계의 자립성을 훼손시켰다. 훼손된 자립성은 다시 과학기술자들의 대중화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린다. 그 간극에 다시 정부가 개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최근 불거진 R&D 비용 대비 부족한 실적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아직 과학의 문화적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수치적 결과에 집착하니, 한계를 마주한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관료주의적 운영이 유효했을지 모르나, 앞으로는 과학계와 사회 모두가 변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린다.
연구팀은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영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들이 영국을 모범사례로 제시하는 이유는 패러데이 조사 과정에서 영국의 과학대중화가 잘 발전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과학대중화는 하나의 문화임과 동시에 과학자에게 필요한 보편적 소양이다. 그 결과, 영국 사회는 과학의 가치를 잘 수용하고 있다. 데이비, 패러데이 같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대중적으로도 활동하면서 시민이 과학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시민들이 연구비를 모금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실제로 18세기에는 과학자가 자발적으로 연구비를 모금하여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이 발전하여 오늘날 영국 과학자들도 자신의 연구를 정부나 대중에게 표현하는 훈련이 잘 되어있다. 국가 지원 연구의 제안서에는 반드시 대중화 방안을 소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국 과학대중화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한국과 영국의 비교를 마친 후, 국내 과학대중화 전문가 6인을 인터뷰한다. (▲김범준 교수 ▲김우재 교수 ▲송민령 박사 ▲원병묵 교수 ▲원종우 작가 ▲이정모 관장) 연구팀은 그들에게 △과학대중화 활동의 목표 △우리 사회에 과학대중화가 필요한 이유 △과학자들이 과학대중화를 통해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과학자의 과학대중화 참여에 기대하는 효과 등의 질문을 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6명의 답변 스타일과 내용은 상이하지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과학연구와 사회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대중화는 과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과학계는 자신들의 분야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얻어서 효과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대중은 과학을 포함한 안건들에 대해 이성적이고 보다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과학자도 평범한 민주시민이기에, 그들의 활동인 과학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로 요약된다.
연구팀은 일련의 연구 과정을 통해 과학자가 과학을 누리는 주체는 시민 전부임을 깨닫고, 스스로 민주사회 시민의 일부라는 소속감과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아래는 연구팀원 중 한명인 배현주 학생(‘15)의 인터뷰이다. 인터뷰에서는 연구 내용 중 과학기술원 학생이 주의 깊게 봐야할 사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연구에 참고했던 문헌들 중 일부이다. 연구과정에서 많은 문헌들을 읽었는데, 문헌들을 해석하고 재표현하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사진=최원석 기자>
<인터뷰>
Q. 2017년 우수과제에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본인 연구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 한국의 과학 대중화의 현상 진단과 추후 해결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을 우수사례로 선정하여 함께 조사했다. 영국과 대한민국은 국토, 인구, 역사 등 비슷한 점들이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은 산업혁명, 한국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도 두 나라의 과학계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닮아갈 수 있을지, 한국만의 과학대중화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본 연구이다.
Q. 연구를 하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많은 문제점을 조사했는데, 과학도로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관료중심적인 과학 정책이다. 이 문제가 다른 문제점까지 야기하여 악순환을 형성한다. 연구비를 지급하는 주체가 정부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을 평가할 잣대가 없으니, 객관적이고 수치화 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SCI 논문 수 평가가 대표적이다. 이런 단순한 평가기준은 과학의 철학적, 문화적 의미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사회가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수치적 결과를 매달릴 때는 지났다고 본다.
Q. 정부의 입장에서는 경제 발전에 득이 되는 연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지금의 정부 주도 과학정책을 포기한다면, 경제성장은 더뎌 질 것이라는 우려를 할 수 있을 텐데?
-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인 효과로 노벨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불안감을 떨칠 때도 되었다. 과학자들을 좀 더 신뢰하고, 길게 시간을 들여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물론 과학자 내부사회에서 윤리성과 책임감도 강해져야 할 것이다.
Q. 연구에서 과학대중화를 계속 강조한다. 과학대중화는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 대중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에게 과학이 받아들여진다면, 사회에 과학의 합리성이 녹아들 수 있다. 과학은 곧 합리적 사고 방법이 아닌가. 아직 대한민국은 정치나 문화적인 면에서 논리가 미흡한 점이 보인다. 근거와 논리가 중요한 과학에 익숙해지면, 그런 문제점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많은 의견이 충돌한다. 그걸 항상 다수결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과학의 정신이 사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과학대중화는 과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 때 둘을 설득하는 논리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Q. 19세기에 유행했던 흥미 위주의 과학대중화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 과학대중화는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 옳은 지적이다. 우리 연구 인터뷰에서 김우재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의 지난 수십 년 과학대중화는 오히려 과학의 과학다움을 방해하고, 유치한 놀이라는 관점을 심었다. 분명히 과학은 지적접근으로 다가가야 한다. 가까운 실생활에서 받아들여서, 수업시간에 들었던 과학개념들을 직접 체화하면 도움이 된다. 가벼운 것에서 시작하여 우주, 죽음 같이 철학적이고 원초적인 질문들로 뻗어 나가도 좋다. 이렇게 조금씩 합리성을 훈련해 나가는 것이다.
Q. 우리 과학기술원생들이 이 연구 내용 중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 우리는 수학, 과학이 좋아서 DGIST에 왔다. 그런데 거기서 끝을 내지 말고, 더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국가 지원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과학자가 되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럼 우리 연구 결과는 단지 노력의 산물로 간직할 게 아니라,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단순히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과학자가 되었을 때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윤리성과 책임감을 길러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연구의 원대한 목표는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DGIST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철학 등의 인문학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공통 및 교선필수 인문 과목에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꿀과목만 찾지 말고...!
Q. 진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 인문사회과학연구를 하려니 힘들었다. 인문연구법에 익숙하지 않았다. 정약용 코스의 숙명인 것 같다. 많은 문헌을 체화해서 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글쓰기인 데다가, 문헌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다른 학생들도 평소에 글을 쓰거나, 영어 문헌을 읽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행정 절차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인문 연구는 경험이 없다 보니, 문헌을 구입하거나 자문료를 준비할 때에 항상 예산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Q. DGIST 학생들, 그리고 정약용 코스를 선택할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 나는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과학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과연 내가 사회적인 문제들을 모른 체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과학연구에 몰입하는 것만이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데 정답일지에 대한 회의감도 생겼다. 그래서 정약용 코스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다른 학생들도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과학은 절대로 인간의 삶과 떨어질 수 없다.
정약용 코스를 선택할 학생들에게는 애정이 생긴다. 과학과 사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소수라서 힘들겠지만, 개척하는 과정이 학교나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하는 길을 응원한다.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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