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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체, 블랙홀 그리고 정보

학술

2018. 4. 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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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융복합대학 기초학부 

조희승 교



양자역학 수업이 시작되면 첫 시간에 등장하는 것이 흑체(black body)이다. 모든 파장의 빛을완벽하게 흡수하기 때문에 검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흑체라고 부른다. 사실 흑체에 대해 가장 흥미로운 점은 빛을 흡수하는 성질보다는 방출할 때 나타나는 스펙트럼이다. 흑체는 1859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가 불에 달궈진 물체에서 나오는 다양한 파장의 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최초로 도입하였다. 그는 에너지의 출입 과정을 일반화시켜, 흑체에서 방출되는 복사가 그 조성에 상관없이 흑체의 온도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흑체의 독특한 디자인도 제시하게 되는데, 오늘날 물리를 배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작은 구멍이 있는 공동(cavity)의 형태이다.

 키르히호프의 상상 속에 있었던 흑체는 실험실에서 실제로 만들어진다. 1895년 빌헬름 빈과 오토 루메르는 키르히호프가 제안한 형태의 흑체를 제작하여 복사광의 파장과 온도의 관계를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루메르는 흑체를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광도를 측정하는 관측법을 개발하기 위해 이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 실험에 뛰어든 것이었다. 어쨌거나 흑체를 실험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은 흑체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흑체에 대한 연구는 마침내 양자역학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은 고전적인 열 통계 역학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에너지는 불연속적으로 단절되어 있음을 가정하고 난 다음에서야 설명이 가능해졌다. 이어서 보어,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보른 같은 물리학자들의 손을 거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으로 정립되었다.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만들어진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이어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써보면           인데, 좌변에 공간의 기하와 우변에 공간 안에 있는 물질이 서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발표되고, 그 다음해 1916년 칼 슈바르츠실트는 이 방정식의 해를 하나 발견한다. 이것이 오늘날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라고 알려진 것이지만, 처음 제안이 되었을 때는 그 물리적 실체성을 한번에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블랙홀은 중력 붕괴, 중성자별, 백색왜성 등의 이슈가 다루어진 후에야 확고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방정식은 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만약 방정식의 우변의 물질이 양자역학을 따른다면, 좌변의 공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블랙홀을 포함하여 우주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대상들, 그리고 우주 자체의 운명도 물질을 매개로 필연적으로 양자역학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양자역학과 중력이 어떤 형태로든 통합을 전제해야만 생각할 수 있는 질문들이 생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마치 물과 기름을 섞듯이, 미분기하를 기반으로 하는 매끄러운 세상과 양자도약이 꿈틀거리는 단속적이고 분절된 세상을 조화시켜야 하는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티븐 호킹이 등장한다. 1975년 호킹은 블랙홀 주변에 양자역학 문제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양자역학과 중력을 아직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면 좀더 똑똑한 접근이 필요했다. 그는 양자화하기 어려운 중력을 마치 배경처럼 고정시켜 놓고, 물질만 양자화하여 계산을 해보았다. 블랙홀 주변에서 양자역학적으로 수시로 일어나는 쌍생성의 결과로 생긴 입자들 중에 음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는 블랙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양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는 바깥쪽으로 탈출한다. 하지만 호킹의 계산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블랙홀의 생애를 기록한 영화라기 보다는 블랙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느 한 시각에 찍어 놓은 스냅 사진과 같다. 이 관찰을 논리적으로 확장하면, 블랙홀 안에 들어간 음의 에너지는 블랙홀의 에너지를 소멸시키고, 블랙홀 밖으로는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블랙홀이 방출하는 양의 에너지 입자들을 호킹 복사라고 부른다. 블랙홀은 그냥 단순한 검은 구멍이 아니라, 에너지를 내놓으면서 서서히 증발하는 역동적인 또 다른 흑체였다.

 호킹 복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블랙홀이 증발로 사라진다면 블랙홀 안에 던져진 양자상태가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양자역학의 정상적인 유니타리 과정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문제에 많은 다양한 답들이 제기되었지만, 크게 보면 블랙홀이 증발하는 동안에도 양자역학의 원리가 틀림없이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양분되었다. 사실 호킹은 중력이 강한 현상에서 양자역학은 극적으로 변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고, 킵 손과 존 프레스킬과 더불어 양자역학의 운명을 두고 세기의 내기를 하기도 했다.

 2005년 호킹은 블랙홀의 증발 과정은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자신의 견해를 철회한다. 그것은 어쩌면 양자역학을 수정하고 싶지 않은 물리학자들의 관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1990년부터 축적된 연구 결과, 특히 당시 한참 붐이었던 끈 이론의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들 때문이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평평한 시공간은 아니지만 반-드시터(Anti-de Sitter)라는 휘어진 공간에 구성된 블랙홀의 증발은 완벽하게 유니타리한 양자역학 과정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 블랙홀 논쟁을 이끌어 낸 것은 호킹이었지만, 정작 논쟁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평평한 공간으로 넘어와서 블랙홀의 증발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난관들이 있다. 아마도 흑체처럼 블랙홀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직접 실험을 해보지 않는 이상 이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킹이 제기한 블랙홀의 존재론적 문제를 다루는 동안 양자 역학의 측면이 부각된다. 물리학자들은 블랙홀 증발이 제기하는 양자역학의 도전을 정보 손실 문제라고도 부른다. 블랙홀이 증발이 된다면 블랙홀이 담고 있는 양자 상태에 대한 정보가 파괴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것은 클라지우스의 열역학적 엔트로피에서 루트비히 볼츠만의 통계역학적 엔트로피를 거쳐 클라우드 섀넌의 정보로 이어지면서 엔트로피와 정보의 연관성을 간파해 나갔던 과정과 유사하다. 과연 중력은 양자 정보를 파괴할 수 있겠는가? 양자 정보란 무엇인가?

 블랙홀의 문제를 포함하여 양자 역학이 양자 정보의 언어로 해석되며 흥미로운 주제들이 등장하는 동안 다른 분야도 비슷한 발전을 이루었다.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생물정보학이 등장했으며, 정보를 물리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전산 개념과 공학 기술들이 정립되었다. 마침내 1980년대에 리차드 파인만이 상상하기만 했던 양자 컴퓨터가 이 세상에 실존하게 되었다. 정보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언어가 되어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시스템적으로 통합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모종의 진리가 여러 분야에 발산하여 나타난 것인가?

물리학은 틀림없이 실험을 기반으로 한 과학이지만, 물리학의 중대한 도약은 언제나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1900년대 흑체와 1970년대 블랙홀을 통해 이루어진 양자역학의 발견과 발전을 생각해보면, 중대한 발견은 예제를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개념 자체를 오래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 개념에 연관된 연습 문제를 풀어보면서 개념을 잘 이해하곤 한다. 이것이 세상에 수많은 교과서에 한 챕터가 끝나면 연습문제들이 있는 이유가 아닐까? 과학의 변혁을 일으키는 그런 예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쏟아 부으며 극한까지 나갈 수 있는 넓이와 깊이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서 이리저리 실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지난 314일에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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