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손님이 되어버린 DGIST의 첫 졸업생
“DGIST에 입학할 때 가지고 있던, 신선한 목적에 대한 여러분의 도전정신은 다 어디 갔어요? 왜 전부 동태 눈깔이 돼 가지고 패배의식에 젖어서 후회하고 있어.”
‘내 삶이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가?’ 새삼스레 DGIST에 입학했던 3년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인 교수님이 말하는 패배의식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패배의식을 가지는 대상이 학교의 배려 없는 소통 과정이고, 그에 대한 체념과 포기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맞는 말인 듯합니다.
△지난 12월 12일 DGIST 기초학부 학위수여식에 대한 설명과 졸업 거리 퍼레이드 설명이 진행됐다. <제공=DGIST 포털 게시판>
저는 11월 2일에 칼럼을 한 편 썼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카이스트의 그늘’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제 나름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입학한 DGIST였습니다. 그런 DGIST의 융복합 교육이 KAIST에서 찬밥 취급 당하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DGIST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신 총장이 토씨 한 글자씩 바꾸며 DGIST의 특징을 옮겨가는 것이 허무했습니다. DGIST 학생으로서 우리 만의 차별성과 개성을 토대로 한 자부심을 가지고 싶다는 글을 썼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했으니 후회 하진 않았습니다. 근데 교수님께선 이것이 KAIST에 가지 못한 저의 변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썼던데, ‘카이스트의 그늘 아래 있는 거 아닌가?’ 카이스트 갈 실력이 안 돼서 여기 왔다는 그런 비굴한 변명 같은 거는 이제 통하지 않아요.” ‘독자가 글을 잘못 이해했다면 기자의 잘못이겠지.’ 저는 순간적으로 드는 억울함을 체념으로 갈무리했습니다.
“웃기니? 나는 눈물이 난다. 눈물이.”
설명회 현장에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는 저의 얘기에 한 선배가 던진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설명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납니다. 핫팩을 하나 챙겨줄 터이니, 정장 안에 내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여하라는 말도, 겨울은 추운 게 맛이라는 말도. 아마 제가 졸업식에 참여해서 한 겨울 유가읍 거리를 1km 넘게 걷기 전까지는 계속 우스울 것입니다. 설명회에서는 한창 벼르다가 이제서야 글을 쓰는 제 모습도 마찬가지 입니다. 졸업식이 두 달도 채 안 남은 지금에야 당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쩌겠어. 졸업 하려면 (퍼레이드 참여를) 해야겠지.” 지나가던 선배의 한 마디가 제 모습과는 얼마나 닮았는 지, 얼마나 다른 지를 가늠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뿐입니다.
한 학교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졸업 퍼레이드는 800년이 넘은 행사라고 합니다. 이제 막 학부 5년차에 접어드는 DGIST가 나름의 문화로 갖고 있는 ‘드라이 위크’, ‘명예시험’, ‘튜터링 제도’, ‘FGLP’ 등등. 모두 진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것들입니다. 온전한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학생들의 의견과 참여,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 사이에 ‘DGIST의 졸업 퍼레이드’가 끼면 안 된다고 생각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DGIST의 졸업 퍼레이드’에 우리의 의견과 참여, 시간을 얼마나 쏟았는지.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DGIST의 문화에 우리 학생들이 ‘주(主)’로써 참여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지. 이 행사가 누군가의 한 줄 기록으로 남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자긍심으로 길이 남을 수 있는지.
△학부 설립 5년차가 되는 DGIST는 고유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제공=배현주 기자>
교수님께선 이미 인근 중고등학교에 협조를 구하셨다 합니다. 졸업생들은 당일에 와서 대열을 맞춰 걷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함께 유가읍 거리를 걷게 될 포산중 학생들은 가면을 준비하고, 정크아트를 만들고, 난타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산중 학생들도 11월 말에 전달 받았다는 ‘졸업 퍼레이드’ 소식을, 우리는 12월 중순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DGIST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첫 졸업 행사에 1인분 몫의 자리를 채우는 객(客)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저는 한 줄 글에 걱정을 담는 일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2월 7일, 선배들이 학사모를 쓰게 될 그 날이 춥지 않기 만을 바랄 뿐입니다.
배현주 기자 bhjoo55@dgist.ac.kr
[오피니언] 익명성에 대한 고찰 (0) | 2018.04.03 |
---|---|
[에세이] 반절의 성공이 남긴 믿음 (1) | 2018.02.08 |
2017년 DGIST의 과학단어 (0) | 2018.01.01 |
2017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신고리 원전 (0) | 2017.12.31 |
[에세이] 90%가 16%가 될 때 (0) | 2017.11.2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