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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백 없는 투표용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학술

2017. 6. 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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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는 뇌와 SNS가 만들었다


19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 5 4, 온라인에서는 투표용지가 두 종류라는 주장이 퍼졌다. 후보자 간 여백 0.5cm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사전투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백 없는 투표용지를 받았다고 동조하면서, 온갖 음모론이 덧붙었다. ‘여백 없는 용지를 받은 표는 무효 처리되며, 특정 대선 후보자 지지자가 밀집된 지역에 여백 없는 용지를 제공하여 표를 무효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내용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논란에 대해 그럴 일 없다며 일축했으며, 허위 사실 유포자 11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망의 개표일, 여백 없는 투표용지는 그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정상 투표용지(좌)와 여백 없는 투표용지(우), 여백이 없었다면 투표용지 길이가 짧거나 후보자 수가 더 많았어야 했다. < 사진(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


    인지는 완벽하지 않다

인지능력이 틀릴 수 있다는 예로 착시 현상이 있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는 무의식적 추론이 착시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당연히 그렇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만일 투표용지의 기표란이 너무 좁아서, ‘당연히 여백이 없겠지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여 정말로 그렇게 보았을 수 있다.

투표라는 특수한 환경이 잘못된 인지를 유발하기도 한다. 기표소에 가면 긴장하는 사람이 많다. 무효표가 되지는 않을지, 도장이 칸을 벗어나지 않을지 등 걱정한다. 마지막까지 누구를 뽑을지 거듭 고민도 하고, 이번 대선에서 처음 유권자가 되었다면 첫 투표라 두근거리기도 한다. 윤지상 의학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요인은 모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스트레스는 해마에서의 세포 생성을 억제하고 세포 사멸은 증가한다. 이는 곧 인지, 단기기억, 공간기억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모두가 똑같이 착각한다

개개인이 잘못 보았을 가능성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많은 수가 같은 착각을 했다는 게 의문이다. 착각한 내용이 모두 동일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다. 2013,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타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가 1980년대에 감옥에서 이미 사망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이후, 다수가 똑같은 착각을 하는 현상을 소위 만델라 현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 이외에도, 각종 로고나 영화 대사 등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집단 기억 오류도 착각의 일종이다. 사소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음료수 상표 미린다미란다로 알았다거나, 과자 상표명이 오징어집이 아니라 오징어칩으로 착각한 경험은 쉽게 볼 수 있다. 분명 과자를 구매한 사람이 상호를 잘못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린다’와 ‘오징어집’ < 사진 = 롯데칠성음료, 농심 제공 >

14년도 사이언스에 실린 시나 조슬린 신경과학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새로 형성된 뉴런(신경세포)은 과거에 학습한 정보를 몰아낸다. , 인간과 같은 포유류는 평생 해마에서 새 뉴런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하지 않은 오래된 기억이 새 뉴런에 의해 그 회로를 잃는다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미린다든 혹은 투표용지 여백이든, 기억했다고 해도 뇌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굳이 저장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있다. 가령,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오징어집이 아니라 오징어칩이라고 주장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말했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는 잘못된 정보 전달에 SNS가 큰 영향을 준 것과 관련이 깊다.

 

    SNS의 영향도 많았다.

‘2016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는 국내 인터넷 이용자 중 무려 65.2%[각주:1]SNS를 이용함을 알려준다. SNS 분석 업체 소셜메트릭스에 의하면, SNS상에서 사전투표 양일간 투표용지라는 단어가 총 65,227건 언급되었다. 그중 26,914(41%)은 논란, 의혹, 가짜와 같이 부정적으로 쓰였고, 긍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10,735(16%)에 불과했다. 투표용지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을 더 많이 접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단어 ‘투표용지’는 사전투표 양일간 긍정보단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다. < 자료 = 소셜메트릭스 >

한세희, 민진영 연구원이 쓴 트위터 상에서 정보원의 특성이 리트윗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SNS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한다. 정보제공자가 사회적으로 유명할수록, 정보제공자가 사용자와 친밀할수록, 정보제공자가 본인의 개인정보를 더 많이 공개할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SNS를 켜보면, 지금 당장 유명하고, 친밀하고, 공개된 사람들만 모여있다. SNS가 매우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이라는 결론이다. 예컨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트위터 사용자 3,763명이라는 소수가, 80만 명의 어마어마한 트위터 사용자에게 영향을 줬다(동아일보, SAS코리아).

 

    가짜 뉴스가 판친다

검색어에 따른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는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에 따르면, ‘Fake news(가짜 뉴스)’라는 단어는 미국 대선과 겹치면서 16년 말부터 그 사용량이 급증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탄핵 국면과 대선이 이어지면서 올해 초부터 급작스럽게 사용되었다. SNS와 메신저 사용량의 증가로 허위 사실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사회 현상으로 결착되었다.

지난 1년간, 미국과 한국의 ‘가짜 뉴스’(미국: Fake News)의 관심도이다. 국가별 최고점을 100으로 환산하여 나타내었다. < 자료 = Google Trends >

가짜 뉴스를 보고, 원래 알고 있던 정보도 뒤바뀔 수 있을까?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서창원, 이지혜 연구자는 왜곡된 정보에 계속 노출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주입된 기억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진행한 와이즈만과학연구소에서의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는 영화를 본 뒤, 개별적으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비교적 정확히 대답한다. 일주일 후 다른 참가자가 잘못된 답변을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시 똑같이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자 70%가 정확히 답했던 기억을 왜곡시켰다. 가짜 뉴스가 옳은 기억도 틀린 것으로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선관위는 신뢰도가 낮았나?

간혹 처음부터 선관위가 잘 했으면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는, 억지 주장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4월 말 개봉한 더 플랜과 같이 선거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퍼지기도 하고, 원래 정부 기관이나 부처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정부신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와 시사점논문에서, 국민은 정부의 신뢰도를 100점 만점에 44.7점을 주었다. , 국민은 그다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지은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2013기업태도가 소비자의 기업루머 신뢰에 미치는 영향논문에서, 소비자가 기업에 관한 부정적 루머를 들었을 때 소비자들의 사전태도에 따라서 그 루머의 효과가 현저히 차이 난다고 했다. 부정적 루머는 기업의 이미지가 부정적일 때 더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짜 뉴스가 퍼진 이면엔 선관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작용했다는 결론이다.

가짜 뉴스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과 SNS(블로그, 카페 포함) 등에서 퍼진다. 이는 정치 성향과는 관계 없다. < 사진 = 보수성향단체 단톡방 캡처(상), 진보성향단체 커뮤니티 캡처(하) >

요컨대, 개개인이 착각한 경험이 SNS와 같은 매체로 퍼져 점차 다른 사람의 기억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투표용지에는 부정적인 어감은 물론, 심지어 가짜 뉴스도 덧붙어서 확산이 더욱 빨리 되었다. 이는 기존에 정부를 신뢰하지 않은 사람을 중심으로 퍼졌다.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조차도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김근우 기자 gnu@dgist.ac.kr

  1.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0.19%p, 미래창조과학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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