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 학술문화팀에서 ‘디지스트신문 DNA’와 협업해 ‘DGIST人의 서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DGIST人의 서재’는 DGIST 운영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의 추천 도서를 소개, 전시하여 이들의 학문적 영감과 지혜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기획되었다. ‘디지스트신문 DNA’는 이들을 직접 만나 추천 도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리즈 목록
[DGIST人의 서재①] 이건우 총장의 서재 - 교육 철학부터 대학의 미래까지
[DGIST人의 서재②] 신경호 연구부총장의 서재 – 세상을 사유하는 법
‘DGIST人의 서재’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경호 연구부총장이다. 신경호 연구부총장의 추천 도서 12권은 6/10(화)부터 8월까지 ▲E1 1층 ▲E7 해동창의마루에 전시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외)
『1984』 (조지 오웰)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장자』 (장자)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피어시그)
『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Q. ‘내 인생의 책’으로 뽑은 12권 중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어린왕자』와 『사랑의 기술』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내 정서나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 책이다. 『어린왕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얼마 전 취임하신 레오 14세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한 말, “길들인다는 것”이다. 지구에 와서 장미 정원을 보고 자기 장미가 흔한 꽃이었다며 실망하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네 장미가 그렇게 소중해진 건 네가 장미에게 바친 시간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관계를 맺으면 소중해지고, 그것이 사랑의 출발점이 된다.
『어린왕자』를 끝내고 같은 해 겨울에 읽은 책이 『사랑의 기술』이다. 『사랑의 기술』은 사실상 『어린왕자』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쓴 책인데, 『어린왕자』가 예쁜 동화라면 이쪽은 아주 무거운 철학 서적이다. 내 용돈으로 산 책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내용을 요약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음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국가나 사회, 종교, 자연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홍익인간의 정신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사랑의 기술』의 원제는 『The Art of Loving』인데, 번역은 ‘예술’ 대신 ‘기술’이라고 썼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표현하고 실천해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왕자』가 예쁜 도화지를 펼쳐주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사랑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게 『사랑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권은 따로 떼어 놓기 힘든 책이다.
Q. 『어린왕자』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했다고 했는데, 커가면서 어렸을 때와 감상이 달라지기도 했는지?
굉장히 다르다. 『어린왕자』는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릴 때는 책을 읽으면서 『어린왕자』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나중에 재수를 하면서 이 책을 몇 번 더 읽었는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게 이런 얘기였구나’, ‘어른들이 그래서 그림을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구나’ 느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각을 잃지 않는 것이 사랑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편견 없이 보는 것이다.
『어린왕자』와 비슷한 동양 철학으로 『장자』가 있다. 『장자』 중 ‘듣는다’의 개념에 관한 구절이 있다. 듣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언어를 소리로 듣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를 들으면 잘 듣는 것일까? 좀 더 잘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사유하면서 들어야 한다. 내 정신으로,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내 가치관과 판단력을 기반으로 듣는다는 의미다. 즉 상대의 이야기를 자체적으로 편집하거나 걸러서 듣게 된다. 그러니 더 나아가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그래서 장자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기(氣)로 들으라고 했다. 자신을 비우고, 아집과 편집을 없애고 분위기를 통해 듣는 것이 잘 듣는 것이다. 자기 모든 걸 내려놓고 잘 들은 다음 사유를 통해서 자기를 정립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보기’가 있다. 영어로 ‘보다’를 의미하는 단어는 see, look at, watch 등 다양한데,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see’는 눈을 떴을 때 수동적으로 보이는 것,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보고 반응하는 것이다. ‘look at’은 집중적으로 보고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오랫동안 바라보는 ‘watch’가 되고, 더 나아가면 관찰 ‘observe’가 된다. 그런데 ‘see’에는 궤를 달리하는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I see you.”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너를 재거나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see’부터 출발해 전체를 바라본 후에, look, watch, observe를 했으면 좋겠다.
Q. 추천 도서 중 세상을 보는 시각에 관한 책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요즘 같은 AI 시대에는 ‘사실(fact)’과 ‘진실(truth)’을 구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사실’은 많지만 그것이 가진 실제적인 의미, 그 행간의 ‘진실’은 많지 않다.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 속, 특히 AI의 발달로 우리가 많은 것을 스스로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어떤 사실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 끄집어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나 SNS 등에서 수많은 정보를 보고 무조건 믿는 경우가 많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 몇 권을 선정했다. 나를 지키고, 나를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만드는 책들이다. 『팩트풀니스』도 그런 내용이고, 『1984』도 소설이긴 하지만 그런 사유를 하지 않았을 때 다가올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인간이 신의 영역으로 간다는 뜻이다. 요즘 같은 정보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바뀌지 않는 진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시리즈의 다음 편으로 최근에 『넥서스』가 나왔는데, 『넥서스』는 사실상 『호모 데우스』의 응용편 혹은 실용편이다. 또 다른 『넥서스』는 여러분들이 만들 수 있을 거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사실을 마구 만들어내는 것은 쉽다. 반면 그중 진짜 참된 것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유발 하라리도 언급한 바와 같이, 참된 것이 거짓된 것에 비해 시간과 노력, 비용이 많이 든다. 참된 깨달음이 고통과 부끄러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대학에서는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 구성원들이 어렵고 힘든 길이더라도, 가능한 진실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나면 굉장히 편해진다. 나는 어떤 때는 직함을 15개, 20개씩 달 정도로 일이 많은데, 거절하는 일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일할 때 편한 이유는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의 95%는 지나간 일이고, 남은 5% 중 또 95%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1%가 채 안 된다. 그 외의 나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이라는 말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화하는 것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에게 있어 불변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봐야 한다. 내 경우에 그 불변은 사랑이다. 상대에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철학에 입문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사실은 그래서 『소피의 세계』를 목록에 넣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해 철학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는데, 좀 복잡하고 두껍긴 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이미 다 아는 얘기를 하거나 4원소설처럼 이제는 틀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읽는 데 조금 싫증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추천하는 다른 책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다. 앞의 몇 장만 읽으면 “내가 왜 지금까지 철학을 어렵게 생각했지?”라고 느낄 것이다. 이 책은 비즈니스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로부터는 조금 벗어나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것도 어차피 우리가 깊이 사유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동양 철학으로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이 있다. 유가나 법가는 주로 국가와 사회를 얘기하고, 도가의 『장자』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많이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장자를 좋아한다. 사실 학생들에게 권하기는 좀 어려운 책이다. 서양 철학은 분석적이고 미시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동양 철학은 종합적으로 화두를 툭 던진다.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기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게 만든다. 해석의 방식도 다양하고 여지가 많아서 자기에게 우선 단단한 중심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건지기 어렵다. 그래서 추천하는 책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동양 철학인 선(禪,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수행법)을 통해 사유하는 과정,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함께 다룬다. 기회가 된다면 동양 철학 강연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겠다. 오프라인으로 듣는 강연은 분위기로 듣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온라인으로 혼자 들을 때와는 굉장히 다르다.
Q. 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책에 치이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그 책이 내 생각을 옥죌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몇십 쪽짜리 장(章)을 쓰려고 한 인생을 살고 몇 달 동안 그 글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하루 혹은 일주일은 들이는 게 맞지 않겠나.
책을 가볍게 펼치고, 읽다가 힘들면 내려놓고 다른 책을 보라. 잘 읽히는 책이 있고 안 읽히는 책이 있는데, 안 읽히는 책을 무엇 하러 읽겠나. 차라리 나가서 뛰어노는 게 낫다. 새 소리, 바람 소리, 구름 지나가는 모습, 꽃향기가 계속 변하는 것을 편안하게 듣고 보고 느껴보라.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와서 책 한 쪽을 또 읽어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보다, 중간중간 생각을 정리하면서 읽는 것이 더 좋다.
전복 껍데기의 주성분은 분필과 같은 탄산칼슘이다. 그런데 분필과 달리 전복 껍데기가 단단한 것은 탄산칼슘 사이사이 단백질이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유는 우리의 지식을 재배치하고 그 사이에 접착제를 끼워 넣는 일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철학, 여러분의 모습이 굉장히 단단해질 것이다. 계속 같이 성장하면 좋겠다.
박재영 기자 jaeyoung21@dgist.ac.kr
황인제 기자 hij0374@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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