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 뽀롱이의 죽음과 동물권 문제
함께 사는 지구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작년 여름이었다. 홋카이도 여행 중에 아사히카와 동물원을 방문했다. 연간 평균적으로 3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는 동물원은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꽤나 희귀한 동물도 있었다. 처음보는 동물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 하면서도, 불쑥불쑥 의문이 치밀었다. ‘저 아이들은 여기서 태어난 걸까?', '야생으로 돌아가면 살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과 동물들에 대한 감탄으로 인해 동물원을 돌아다니는 내내 머리속이 복잡했다. 그 와중에, 거의 대부분의 육식동물은 우리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엔 날씨가 더운 탓이겠구나 생각했지만, 우습게도 동물원을 떠나기 직전에 웅크려 있던 동물 대다수가 야행성이란 게 생각났다.
지난 18일에는 대전 오월드에서 퓨마가 탈출했다.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퓨마 ‘뽀롱이’는 2013년 대전 오월드로 옮겨졌다. 그 안에서 수컷 짝을 만나 새끼를 낳고 살았다. 평생을 우리 안에서 지냈던 ‘뽀롱이’는 사육사의 실수로 인해 우리를 탈출했고, 5시간의 짧은 외출 끝에 사살됐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퓨마가 마취총을 맞고도 금방 다시 활동함에 따라 생포가 쉽지 않아 사살하게 됐다고 밝혔다. 뽀롱이의 사살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 사살된 퓨마는 8살 암컷이었다. 퓨마의 수명은 10~20년이다.
근대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권리의 범위와 대상에 대해 논쟁해왔다. 인간에게 동일한 권리가 당연해진 최근에는 권리의 대상이 ‘동물’로 확장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감자’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도축된 닭은 9억 3600만마리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는 식용견 사육을 억제하기 위해 축산법에서 개를 제외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혹자는 ‘닭과 개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동물권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러면서 집에서는 업살녹(업진살 입에서 살살 녹네)하면서 고기 먹겠지’라며 운동의 진심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단 동물을 보고 먹는 문제에만 그치는 논쟁은 아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7년 동물실험실태’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약 308만 마리의 동물이 실험을 위해 희생되었다. 국내에서는 주로 설치류와 어류가 실험에 동원되고 원숭이, 돼지 등의 포유류는 소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희생되는 실험동물들을 고려하면, 어림짐작으로도 소수의 종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가 희생됨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일부 과학 분야에서 동물실험의 효용성과 생명윤리를 근거로 동물실험을 생략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일부 화장품 브랜드에서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인 ‘비욘드’. “예뻐지기 위해 널 다치게 할 순 없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필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불쌍해 하면서도, 동물원에서 얻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을까?’,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면서도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과학기술인으로서 과학의 발전을 위한 동물실험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전혀 뜻밖의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자신이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나쁜 페미니스트’라 지칭하며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중략)…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인 우리는, 다른 생물을 살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이 말과 행동, 습관, 인격, 인생을 연쇄적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도, 그를 위해 희생되는 생명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과학지식의 확장과 인류의 발전을 위해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라도 희생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 존엄성을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으면서 큰 일인 것이다.
인간의 권리가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를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당연한 사실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퍼지게 되었고, 미국의 노예제도는 전쟁 끝에 약 150년 전인 1863년 폐지되었다. 여성의 참정권은 ‘서프러제트’와 같은 여성운동 끝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부여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늘 지난하다. 그럼에도, 매 순간마다 겪는 토의와 논쟁은 느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안에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생명 존엄성을 믿고 있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머지않아 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배현주 기자 bhjoo55@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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