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의 역할은 조직의 이익을 증진하고 정신을 수호하는 것이므로, 책임 역시 같은 선상에 위치한다. 이러한 책임과 역할을 위해 리더는 조직의 비전을 제시하고 앞장서서 추진해야 한다. 조직이 커질수록 상황도 복잡해지니 가끔 흠결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누군가의 비도덕적 흠결이든, 불운한 흠결이든 말이다. 리더가 영민해야 하는 이유는 흠결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곧 해결이다. 그런데 간혹 리더가 물러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때가 있다. 흠결이 리더 자신의 도덕적 해이, 과실, 지나친 무능함에 기인한 경우가 대개 그렇다. 리더가 자신이 벌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자의든 타의든 물러나는 게 맞다. 하지만 물러나더라도 그전까지는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노력이 해결에 일조하는지를 떠나, 자신의 양심, 본분, 그리고 그간 자신을 믿어왔던 구성원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다. 리더에게 완전한 해결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미안해하며 구차한 변명이라도 바라는 게 구성원의 마음이다.
지난 30일 DGIST 손상혁 총장은 사임했다. 그의 지난 행적들은 모두 감사를 받았기에 잘잘못을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의 무책임한 마지막 선택은 실망스럽다. 특히 이 결과가 조직의 불운한 사고로 인한 대의적 판단이 아닌 자신의 잘못에 기인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소한 상황 설명, 입장 발표, 사과는 있어야 했다. 여름부터 진행됐던 과기부 감사와 쏟아졌던 의혹들. 국정감사에서 쓴소리 듣던 총장의 모습. DGIST를 부정적으로 거론하는 각종 언론. 학생들은 그걸 다 지켜봤고, 총장이 해명하기를 기다렸다. 총장 역시 수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억울한 면이 있고, 이른 시일 내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은 사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난 1년간 당신을 믿어왔던 학생들을 남기고 떠났다. 훌륭한 학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은 채.
DGIST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성범죄 대응 매뉴얼은 아직 미완이고 정규직 전환 건도 끝나지 않았다. 연구비 부당 편성이나 집행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도 알려진 바 없다. 학생들은 내년에도 아직 누가 될지도 모르는 총장이 잘 이끌어주리라 믿으며 공부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난 25일 SBS 보도에 의해, 신성철 전 총장 재직 당시 DGIST와 버클리대 간의 이면계약과 연구비 부당 집행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DGIST가 또다시 부정적 기사에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DGIST를 검색해가며 불안에 떤다. 오죽하면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군대 다녀오면 학부가 없어졌을까 봐 군대를 못 가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그런데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말이 없다. 비단 총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DGIST E1의 그 어느 층에도 학생을 향한 시선은 없는 듯하다.
DGIST는 조직의 특성상 다른 기관들보다도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본원이 추구하는 융복합, 미래, 혁신 같은 단어들은 자칫하면 붕 뜨기 쉬운 의제들이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연구원 출범 16년, 학부 출범 6년 차를 맞이한다. 신생 과학기술원에서 벗어나 애당초 2020년 목표였던 ‘국내 최고 수준 연구중심대학’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비상해야 할 때이다. 탁월한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에 기본적인 리더십조차도 부재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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