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후보자와 박성진 후보자의 잇따른 사퇴 후 한 달 …
이쯤에서 되돌아보는 과학의 의미
한달 전,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큰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 폭풍은 하마터면 과학기술계에 적잖은 충격을 줄 뻔 했지만,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아주 세련되고 슬기롭게 해결되었다. 청와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자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두 건 다 과학자들의 시선에서 적절치 못한 인사였고,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과학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우려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과학기술계 역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과학자가 건의, 칼럼 기고, 서명 운동 등의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했고, 결국 두 후보자는 자진사퇴했다. 현장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준 청와대에게도, 과학기술계를 위해 자신들의 소신을 펼치며 정부에게 건강한 비판을 해 준 과학자들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준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과학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서로 사실 기반 근거로 설득하여 바람직하게 해결된 모양새가 아름답다.
이번 사건 혹은 논쟁이 소모적이었는지를 묻는다면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청와대의 인사가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 내에서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더 듣고 생각한 뒤 인사를 발표하였다면, 일사천리로 시너지 효과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점들을 되짚고 넘어감으로써 얻은 점 또한 분명히 있다. 특히 몇몇은 너무나 아프지만 언젠가는 분명 짚어서 도려내야 할 환부 같은 문제들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산물이다. 그 산물들을 주워 담는 차원에서, 이 기사에서는 두 사건에 대해 정리 분석하고, 시사하는 바를 논해보고자 한다.
◆ 박기영 후보자, 씻을 수 없는 과오
지난 8월 7일, 청와대에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박기영 후보자를 임명하였다. 하지만 임명 직후, 과학기술계 전체는 거의 한 목소리를 냈다. “박기영 후보자는 과학계의 적폐이다. 그를 다시 주요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가 그 골자였다. 그는 참여 정부 당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정부과학기술보좌관을 맡은 적이 있다. 정부과학기술보좌관은 참여 정부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과학기술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직이었다. 이토록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왜 쓰면 안 된다고 했을까.
원인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아주 아프고도 부끄러운 역사와 이어져있다. 2005년에 일어난 일명 <황우석 사건>에서 박기영 후보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야말로 사건의 범인 혹은 부역자인데 다시 주요직을 맡긴다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황당하면서도 막아야 한다는 사명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희대의 사기극이라 불리는 <황우석 사건>을 되짚어 보자. 2004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황우석 박사는 대한민국의 스타 과학자였다. 그는 유명 과학 저널인 사이언스지에 배아 줄기세포 배양을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로 인해 단번에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국민 대부분은 당시 황우석 박사를 과학으로 국위선양 하는 국민적 영웅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윤리를 위배한 사실, 연구결과를 조작한 사실, 그럼에도 언론과 학계, 국민을 상대로 기만적으로 거짓을 일삼은 사실 등이 확인되며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늘날에 이르러 그는 과학계에서 퇴출된 ‘양치기소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과학계에 수치와 불신을 안긴 그는 설사 주효한 연구결과가 있다고 해도, 용서받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이, 박기영 후보자는 당시 정부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그녀는 과학기술계와 사회의 소통을 담당할 의무가 있었고, 끊임없이 감시해야 했다. 과학기술정책을 정직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라고 임명된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황우석 박사와 손을 잡고 논문의 유령저자를 차지하고, 그의 거짓된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주도했다. 그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무능이든, 알면서도 진행한 기만이든 자격이 없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실제로 ‘그녀의 공과를 살펴야 한다’라는 다소 의아한 청와대의 변호에 사회단체들은 “당시 박기영 후보자가 주도한 잘못된 과학기술정책이야말로 개발독재의 유산이며 과학 적폐”라고 강조하며 반박했다.
임명 나흘 만에, 박기영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주홍글씨를 언급하며 억울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과학기술계는 그녀의 사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자에게 용기를 주는 행위다. 이번에 책임을 물음으로써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는 ‘과학’이라는 용어를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스스로 증명해냈다. 쓰라리지만 언젠가 한 번은 했어야 할 적폐청산의 효시라면 잘 된 편이다.
과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나
과학은 과정이다. ‘이론과 지식의 총체’로서의 과학을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부가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인류가 진정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 점은 ‘과학’이라는 사고의 방법이다. ‘모든 것을 심판대에 올리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행위’인 과학의 핵심은 누구도 검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 따위가 과학을 검증하려 든다’(황우석 박사 발언)는 궤변이다. 재현성이 과학의 기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 역시 이런 점에 기인한다. 1
연구는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과학적 성취는 19세기에 대부분 끝났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팀이 작업한다. 또한 오늘날 같은 거대과학에서 과학자 개인이 맡을 수 있는 영역은 지엽적이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전문분야를 살려 협력해야 한다. DGIST가 리더십과 융복합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도 “함께 하는 과학”을 위해서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과학 고유의 특성도 그러하다. 다수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이론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과학은 설득의 한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에 기초한 토론과 의사소통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에서 정직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덕목이다. 마치 항원-항체반응처럼, 건강한 과학계는 ‘정직하지 못한 과학’을 걸러낸다. 그렇지 못하면 과학계는 병들고 만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과학계의 도덕성을 검증했다. 과학자들이 적폐로부터 과학의 가치를 지켜냈다. 오늘날 과학이 가지는 권위와 가치는 정직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선배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과학은 정의로웠고 정직했다.
DGIST에서 사용하는 연구노트 표지와 첫 장. 학부생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윤리를 어긴 자들이 억울한 주홍글씨를 논할 수 있을까.
◆ 박성진 후보자, 창조과학 논란
앞의 사건으로 청와대에게 과학기술계 인사에 관련해서 각성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 변화가 쉽지 않았던 듯하다. 지난 8월 24일, 청와대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에 박성진 후보자를 임명했다. 임명 직후, 그가 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거센 후폭풍이 있었다. 많은 과학자는 그런 잘못된 과학을 인정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힐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물론 논쟁의 과정에서 일부 과학계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은 과학이 아닌 산업 관련 요직에 가깝고, 때문에 박성진 후보자가 과학인으로서는 안타까우나 장관으로서는 문제가 없다”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다수를 설득시키지 못했고, 과학계는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과학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탄생한 창조과학은 <창세기>를 역사적 과학적 사료로 판단한다. 예컨대 신이 며칠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거나 생물 종을 자체로 뚝딱 만들어냈다는 식이다.
이를 과학으로 볼 수 있을까. 과학의 구획 문제는 첨예하지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20세기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을 반증가능성으로 정의한다. 기존 이론을 반증하는 새로운 이론이 제시됨으로서 과학은 진보하는데, 어떤 이론에 대해 반증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과학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토마스 쿤은 과학을 패러다임의 성장과 전환으로 이해했고, 관련된 많은 범례와 예제가 있어야만 과학으로 인정하였다. 구획 문제에서 대표적이지만 상이한 위의 두 관점에서 모두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신의 존재와 의도는 반증 불가능하다. 과학은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그들을 모두 싸잡아 신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과학의 정신에 어긋난다. 신화는 신앙에 남아있어야 하지 과학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안을 다룬 책은 국내에 많다.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대표적으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왜 장관 후보 임명에 관해 창조과학 논란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는 시선이 있었다. 청와대조차도 종교는 공직자 임명 기준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에게 답해주고 싶다. 창조과학은 종교 영역을 넘어선 비과학이며, 과학자가 이를 지지하는 것은 지적 나태함을 의심케 한다.
박성진 후보자는 후보자 임명 이틀 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임했다. 지난 9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창조과학의 대표적 주장인 6000년 지구설을 과학이 아닌 신앙으로서 믿는다고 발언했다. 과학자가 신앙으로서 믿는다는 다소 의아한 표현에 대해 논란도 있었지만, 일단은 창조과학에서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신의 손짓은 이렇게 그림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과학은 믿음이 아니라 앎이다.
◆ 일반적인 공대 출신? 분노하는 과학자들
청문회에서 불거진 그의 역사관과 이에 따른 청와대의 반응은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그가 포항공대에서 주최한 외부 강연들과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 그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 그는 대표적 뉴라이트 계열 교수를 초청하고, 연구보고서에서는 이승만 독재 정권을 옹호한 적이 있다. 과도한 노동운동, 민주주의, 복지가 저성장을 초래한다는 현 정권과는 다소 이질적인 인식의 칼럼도 개재했었다. 그의 역사관이 비판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반응이었다.
청문회에서 이에 관해 질의를 받은 그는 “잘 모른다” 혹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그에게 장관직은 애초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청와대가 그를 옹호한답시고 밝힌 입장은 더욱 가관이었다. 생활보수라는 기이한 용어까지 들고 나오며, “일반적인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온 분들이 건국절 관련 문제를 깊이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라는 과학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공대 출신이란 무엇인가. 사회에 대해 별다른 사색 없이 주야장천 수식만 풀어 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참 유감이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세상도 둘러볼 줄 알고, 숫자가 아니더라도 사색할 줄 알며, 현안에 대해 목소리도 낼 줄 안다. 과학자들의 지성을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분노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프레임적 인식을 과학자들도 당하고 있다.
박성진 후보자는 지난 9월 15일 사퇴했다. 창조과학 논란에 이은 역사관 논란이 버거웠나 보다. 선배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과학은 명예로웠고 지적이었다.
이광수의 <무정> 속 나타난 껍데기 과학. 오늘날 정부가 생각하는 과학은 그 때와 얼마나 다를까. 과학자들을 국가 발전을 위한 기계로 보지는 않는가. < 출처 = 민음사 >
◆ 우리가 후배 과학자에게 보여줄 과학
청와대는 자신들의 발언에 대한 뚜렷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당장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받는 사과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과학계에 대한 인식이 이 처지까지 온 것에 대해 남 탓만 할 수는 없다. 과학자들의 자성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과학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과학계는 많이 발전했다. 선배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과학은 명예롭고 정의로웠다. 하지만 분명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사회가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부와 과학계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등에 대한 문제는 우리의 과제로 남았다. 선배 과학자들이 보여준 과학을 잘 보완해서 다시 후배 과학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DGIST는 열심히 굴러간다.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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