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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시험, 존폐여부를 따지다 (2부)

사회

2017. 9. 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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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명예시험 사례와 기초학부 이석규 교수, 이기준 교수 인터뷰


1부에서는 명예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취지이해도 등 다방면에서 명예시험을 살펴보았다.

본 기사(2부)에서는 교수진 인터뷰를 통해 교수진의 의견을 알아보고 명예시험의 의의를 조사해 알리고자 한다. 더불어 국내외 명예시험 사례를 조사해보고자 한다.


◆    국내외서 시행하는 명예시험

 국내에서는 한동대학교가 무감독 시험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영동일고등학교, UNIST, 서울대학교, 중앙여고,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제물포고등학교, 동탄국제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등이 실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칼텍, 웨스트포인트, 프린스턴 대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MIT 등에서 명예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먼저 국내 사례부터 알아보자. 한국에서는 한동대가 1995년 최초로 아너코드를 적용해 학교 설립부터 20년간 운영 중이다. 한동대 외에도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에서도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육군과 해군사관학교의 명예시험 제도 준수와 운용은 18명의 생도들로 구성된 명예회에서 총괄한다. 특히 공군사관학교의 경우 매년 2회 생활신조를 가장 잘 준수한 명예신도를 선출하여 표창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원 중에서는 UNIST가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양심적인 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무감독 시험을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한다는 내용의 Honor Code를 주요행사마다 낭독한다. 한편, UNIST는 9명이 부정행위로 징계를 받았다.

 무감독 시험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노력은 각 학교마다 다양하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의 경우 무감독 시험 서약식, 무감독 시험을 격려하는 학부모 편지 전달식, 교수 및 RA를 대상 무감독시험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시험 기간에는 교내 현수막 설치 및 피켓 캠페인으로 무감독시험에 대한 건전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시험장에서는 필기구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반입할 수 없으며 지정좌석제를 실시해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학생들의 집단 부정행위사태로 물의를 빚은 서울대학교에서는 2015년 4월 Honor Code를 도입하였고, 교수, 학부생, 대학원생이 참여한 아너 코드 정책단을 구성해 사례수집과 공청회, 토론회 등을 주관하고 있다.

 대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무감독 시험을 찾아볼 수 있다. 동탄국제고등학교의 경우 2011년 개교한 이래 부정행위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학년별로 체육관에서 지필고사를 진행하며 매년 학기 초마다 선서식, 사전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 아현동에 위치한 중앙여자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만 계도와 적응을 위해 감독시험을 진행한다. 그 후에는 무감독 시험에 성실히 임할 수 있도록 학급회의 시간을 활용하며 서약서 작성 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졸업할 때까지 무감독 시험을 실시한다. 

 다만 내신 성적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영동일고등학교는 무감독시험을 26년간 실시했으며 존폐를 논한 경험이 있다. 교사들은 부정행위 사태에 대해 ‘구성원간 믿음과 신뢰에 금이 간 것이 원인이었고 교육분위기가 인성교육에서 성적위주로 분위기 바뀐 것도 한 몫 했다’라고 밝혔다. 제물포 고등학교의 경우 존폐 논란이 있었지만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무감독 시험을 오랫동안 시행 중이다. 특히 제물포고 박성우 교감은 "양심적 참인간이 사회의 올바른 지도층이 되고 사회 정의를 이룰 초석이 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오랜 시간 이 제도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성균관대학교 사범대에서도 2005년에 무감독 시험이 시행되었지만 1년만에 폐지되었다.


 다음은 해외 사례이다. 학부생이 천명 남짓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이하 칼텍)은 무감독 시험일 뿐만 아니라 강의실 밖에서 답안을 작성해 제출한다. Voa Korea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칼택 학생들의 경쟁 의식은, 다른 학생을 억누르는데 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온다고 한다. 칼텍 외에도 프린스턴 대학교, 스탠포드 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Honor Code를 만들고 이를 어기는 학생들은 학생이 주축이 된 학부 명예위원회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기도 한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West point)에서는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해선 안 되며 자신에 대한 약속을 철칙으로 여긴다. 생도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거짓말한 것이 알려지면 퇴학처리 된다. 철저한 규율을 통해 자신을 속이지 않는 법부터 배워나가며 아주 작은 일도 거짓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에 따라 처벌받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    그렇다면 DGIST 교수는 명예시험 존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교수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기초학부장 이석규 교수를 인터뷰했다.


Q. 명예시험 도입의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가? (학교와 교수진의 공식적인 입장)

 - 도덕성은 중요한 평가 기준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나 도덕성을 높게 요구하기 때문에 대학 생활에서부터 명예를 스스로 지킬 것을 교육하고 싶었다. 또한, 학생을 교육 주체로 인정하여 학생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Q. 이번 부정행위로 인해 명예시험이 중단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학생을 교육 주체로 인정하여 학생들이 무감독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상적인 학생도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음을 간과했다. 부정행위를 해도 현재 아무런 감독시스템이 없기에 부정행위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책임은 학사관리에 넘겨서는 안된다. 부여한 권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학생들의 책임이다. 무감독시험에 대한 문제를 바로잡아가겠지만, 교수들이 학생에게 주었던 권리를 회수해야 하는지 고려하고 있다. 학생의 성숙도와 학점과의 이해관계 등이 얽혀 있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편 성적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성적이 학생의 우수성을 입증하기도 하지만 학생의 성적 추이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함축적 의미가 있는데, 무감독시험을 실시함으로써 과연 우리 학교의 성적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무감독 시험으로 인한 성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성 떨어져”


Q. 지난 1학기에 실시했던 명예시험 존폐와 시행목적에 대한 설문에 응답한 학생 중 69%(71명)가 명예시험에 찬성했다. 또한 존폐여부를 논하기보다는 개선과 보완을 통해 다시 실시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까지 명예시험 존폐에 대한 교수의 입장과 교수회의에서 논의된 입장은 어떠한가?

 - 먼저 교수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이다. 지필고사와 과제 등의 시험 운영방식은 교과별 담당교수의 재량에 맡기려고 한다. 다만 담당 교수는 학사관리의 공정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또한 과제, 실험보고서, 지필고사 등을 포함한 모든 학사 행위에서 표절과 같은 부정행위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학칙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감독시험 실시를 반대한다. 스스로 감독하고 명예를 지키는 시스템이 붕괴하였기 때문이다. 무감독시험이 성공하려면 학생 주체의 감독 시스템에서 시작해 학생 주체 사법 시스템도 철저히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매 학기 제보와 재판만 하다가 다시 한 번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다.


Q. 명예시험을 반대한 학생 중 13%가 DGIST의 명예시험이 형식적이라 생각했다. 명예시험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학교와 교수협의회에서 노력한 부분이나 진행한 교육 정책이 있는가? 또한 명예시험 최초 도입과정에서 학생과 교수진들의 충분한 의견교류가 있었는가?

 - 최초의 명예시험은 총장과 부총장의 일방적인 도입에 의해 시작되었다. 학생에게 과도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의견이 교수진들 사이에 있었다. 또한, 부정행위가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명예시험을 폐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무감독시험을 안정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학교 측에서 노력한 부분은 입학선서를 제외하고는 없다. 일부 교수들께서 수업시간이나 시험 전에 의의와 주의사항을 설명해주신 것이 전부이다.


“총장의 일방적 도입으로 만들어진 무감독 시험 시스템이 붕괴되어 존폐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Q. 명예시험에 적절한 처벌제도가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 명예시험 보완 및 개선 방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한가?

 - 개인적으로는 무감독시험을 반대하지만, 전자기기 반납, 화장실 출입 제도 정비, 자리 지정, 부정행위 신고창구 마련 등을 보완한다면 좋겠다. 또한, 이번 부정행위 조사를 하면서 시험장 출입기록이 없어 조사에 난항을 겪었다. 시험장 출입기록도 있으면 좋겠다.


Q. ‘DGIST 융복합대학총학생회(이하 총학생회)’에서 9월에 명예시험에 관련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혹시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할 부분이나, 충분한 의견교환이 필요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 명예시험을 찬성하는 학생의 일부가 ‘우리 학교가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부정행위자의 명예를 스스로 더럽힌 것이지 피해를 보는 학생이 없지 않으냐’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취업을 하거나 진학을 할 때 성적표를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무감독시험을 실시한다면 우리 학교 성적에 대한 신뢰도와 공신력이 높겠는가?

 ‘과연 몇 %가 이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이상적인 취지를 살리기 위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부정행위자가 있다는 제보가 있지만, 증거가 없다. 학생들이 관리감독을 하더라도 서로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이해관계자의 관리감독은 신뢰할 수 없는 구조이다. 또한, 선한 의도로 시스템을 지킨 사람들은 시스템 붕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부실한 시스템을 가진 무감독시험을 반대한다.


Q. 명예시험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까? (개인 의견) 

 - 명예시험을 유지하되 무감독시험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예 시험이란, 말 그대로 학생들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시험에 임하는 것이다. 감독시험을 보더라도 부정행위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교수진은 학생이 자신의 명예를 걸었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다만, 부정행위를 했다는 합리적인 증거가 있다면 명예선언에 근거해 처벌해야 한다.

 

“감독 시험을 실시하더라도 자신의 명예를 걸고 명예선언을 한 후에 시험을 치르면 명예시험이다”


Q.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나 하고싶은 말이 있는가?

 - 무감독 시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학교의 대외적인 공신력이나 성적평가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를 고려하였을 때, 무감독 시험의 존폐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 것 거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처벌을 해야 하는지도 논의해봐야 하며 무감독시험의 불안정성과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이기준 교수 인터뷰 내용이다. 이기준 교수께서는 평소에 명예시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과 여론 형성을 요구해왔다.

Q.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명예시험 도입의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가? 

 - 명예시험의 목적은 인테그리티(Integrity)를 가르치는 데에 있다. 영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Integrity는 정직함보다 넓은 뜻으로 ‘겉과 속이 일치하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옳은 일을 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비단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실험보고서를 쓸 때나 철학 발제를 할 때도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integrity이다.

‘학생과 교수는 학문적 동반자’라고 매년 입학식 때마다 선언하듯, 우리가 지향하는 관계는 학생들이 언제든 편하게 질문하고, 교수들도 본인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며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함께 배워가는 수평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학교라는 사회가 권위주의적이어서는 안되고, 학생들에게 되도록 많은 자율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학생을 평가하는 시험이나 과제에서도, 문제출제와 공정한 채점은 교수 몫이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고 보고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남의 힘을 빌지 않고 integrity를 지키는 것은 학생 몫이어야 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명예시험이다.


Q. 부정행위로 명예시험이 중단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명예시험은 학생들이 스스로 그 취지를 깨닫고 지키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하기 힘든 제도라고 생각해왔다. 역대 총학생회 간부에게 학생 주도 토론회를 여러 차례 권했지만 다른 어젠다에 밀려 성사되지 못 하였다. 또한, 교수들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명예시험의 목적과 취지에 관한 재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부정행위 적발 시 처벌절차를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노력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명예시험이 비록 초기의 학부교수회의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 명예시험을 가꾸어 나갈 단계이다. 이번 부정행위 사건으로 인하여 토의의 장이 활발히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측면이 있다. 명예시험은 보완을 위해 ‘잠정 중단’된 것이므로, 이번 학기에 많은 학생들이 토론회를 비롯한 여러 다른 방법으로 여론 형성에 참여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길 바란다.


“학생주도의 소통의 장을 열어 명예시험을 보완하되 기존의 방향성을 유지해야”


Q. 명예시험과 감독시험을 치러 보시면서 느낀 점이 있는가? 

 - 사실 1학기 기말고사는 그리 철저한 감독시험이 아니었다. 명예시험과 확실한 차이점을 느끼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독시험을 시행해야 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싱가폴의 대학에서처럼 지정좌석제는 물론, 학생증 사진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고 화장실까지 집요하게 쫓아가서 부정행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철저한 감독시험이다. 학생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러한 극단적인 감독시험은, 공정성이라는 명분 하에 행해지는 인력 낭비이자 인권 침해라고도 볼 수 있다. 공정성이 중요하니 명예시험을 폐지하자는 일부 학생들도 이와 같은 철저한 감독시험에는 반대할 것이다.

 이번에 감독시험이 너무 엄하지 않게 이루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시험이 오히려 편했다고 느끼는 학생도 많았다고 들었다. 물론 교수가 계속 시험장에 계셔서 질문기회도 많아지고 좋은 면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시험감독을 요구한다는 얘기는 스스로를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보아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의심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신뢰와 자율이 주어졌을 때 오히려 그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학생의 자존심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험감독을 요청하기보다 시험장에서 학생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 등을 자율적으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Q. 명예시험을 반대한다고 응답한 학생 중 33%가 부정행위로 인해 시험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들을 교육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명예시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행위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들이나 교수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명예시험에서는 감독시험에서보다 부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절대평가를 표방하지만, 부정행위를 한 학생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는다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보완 없는 명예시험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오히려 시험 도중에 주위의 친구들을 의식하고 감시하게 되어, 명예시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매우 비교육적인 ‘상호감독 시스템’으로 변질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감독관과 서로의 감시가 없이도 부정행위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명예시험의 철학이자 지향점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모든 개개인이 답안지 표지에 있는 ‘온전하게 본인의 실력으로 정직하게 임한다’라는 문구를 진정으로 동의한 후에 서명하면 된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생각할 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겠지만, 학생들이 취지에 공감해주고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명예시험이 습관이 된 후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자신의 integrity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신호를 지키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은 주위에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차가 있건 없건 습관적으로 신호를 지키지 않는가? 실제로 약 2년 전 이루어졌던 명예시험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많은 학생이 명예시험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학생들이 무엇을 하던 별 신경 쓰지 않고 문제에만 매달리게 된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지금의 3, 4학년들은 이미 많이 습관이 되어 최근의 논란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명예시험이 부정행위를 그냥 눈감아 주는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건 매우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부정행위를 징계하는 시스템은 엄연히 존재하고 학생들도 부정행위를 목격하면 신고할 의무를 지닌다. 신고가 들어오면 엄정히 조사하여 처벌하되,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학생들을 일단 믿고, 스스로의 integrity를 지킬 기회를 주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명예시험이다.

 

“스스로의 Integrity를 지키기 위한 학생주도 명예시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Q. 설문조사의 서술형 답변 중 ‘어차피 우리학교는 절대평가이니 부정행위를 하든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으니 상관없다’라는 답변이 있다. 이런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 황우석 사건이나 최근의 도쿄대 스타교수 사건을 생각해보자. 이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실험결과를 위하여 데이터를 조금 손보았을 뿐, 남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괜찮은 것인가? 위 학생의 논리를 허용하는 순간 우리는 장래의 논문부정행위자를 길러내고 있는 셈이다. ‘너희는 명예를 얻어라, 나는 시험점수를 얻을 테니’ 라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태도는 DGIST 인재상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되, 공격하고 격리하려 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품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 생각한다. 문제는 분위기 형성이다. 다소 개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자신의 부도덕성을 합리화하려는 학생들도, 명예시험이 안착되면 전체의 분위기를 좇아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를 위해서 학생들 내부에서 이러한 소수집단을 끌어안으며 설득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할 것이다.


Q. ‘DGIST 융복합대학총학생회(이하 총학생회)’에서 9월에 명예시험과 관련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혹시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부분이나, 충분한 의견교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가?

 -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추상적인 토론보다는, 현재의 명예시험 시스템에 어떤 자율적인 보안장치를 추가하면 서로 간에 신뢰가 회복되고 명예시험에 대한 불만이 줄어들지 토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토론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자체가 학생들의 자율성을 기대한다는 메시지인데, 그냥 ‘학교가 알아서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이건 학교 책임이에요’하는 결론이 나온다면 좀 허탈할 것 같다. ‘학생들이 자율적인 규제안을 만들어 시행해볼 테니 명예시험의 틀은 유지해주세요’라는 결론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지만, 그건 학생들에게 달린 것 같다.

 명예시험의 수준 또는 단계는 사실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미국의 사립대학들에서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는 Closed-book Take-home Exam등은 아직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 ‘강한’ 명예시험이다. 시험지를 들고 집에 와서 책을 펼쳐 보고픈 유혹을 견뎌내며 시험을 쳐야 하니 말이다. 나도 미국유학시절 그런 시험을 치른 적이 있고, 그 시험은 상당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 시험감독이 없는 ‘약한’ 명예시험인데도 현재 문제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준을 인정하고 부정행위의 유혹을 덜 수 있는 ‘더 약한’ 명예시험을 만들되, 그 규제는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즉,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부정행위들을 나열해보고 그 예방장치를 ‘DGIST의 시험문화’ 속에 녹여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방과 전자기기를 강의실 한 켠에 모아놓는 규칙, 책상 위 놓을 수 있는 물건의 종류, 화장실 출입 규칙 등을 학생 스스로 정해서 지켜나가는 것이다. 또한, 학생회의 주도로 표어를 몇 개 만들어 캠페인을 벌여 지키도록 하면, 서로 간의 의심도 줄고 명예시험의 전통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Q. 명예시험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는가? 

 - 우리 학교는 명예시험을 실시하기에 정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생학교이기 때문에 전통을 만드는 단계이고, 절대평가를 표방하고 있으며, 또한 멘토링 시스템을 통한 교수-학생간 소통과 신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명예시험의 취지를 잘 살려보되, 명예시험이 DGIST 학생주도의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명예시험헌장을 만들어보고, 어떻게 하면 integrity를 스스로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며, 더 나아가 학생윤리위원회 등을 학생회 안에 두어 부정행위 제보가 있을 때 1차조사를 담당하는 등의 학생자치를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다. 또한 명예시험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기구도 학생회 내부에 만들어 홍보와 재교육이 학생주도로 매 학기 이루어졌으면 더욱 좋겠다. 너무 학생들에게 많은 걸 떠넘기나? (웃음) 


Q.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제 메시지는 간단하다. 현재 부정행위가 작지 않은 규모로 인지된 것을 계기로 명예시험 제도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상당하지만, 기존 정책의 방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DGIST에서 혁신적으로 내걸고 있는 무학과단일학부, 학부전담교수제 등도 단점이 많음에도 장점이 결국 드러날 것으로 믿고 추진하는 것이지, 문제 생긴다고 폐지할 제도가 아니지 않은가? 명예시험은 이제 DGIST 예비신입생도 알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이자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는 앞서 얘기한 대로 총학생회의 시험문화 캠페인에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학교에서 4년간 integrity에 대해 토론하고, 연습하고, 습관으로 만들어 졸업한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의 이공계 리더로서의 인생에서 대단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모쪼록 활발한 토의의 장을 갖기를 바라고, 그를 통해서 ‘나도 학교 전통 형성에 기여했다’라는 자긍심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2부에서는 국내외 무감독시험 시행사례와 더불어 이석규 교수와 이기준 교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성적과 연관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많은 학생이 여론형성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욱더 공정하고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를 바라 본다.


류태승 기자 nafrog@dgist.ac.kr  배현주 기자 bhjoo55@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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