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로고
“대한민국은 백년대계의 실종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말해보기도 들어보기도 했을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선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애석하게도 이 명제는 참이다. 교육, 산업 등 대한민국 시스템 어디를 봐도 평화롭게 돌아가는 곳을 보기 힘들다. 이런 실정이니 백 년을 내다볼 계획을 세울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시스템이 준비된 선진국은 그렇게 살아온 지 수백 년 된 나라들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시작한지 50년이 겨우 넘은, 건강하게 정상가동 된지는 훨씬 더 짧은 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아직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행착오는 매우 가치 있다.
가끔 교육제도가 너무 자주 바뀐다고, 정부 정책이나 부서 이름이 자주 바뀐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그 마음은 잘 이해하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원래 우주선이 안정궤도에 들어서려면 이래저래 연료도 분사해보고 방황을 해봐야 한다. 잘못된 궤도임에도 불구하고 연료가 아까워서 계속 가다보면, 나중에는 연료보다 중요한 것을 잃는다. 확신이 있다면 궤도수정은 거침없어야 한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이 지난 7월 20일 국회 통과, 25일 국무회의 확정에 이어 26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을 통해 중소벤처기업부, 해양경찰청이 신설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미래창조과학부가 개편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다. 단순히 부서 명칭만 변하지 않고 하부조직도 조금씩 조정하며 업무 비중도 바꾸었다. 대표적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성과평가 정책기능 강화 ▲창조경제 진흥업무를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 등이 있다.
실패로 끝난 미래창조과학, 잘못된 궤도는 수정
이에 과학기술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우선 단순하지만, 무시 못 할 점이 부서 명칭 변경이다. 이전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는 사실 한동안 적폐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부서의 이름이라고 하기는 다소 어색해보였고, ‘창조’라는 단어가 워낙 과학자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견해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부서들의 이름에는 형용사가 비교적 많이 포함된 편인데, 이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더군다나 과학부서의 이름에 ‘미래창조’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 어느 국가의 과학 부서에도 미래창조가 맨 앞에서 강조된 적은 없다. 이는 전 정부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였다.
단지 명칭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는 불완전했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이 다른 요소들과 합쳐져서 부서가 꾸려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기초과학연구가 부족한 판국에, 부서의 업무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면 상황은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교육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를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어서 비판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 대신 기획재정부를 넣어버렸다. ‘창조경제’라는, 4년 내내 합의되지 않다가 미완으로 끝나버린, 국가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이것저것 욱여넣은 것이다. 결국 지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셈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준비하면서 “과학기술전담부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었다. 이는 미래창조과학부 이전으로 되돌리고,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ICT기술까지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과학자들에게는 크게 반길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과 ICT 기술을 분리하지는 못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이름은 그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인데, 사실 나는 ‘과학’, ‘기술’, ‘정보통신’을 모두 떼어서 3개의 부서로 만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다.
이외에도 분명 아쉬운 대목이 있으나, 한 발짝 나아간 발걸음에 의의를 두고 싶다. 창조경제 업무를 배제한 것,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마련한 것, 청와대에 과학기술비서관을 둔 것. 이들만 해도 이전에 비해 큰 진전이다. 지금까지는 관리가 분산되어서 비효율적이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과학기술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면 상황은 호전될 수 있다.
전쟁터에 내보낼 때는 ‘완전 무장’ 해야
지금의 관심사는 R&D 예산권이다. 과학기술연구는 자본과 결탁되어 있다. 따라서 예산권은 연구를 결정짓는, 길게 보면 대한민국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틈날 때마다 R&D 예산이 낭비된다거나 운용이 비효율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참에 과학기술이라는 고도의 전문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보기를 바란다. 연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중 예산을 방지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과학’ 특성상 당장의 성과가 아닌 고집으로 보일 만큼의 장기적인 안목도 필요하다. 이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과학기술계는 예산권 없는 과학기술혁신본부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한다. 아직 예산권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들의 혜안을 믿어본다.
일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예산권까지 얻는다면 앞으로 공룡부서가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우려한다.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맡은 바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공룡부서가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앞선 두 정부에 있던 과학기술 관련 부서의 업무 다양성 비판과는 구분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니라, 그 기조가 다르다. 앞선 경우는 과학이라는 범주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었지만, 이번에는 과학을 행하기 위한 준비물 범주에 많이 넣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조현대 선임연구위원은 “과학기술혁신정책을 위해선 지금까지 알았던 과학부서 외의 다양한 부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DGIST 내 강연에서 밝혔다. 이 말 대로 현실은 어쩌면 공룡부서가 아니면 안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을 5년간 주도할 그들이다. 4차 산업혁명이 현실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시도라도 해보려면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말 많고 탈 많을 5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제 출범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에게 펼쳐진 앞으로의 5년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초일류의 선진국으로 갈지 아니면 적당히 수출해서 먹고 사는 국가가 될지 중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있다. 약진이냐 현상 유지냐를 선택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은 최근의 경제성장률을 봤을 때, 나만의 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명화”를 목전에 둔 우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성장 동력을 잃었다고 평가받기도 하여, 끊임없이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도 그중 일부였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요구한다. 그리고 이번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들의 어깨가 무겁다.
물론 소년가장까지는 아니겠지만,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시작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이 기조를 잡아야 국가의 방향이 잡힌다. 나는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는 인적자원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고 배웠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몹시 혐오하지만,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제발 이 인적자원이라도 좀 제대로 썼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인적자원은 천연자원과 달라서 카르노 기관보다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지 않겠나.
이제 우리도 ‘빅 픽처’를 한 번 그려보자. 10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은 내다볼 수 있는, 정권마다 바뀔 국가의 운명이 아닌 좀 운명 같은 운명을 보고 싶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큰 기틀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다음 정권에서도 다시 그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숫타니파타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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