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생명, 경계에 서다: 양자생물학의 시대가 온다』의 전반적인 내용, 특히 ‘2장: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4장: 양자 맥놀이’를 기반으로 작성함을 밝힙니다.
학문의 경계가 희미해짐에 따라 생명과학 연구 또한 다른 과학 분야와 융합되는 추세다. 그렇게 생겨난 대표적인 학문이 생명물리학이다. 자연과학 중 제일 일반성을 추구하는 물리학과 특수한 사실 규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명과학의 조합은 독특하다. 한술 더 떠서, 생명물리학의 하위분야에는 더 괴상해 보이는 양자생물학이 있다. 생명현상을 양자역학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말도 안 되어 보이고 실제로 21세기 이전에 양자생물학은 인정받지 못한 분야였다. 그러나 생명체 속 양자 현상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또한 양자생물학이 분자생물학에선 설명할 수 없었던 생명현상의 ‘기묘함’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양자역학적 접근이 생명 연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자.
분자 단위로 해부해 보아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명체의 정보를 담은 수수께끼의 물질이 이중 나선 DNA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자생물학의 봄이 시작되었다. 올해로부터 불과 7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모든 인간 유전자 정보 해석을 꿈꾼다는 점에서 생명과학의 빠른 발전을 체감할 수 있다.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단백질에서 표현형으로 유전 정보가 흐른다는 걸 안 이상, 모든 생명현상 기전 규명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생물은 무생물과 다르게 초자연적인 영혼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는 생기론의 안개가 분자생물학에 의해 걷힌 것이다. 어떤 급진적인 환원론자는 생명체가 금속이 아닌 유기물로 만들어졌을 뿐,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기계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세포 속 분자의 작동을 모두 밝히는 것만으로 생명 현상의 신비로움이 사라질까?
오히려 자세하게 보면 볼수록, 생명의 기묘함은 뚜렷해진다. 특히 생화학 반응은 비생물적인 화학 반응과 격이 다르게 복잡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고작 10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인지질 방울 속에서 수천 가지의 생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적절한 시기와 반응량이 조절된다. 이 모든 과정이 자연에서 우연히 발생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전통적인 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설에 근거하여, 생명 현상들은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후대를 남기는 과정의 축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선택설은 진화 원리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긴 하지만, 정교한 분자 활동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생명이 가진 질서 속의 질서, 시대를 앞서간 슈뢰딩거의 통찰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슈뢰딩거는 생명의 기묘함을 DNA 발견 이전부터 눈치챘다.
“살아있는 유기체란 온도가 절대온도 영도에 접근하여 분자적 무질서가 사라지게 될 때 그렇듯이 그 현상의 일부분이(열역학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계적인 원리에 따르는 거대 시스템인 것 같다”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中
생화학 반응은 대부분 상온의 액체 속에서 일어난다. 그 때문에 물 분자를 포함한 주변 환경의 열적 요동이 반응에 간섭할 수 있다. DNA의 이중 나선을 풀고 짝이 맞는 염기를 조립하는 등의 과정을 포함한 DNA 복제 기작과, 기질이 특정한 구조를 갖게 하여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효소의 작용을 비롯한 기계적 움직임들이 혼란스러운 진동을 무시하는 듯 일어난다. 자갈밭 위를 달리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뜨개질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 몹시 어려움을 상상하면 슈뢰딩거의 문제 인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슈뢰딩거는 생명이 통계역학적 질서인 ‘무질서 속의 질서’와 구별되는 ‘질서 속의 질서’를 가질 것이며, 이것의 근원은 양자 현상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당시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유는 양자 현상의 특성에 있다.
양자답기에는 너무 시끄러운 생명
양자의 중요한 특성은 물질이 파동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거시 세계에서는 컵 하나가 책상 위에 있다고 보듯이, 물체는 특정 시간에 특정 위치에 존재한다. 이런 성질을 입자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미시 세계에서 양자는 확률 분포로 존재한다. 확률 분포는 여기저기 움직이는 양자를 그 위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특정 확률 밀도로 모든 위치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컵이 70% 정도는 책상 위에 있고, 20% 정도는 책상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지구 반대편에도 매우 낮은 밀도로 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상식에 어긋나 보이지만 이는 거시세계에 맞춰진 인간의 직관 탓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파동성이 당연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거시세계에서 파동성을 관측하기 힘든 이유를 이중 슬릿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자를 이중 슬릿을 향해 쏘면 뒤쪽 스크린에 간섭 무늬가 나타난다. 양쪽 슬릿을 통과하는 파동 사이에 간섭이 있어서 전자가 간섭무늬의 위치로 스크린에 도착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가 둘 중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감지기로 관찰하면, 스크린에 간섭무늬가 아닌 두 개의 띠가 나타난다. 거시세계처럼 전자가 입자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처럼 관찰이 파동성을 입자성으로 붕괴시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양자 결맞음과 결어긋남으로 파동성 붕괴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양자 결맞음은 진동수가 유사한 양자 파동이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비유하자면, 잔잔한 호수에 두 개의 돌을 던졌을 때 파면에 간섭무늬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상태다. 반면 폭포수 근처에 돌을 던진다면, 돌에 의한 파동이 생기긴 하겠지만 주위 잡음으로 인해 간섭 현상을 보기 힘들 것이다. 생명체에서는 양자 현상이 있을 수 없다는 추측도 양자 결어긋남에 근거한다. 따뜻하고 축축한 생명이야말로 주위 분자의 열적 요동으로 인한 잡음이 가득한 폭포와 다름없으며, 주위 분자로 인해 끊임없는 관찰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양자 현상이 일어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예상을 깨고 발견된 양자 생명 현상 – 광합성의 양자 맥놀이
그러나 슈뢰딩거의 말이 옳음이 증명됐다. 생명 속 양자 현상이 진짜로 존재한 것이다. 2007년에 UC Berkeley의 그레고리 엥겔(Gregory Engel) 연구팀은 “광합성의 양자 결맞음을 통한 파동적 에너지 전달의 증거”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배경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광합성 과정은 크게 광의존반응과 광비의존반응으로 나뉠 수 있다. 연구팀은 광의존반응에서 빛 에너지 흡수가 일어나는 장소인 광계Ⅱ에 주목했다. 광계Ⅱ는 빛 에너지를 받아서 물로부터 광합성에 필요한 전자를 분리한다. 여러 개의 엽록소를 함유한 집광 안테나가 물 분자의 전자 분리가 일어나는 반응 중심 곁에 있고, 흡수한 빛 에너지를 반응 중심으로 전달해 주어 넓은 면적에 쐰 빛을 화학 반응에 이용할 수 있다. 엽록소가 빛을 받으면 엽록소 속 마그네슘의 최외각 전자가 들뜬 상태가 된다. 그리고 공명현상에 의해 들뜬 상태 엽록소에서 주위의 바닥 상태 엽록소로 에너지 전달이 일어난다. 에너지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집광 안테나 속 엽록소를 거쳐 반응중심으로 이동한다.
집광 안테나에서 에너지 전달은 분자생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 엽록소로 빼곡한 집광 안테나 속에서 에너지는 어떻게 반응 중심을 향해 이동할까? 집광 안테나에 있는 엽록소들이 에너지적으로 모두 동등하다면, 그러니까 어느 위치에 있는 엽록소가 들뜬 상태이든 물리 화학적으로 구분할 방법이 없다면, 에너지의 이동은 평지에서 눈을 감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방향 감각이 없기 때문에 인접한 무작위 엽록소로 이동하면서 언젠가 반응 중심에 도착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2007년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 생물학자는 에너지가 이렇게 '무작위 걸음'으로 전달된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무작위 걸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준의 빠르기로 에너지 전달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연구팀이 제시한 파동적 에너지 전달의 증거는 광계Ⅱ에서 관찰된 양자 맥놀이 현상이다. 양자 맥놀이는 양자 결맞음으로 인해 주기적인 진동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에너지 전달의 파동성을 입증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에너지가 저절로 반응 중심을 향해 이동할 수 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들뜬 상태 엽록소가 파동적인 위치 분포를 가진다면 광계Ⅱ 전체에 확률 분포로 존재하여 이동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동시에 따라가는 ‘양자 걸음’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렇기에 마치 양자컴퓨터처럼 반응 중심을 목적지로 하는 최단 경로 문제를 빛을 받을 때마다 풀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 수 없는 이론으로 설명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양자 생명 현상에는 ▲양자 터널링을 통한 효소 촉매반응 ▲후각 수용체가 후각 분자의 진동수로 향을 구별한다는 후각 수용체 양자 진동 가설 ▲양자 얽힘의 결과로 추측되는 자기 수용 감각 ▲양자 도약 유전자 등이 있다. 특히 효소와 유전자에서 보이는 양자적 특성은 슈뢰딩거가 언급한 ‘질서 속의 질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자생물학은 분자생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양자 현상이 먼 곳에, 혹은 이론적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임을 일깨워 준다. 거시세계에서 결어긋남이 일어나 파동성이 가려져 보이지 않아도 파동적 본질이 사라지진 않는 것처럼, 생명현상이 아무리 신비스러워도 그것이 무생물과 다름없이 물리 법칙을 따른다는 본질은 변치 않는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생명으로서 우리 존재를,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양자생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김신지 기자 sjneuroneurony@dgist.ac.kr
강광휘 기자 kanghul@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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