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과학자는 귀신이나 유령 같은 비과학적인 현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유령’은 모든 과학자들이 그 존재를 받아들인다. 바로, 유령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기는커녕, 사람의 몸도 통과하는 만큼 일반인에게 중성미자란 체감하기 어려운 낯선 존재다. 이런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지난 22일,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의 서선희 연구원이 중성미자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강연은 ‘유령입자: 표준모형부터 노벨 물리학상까지’ 라는 주제로 국립대구과학관의 씨티움홀에서 열렸다.
▲ 우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중성미자
‘우리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는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두 질문은 과학의 역사에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답을 찾는 학문이 입자물리학으로 정립되었고 입자물리학의 기본 배경이 되는 것이 ‘표준모형’이다. 표준모형이란 자연계를 구성하는 기본입자 17가지와 중력을 제외한 상호작용, 즉 전자기력,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기본입자는 쿼크 6가지, 힘 매개입자 4가지, 경입자 6가지, 힉스입자 한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성미자는 경입자 중 일부로서 전자 중성미자와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를 통틀어 중성미자의 맛깔(flavor) 상태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경입자인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고, 작긴 하지만 약 이라는 측정할 수 있는 질량을 갖는다. 반면에,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아주 작은 질량을 갖는다. 얼마나 작은 질량이냐 하면, 경입자의 다른 하나인 전자는 실험을 통해 전자 한 개의 질량을 약 9.11 × 10-31 kg로로 직접 측정할 수 있었지만, 중성미자는 비교대상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 질량 측정 밖에 못하고 있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중성미자는 우주 어디에나 존재한다. 중성미자는 광자(빛)에 이어 보이는 우주에서 두 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입자다.
그 이유는 우주의 거의 모든 곳에서 중성미자 방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빅뱅이 일어날 당시에 만들어진 중성미자뿐만 아니라, 초신성 폭발, 태양 핵융합, 지구 내부의 동위원소 붕괴, 대기, 천체, 원자로, 입자 가속기 등 우리 주변 곳곳에서도 중성미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바나나에서 40K(칼륨의 동위원소)이 붕괴하여 방출되는 중성미자도 존재한다. 서선희 연구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중성미자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많이 존재함에도 중성미자로 실험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성미자가 약한 상호작용과 중력(질량이 있기 때문)에만 반응을 하기 때문에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사선 붕괴에 의해 방출되는 알파, 베타, 감마 입자와 비교하면 중성미자가 얼마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알파입자는 종이 한 장도 투과하지 못하고, 베타입자는 알루미늄 판으로 막을 수 있다. 그 중에서 투과력이 가장 큰 감마 입자는 두꺼운 납판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중성미자는 주변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투과할 수 있다. 만약, 중성미자의 투과를 50% 막기 위해선 1광년 두께의 납이 필요하다. 때문에 우주에서 두 번째로 많이 존재함에도 검출이 쉽지 않고, 실험 또한 어려워진다.
▲ 중성미자와 노벨상
중성미자의 존재는 1930년에 과학자 볼프강 파울리가 처음 예측했다. 핵붕괴 과정에서 기존에 발견된 입자만으로는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현상을 통해 새로운 입자(중성미자)가 존재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이후 1956년에 클라이드 코완과 프레더릭 라이너스가 실험을 통해 원자로에서 전자 중성미자를 최초로 검출해냈다. 실험은 쉽지 않았다. 몇 달간 실험 데이터를 수집한 후에 탐지기에서 시간당 대략 3회 꼴로 중성미자가 검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완은 76년에 사망했으나 라이너스는 199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코완과 라이너스의 실험을 시작으로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가 점차 진행되었다. 1962년에 리언 레더먼과 멜빈 슈워츠, 잭 스타인버거가 공동으로 뮤온 중성미자를 발견했고, 미국의 DONUT(Direct Observation of the Nu Tau) 실험을 통해 타우 중성미자가 발견되었다. 가장 먼저 전자 중성미자를 발견했던 라이너스는 199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뮤온 중성미자를 발견한 레더먼과 슈워츠, 스타인버거는 198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로 중성미자를 발견한 DONUT 실험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중성미자와 관련된 세 번째, 네 번째 노벨 물리학상은 모두 일본에서 나왔다. 세 번째 노벨 물리학상은 초신성 폭발로 인한 중성미자를 검출한 고시바 마사토시가 2002년에 수상했고, 네 번째 노벨 물리학상은 중성미자의 진동변환을 관측해낸 카지타 타카아키가 2015년에 수상했다. (중성미자의 진동변환이란 중성미자가 진행하면서 질량 상태를 거치며 다른 맛깔 상태의 중성미자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두 실험의 연결고리는 바로 중성미자 검출장치인 ‘(슈퍼)카미오칸데’다.
지하 1000미터 깊이에 4500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거대한 수조를 설치하고, 수조의 내벽에 광센서를 설치한 것이 카미오칸데다. 카미오칸데의 센서는 중성미자가 물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신호를 검출한다. 지하 1000미터나 되는 깊은 곳에 위치한 이유는 대기 중성미자나 다른 우주선(宇宙線)의 방해를 받지 않고 중성미자만을 검출하기 위해서다. 1987년에 초신성 폭발로 인한 천체 중성미자를 카미오칸데에서 검출한 후에 슈퍼 카미오칸데가 설립되었다. 슈퍼 카미오칸데에서는 5만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센서가 필요하다. 센서가 많아지면서 감도가 더 높아진 슈퍼 카미오칸데는 중성미자의 진동변환을 관측할 수 있었다. 일본은 카미오칸데와 슈퍼 카미오칸데에 이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이퍼 카미오칸데를 짓고 있다.
▲ 비슬산에서 중성미자를 본다?
중성미자는 입자물리학의 ‘뜨거운 감자’다. 세계적으로 카미오칸데와 비슷한 거대 실험시설을 설계해 중성미자와 관련된 우주의 비밀을 찾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인도에서는 INO(인도 중성미자 관측소), 중국은 JUNO(장먼 지하 중성미자 관측소), 일본은 하이퍼 카미오칸데, 미국도 DUNE(심층 지하 중성미자 실험 시설)을 지으면서 중성미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대 김수봉 교수를 필두로 이른바, 한국중성미자관측소한국 중성미자 관측소(KNO, Korean Neutrino Observatory)를 짓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그리고 KNO의 후보지 중 하나가 바로 비슬산이다.
비슬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의 높이가 1034m로 중성미자 실험을 위해 필요한 깊이를 충족한다. 산봉우리에서 수직으로 1000미터 아래에 중성미자 검출시설을 짓고, 해당 시설로 통하는 터널을 약 2.8km 연결하면 국내에서도 중성미자 연구가 가능해진다. 시설이 완공될 경우, 일본의 양성자가속기에서 방출하는 중성미자를 검출하여 실험할 수 있다. 서선희 연구원은 KNO의 의의에 대해 “많은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KNO시설이 잘 구축될 경우 우리나라 과학도 입자물리학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비쳤다. 비슬산에 KNO가 지어질 경우, 인근의 DGIST 역시도 입자물리학 연구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시설을 위해 2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고, 카지타 교수의 노벨상 수상 이후로 큰 논의가 없다는 점 등은 KNO 설립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성미자는 우주에서 두 번째로 많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탄생과 관련한 물질-반물질 비대칭 문제를 비롯한 여러 비밀이 숨어있음에도 아직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이미 중성미자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네 번이나 나왔지만 앞으로의 미래도 밝은 이유다. 서선희 연구원은 “중성미자라는 한 분야에서 이렇게 많이 노벨상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연구라는 뜻이다”라고 중성미자 연구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분야인 만큼 젊은 과학도들이 중성미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연구결과를 발견해냈으면 한다. 정말 좋은 결과라면 우리나라의 첫 노벨 물리학상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젊은 과학도 청중에게 응원을 전했다.
배현주 기자 bhjoo55@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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