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주
학교 문화는 재학생에게 소속감과 화합을 담당하며, 새로운 학우와의 교류의 장이 되며, 동문과의 연결 역할도 한다. 그래서 대학 문화는 구성원 모두가 공통으로 향유해야 한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딛은 DGIST 곳곳에서는 이런 문화 형성과 유지를 위한 여러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본 기획 칼럼으로 DGIST 구성원이 문화 형성을 위해 하는 노력과, 그 한계는 무엇인지, 극복 방안은 무엇일지 살펴보길 기대한다.
DGIST의 여름은 다른 어떤 학교보다 뜨거울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학부생 역사와 함께한 세계명문대학 조정축제로 온 학교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홍콩과학기술대학교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들이 지난 축제에 이어 이번 축제에도 초대받았고, 올해에는 하버드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가 처음으로 초청받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학교의 학생들과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입학설명회에서도 조정 축제는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단편적인 사실로 놓고 보면 조정 축제는 분명 반길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학부생 사회에서 조정축제는 여러 악평에 휩싸인다.
이는 곧 조정축제가 DGIST 조정부만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조정 크루나 해당 행사의 스태프로 참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조정 축제는 알 수 없는 곳에 과도한 예산을 축내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폐막되었다고 하더라도, 학부생들이 이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학부생들이 이를 체감할 만큼 DGIST의 인지도가 올라가지도, 이 축제가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지도, 혹은 이를 통해 타 대학과의 발전적인 교류로 이어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에 이를 홍보할 때는 마치 DGIST의 인지도가 올라간 것처럼, 지역사회가 이 축제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갖는 것처럼, 유수의 명문대학과 더 많은 교류를 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학부생들과의 소통 없이 조정부 내부에서만 진행되는 일을 학부 전체로 확장하는 것은 학부생들이 조정축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일부 학부생은 지나치게 폐쇄적인 조정부의 행보에 부정적인 시각을 던진다. 학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인정받아 학생자치단체로 승격된 만큼, 학생자치단체에 대해 명시된 규정이 없더라도 조정부에게는 단체에 속해있지 않은 재학생에게도 정보 공시를 해야 할 도의적 의무를 진다. 하지만 DGIST 조정부는 학생자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타 자치단체에 비해 폐쇄적이고 정보 공개가 불투명하며 학부생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실제로 조정부 홈페이지(dgbc.dgist.ac.kr)에 들어가도 조정부 규정에 대해 설명하는 페이지는 다른 항목들과는 다르게 비어 있다. 마땅히 학부생들에게 공개되어야 할 정보가 학부생들에게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자치단체로 승격된 이유가 조정 축제에 있다는 것도 조정부가 아닌 학부생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데, 학부생과의 소통 단절은 조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불씨를 지핀다.
문제는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으로 인해 조정부 내부의 문제를 넘어서 학부생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가 그동안 축소 및 은폐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방학에 2주간 조정축제의 진행 인턴으로 참가하면서, 조정 축제의 모순적인 부분의 일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순은 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WURF(World-class University Rowing Festival) 의 주인공은 DGBC(DGIST Boat Club, DGIST 조정부)역시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행사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사인 것일까? 지금부터 짚어보도록 하겠다.
◇ 학부생이 주체가 되는 축제, 주체의 의미 고찰 필요
대회장은 명예직임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이 축제의 최고 간부는 학생자치단체 외부에 속한 학생자치단체 지도 교수와 체육계 외부인사이다. DGBC는 두 간부들의 지도 하에서 WURF를 준비하고 참가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회장 및 이사단이 두 간부이고, 행정위원이 직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WURF의 기획 및 진행에 있어서 행정인턴인 학부생들의 주체권은 상실된다. 행사의 전체적인 기획은 간부들이 맡고 있다. 행정인턴은 기획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축제를 진행할 때에도 행정 인턴들은 STAFF의 목걸이를 벗지 못했다. 축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화한 학생들은 정작 간부들의 뒤에 가려져 있었다. 학생의 목소리가 아닌 간부들의 목소리가 WURF를 지배했다. 1
따라서 WURF를 표현하거나 홍보하는데 있어서 DGIST 학부생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축제에 행정위원으로 참가했다고 해서 행정위원으로 참여한 학부생들이 주체가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WURF가 진정으로 DGIST 학부생이 주체가 되고 학부생들이 중심이 되는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달빛제처럼, STadium처럼, 혹은 KAIST에서 주최하는 ICISTS처럼,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의장단부터 말단 행정직까지 오로지 DGIST 학부생들로 이 행사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WURF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단발적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자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좋은 학교만을 찾고, 무조건 행사의 크기를 키우는데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이 행사가 학부생 사회에 잘 스며들 수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랑스러운 DGIST 학부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이 행사는 학부생 내부에서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기획한 행사가 아니다. 최초의 구상은 인수일 조직위원장의 생각에서 나왔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학부생이 동원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절차가 무시되고 있고, 학부생들에게 홍보할 때 들었던 축제 본래의 목적을 상실해가고 있다. 진심으로 WURF가 학부생이 주체인 축제가 되고, 학부생들의 문화로 자리잡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간부들은 한 발씩 물러나야 할 것이다. 학부생에 더 많은 결정권을 넘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위치를 포기하지 않고 싶었다면, 최소한 학부생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었다.
◇ 학부생 인턴은 곧 노동비 절감을 위한 편법?
현재의 WURF에서는 행사 예산을 아끼기 위해 학생 인력을 악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참여한 WURF의 진행인턴이 금전적으로 받은 대우와 단기근로계약을 채결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비교해보겠다.
진행 인턴으로 참가한 학생 7명은 인턴십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함께 사인한 서약서에 의해 자원봉사자의 수고비 항목으로 일급 만원을 지급받았고, 인턴 기간 중 WURF 위원회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다. 인턴들은 학생 식당 및 기숙사 식당의 식사(3,500원)를 무료로 이용했고, 하루 기숙사비 4,890원과, 일당 약 2,000원의 전기세를 지원받았다. 일인 당 하루 평균 27,390원, 15일간 410,850원을 지원했으며, 약 120,000원의 추가지원금을 포함해 일인당 총 53만 원을 지원한 셈이다.
이제 근로기준법 상으로 진행 인턴이 아닌 외부 인력을 정식으로 고용했을 때 개인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해야 하는지 알아보겠다. WURF 운영위원회 사무실에는 행정 인턴 4명과 행정 팀장 1명이 상시 근무하였다. 이들 역시 인턴이 아닌 정식으로 고용된 직원이라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WURF 운영위원회 사무실은 5명 이상의 근로자가 상시 근무하는 업장으로 근로기준법 제11조에 의해 근로기준법의 모든 적용을 받아야 하는 사무실이 되었다. 단기근로자들은 8시간을 넘어 야근을 한 날도 있었고, 최대로는 새벽 2~3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장 근무의 경우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시간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계산은 생략하겠다. 다음의 표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이며, 비고는 진행 인턴들에게 보장되지 않은 항목을 표시했다.
△진행 인턴이 아닌 외부 인력으로 운영하였다면 근로기준법 중 상당을 어기게 된다.
2017년 최저시급인 6,470원 지급을 계약하고 위의 법령을 모두 지켰을 때, 단기근로자 1명이 지급받아야 할 돈은 1,061,080원이 된다. 2
따라서 학부생 인턴을 사용해, 인당 인건비를 약 50% 절감할 수 있었다. 행정 인턴도 진행 인턴과 동일한 계약 조건으로 근무하였으므로(다만 마지막 주를 제외하고는 휴일 근무는 없었다고 한다)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학부생 인턴들은 물론 금전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이 축제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학부생들은 값싸고 착취하기 쉬운 노동력으로 취급 당한 셈이다. 이것은 올바르게 학부생을 대우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치국가에서 법에 따라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개인을 존중하고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학부생을 축제의 주체로 포장하는 것은 학부생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년 2월 개최하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1년 전 무급 봉사 인력을 모집한 이후 추가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단기고용인을 모집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봉사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봉사자들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사회적으로 악용되는 풍조를 이 행사에 도입하고 이런 행위 전반을 포함한 것을 DGIST의 문화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주최측은 행사 진행에 필요한 충분한 인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축제의 시작 이전부터 주최측은 노동력 부족에 대한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추가 인원 모집 없이 DGBC 부원들 만으로 행사를 강행했다. 추가 인원 모집이 불가능한 시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는 곧 개인당 부담해야 하는 노동 강도의 증가로도 직결되었고, 축제의 질과 조정 크루들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 행사의 목적은 어디로?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조정 축제에서 크루로 모집한 사람들에게 진행 인턴의 업무까지 맡긴 것은 결국 간부들이 DGIST의 조정 크루를 이 행사의 주체가 아닌 사용인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버린 것이 되었다. DGIST 세계 명문대학 조정축제에서는 DGIST 조정 크루조차 행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DGBC의 조정 크루들은 행사기간 동안 크루인 동시에 진행 인턴이 해야 할 일까지 대신해야 했다. 최소한 인턴 모집에서 명시된 역할처럼 크루와 진행 인턴은 명확히 분리되었어야 했다. 행사 진행 인턴이 부족하다면 추가 인원을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행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축제에 참가하는 외국인 학생들의 모든 비행기표와 숙식을 제공하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주최측에 있어서 이 행사의 제1순위는 결국 DGIST 학생들이 아니었다.
정작 DGIST 학부생에게는 법적으로 지급해야 할 급여를 편법을 동원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지급하지 않았고, 추가적인 인력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기존의 인력을 쥐어짜냈다. 개회식이 있던 화요일 밤에는 뒷정리를 마치고 오후 11시가 다 되어서야 학교에 돌아온 이후에 바로 다음날의 경기를 위해 모든 인턴과 조정 크루들이 오전 2시까지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조정 크루들 역시 내일 경기를 치르는 선수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 진행 중 초과로 집행된 예산이 인턴과 크루들에게 지불해야 할 돈에서 나갔기 때문에 예정대로 돈을 지급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DGBC는 반드시 모든 국내 대회에서 우승해야만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존재한다.
DGIST 학부생이 곧 이 행사의 주체이자 주인이며 이 축제가 DGIST만의 문화로 만들겠다는 목적에 모순이 생기는 지점들이다. 위의 상황들 중 그 어디에서도 DGIST 학부생은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학부생들을 대우한 간부에 본교의 교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저 헛웃음을 짓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감히 이 축제를 감히 DGIST의 문화로 만들고, 한술 더 떠서 이 축제가 학부생을 위한 문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갑을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공동체 정신과 봉사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공동체 정신과 봉사가 아니라 폭력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학부생들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문제가 벌어진 졸업 퍼레이드의 제안자가 조정축제의 최초 기획자와 동일하다는 것에서 이 역시 본인의 이상을 충족시키기 행사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해외 ‘명문’대학을 모방한 문화가 진정으로 DGIST의 주체성을 갖는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인지, 학부생의 동의 없는 문화가 진정한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이용해 다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결코 옳은 행위가 될 수 없다.
더 이상 주최 측은 DGIST 학부생의 이름을 팔아 이 행사를 홍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이를 DGIST 문화로 정착시키고 싶다면, 학부생이 진정한 축제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대우를 해주길 바란다. 학부생은 최저시급 이하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 인력이 아니다. 학부생은 간부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다. DGIST의 이름을 내건 축제이고, DGIST 학생들이 참여하는 축제인 이상 이 축제가 진심으로 DGIST 학부생들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 그러므로 최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해외 ‘명문’대학 학생들이 아니라 DGIST의 모든 학부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문 대학 초빙과 명문 대학 모방은 DGIST가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DGIST가 명문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겉모습에만 집중하지 말고, DGIST 내부의 모든 것부터 올바르고 합리적인 밑바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서주 기자 sjice@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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