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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정치적 중립 법안 발의… 연구원들 “과학자는 연구 기계가 아니다”

오피니언

2017. 8. 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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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정 법안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역시대적 발상 지적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지난 6월 18일, 대표발의자 유의동 바른정당 의원을 포함한 보수정당 의원 10명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 발의하였다. 이 개정법률안이 통과된다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연구자들의 정치적인 활동이 제한된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시대 역행적 발상이라며 반발했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0명의 의원들(▲바른정당: 유의동, 홍철호, 오신환, 정양석, 유승민, 이학재, 김영우 ▲자유한국당: 이진복, 김현아, 김성원)이 발의한 개정 법률안은 기존 출연연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유지의 의무)에 제 31조의2를 신설하는 형태이다.

이 법안에는 “출연연은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사업 수행 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법적으로 제한되는 연구기관 및 연구회의 행위는 ▲특정 정당의 지지 혹은 반대 행위 ▲특정 후보자를 당선시키도록 하는 행위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행위 ▲그 밖에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행위이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강하게 반발하였다. 과학기술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4번째 조항인 “그 밖에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행위”이다. 포괄적인 표현으로 명시된 이 조항으로 인해 연구원들은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다. 정당 가입이나 글이나 강연에서 의견 표현 역시 제재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 과학기술관계자는 “이 조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독소조항이다.”라고 말하며 우려를 표현했다. “가장 위험한 법은 자문하게 되는 법”이라는 말처럼, ‘정치적 중립’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통해 수많은 연구원들을 구속할 수 있게 된다.

발의한 의원들은 이러한 지적들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번 개정 법안은 연구원 개인에게 적용되는 법안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그들은 “기관장이나 이사장이 특정 후보의 정책을 지지할 경우 해당 기관 소속 연구자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발의한 것”이라고 밝히며, 실질적으로는 연구원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출연연이 국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치 중립을 담보할 법안이 없다며 발의 배경을 소개했다.

이 해명이 반발을 잠재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 직종 중에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것은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국가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하는 부당함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다르다. 출연연에 종사하는 연구원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정치적 이념이 아닌, 지적 열망이나 산업계의 분위기에 따라 연구를 주도한다. 따라서 과학기술계는 일반적인 공무원만큼 특정 정치적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상부의 정치적 활동이 연구원들의 연구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도 비교적 적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아래는 바른정당 홈페이지의 소통란에 한 대전 출연연 연구원이 남긴 글의 일부이다.

“연구소들은 현재 세계 R&D 트랜드에 맞도록 연구를 설계하려고 노력하며 이에 더해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줄 수 있는 연구가 있다면 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다들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적 비전은 정치적 성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거나, 결과물을 누릴 수 있는 혜택 집단이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분야의 사람들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논거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출연연이 과학기술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활동을 제재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은 지난 6월 20일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연구자 주도 연구 지원”이라고 밝혔다.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할 때에 현장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모순이 있어 보인다. 오히려 연구원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재하고, 국회가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이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법안 자체의 실효성을 차치하더라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참정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 법안은 민감하다. 연구원은 연구하는 기계가 아니다. 교수들은 정치적 의견을 말해도 되고, 연구원들은 안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모든 과학자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의무와 권리가 있다. 요즘에는 오히려 그런 모습의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요구되며 각광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사고가 중요한 과학자들에게 입을 막고 눈을 감고 연구만 하라는 것은 과학자의 본분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론물리학자이자 수많은 정치평론을 쓴 이종필 교수의 “과학자가 나라를 걱정합니다”라는 책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사회•정치적 이슈를 다루었는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만약 이 개정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중은 이런 책을 읽을 수 없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 누려야 할, 내지 과학자이기 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잃게 된다. 과학자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손해인 것이다. 한 과학기술관계자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이 개정 법안은 과학기술계 특성상 발의 배경에 논리적 오류가 있어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것이다. 만약 의원들의 말처럼 건강한 과학기술정책과 연구를 위해서라면, 그 진행과정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해결될 일이다.

국가가 과학자들을 국가발전의 도구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연구자 중심의 정책처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과 동시에, 과학자들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이 필요하다. 이 개정 법안이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수용할지,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될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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